제약바이오 업계가 2023년 2월까지 기허가 복제약(이하 제네릭)에 대한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자료 제출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위수탁 방식을 채택한 제네릭 중심으로 대대적인 약가 인하가 감행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각 제약사별 약가방어를 위한 다양한 자구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위탁방식으로 제작된 제네릭들이 수천개에 달해 대형 의약품 공장을 소유하지 못한 대다수의 중소제약사들은 내년도부터 낮아진 약가로 인한 매출 불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제네릭 의약품 / 픽사베이
제네릭 의약품 / 픽사베이
제약바이오 업계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고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제네릭을 생산 중인 기업들은 2023년 2월 28일까지 ‘생동성시험 수행’과 ‘등록 원료의약품 사용’ 자료를 제출해 약제 상한금액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번 재평가 시행은 2020년 7월부터 시행된 속칭 ‘계단식 약가제도’에 기등재 제네릭을 적용하기 위한 후속조치다. 개편 약가제도에서 제네릭 제품은 생동성시험 직접 수행과 등록 원료의약품 사용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특허만료 전 오리지널 대비 53.55% 상한가를 획득할 수 있다.

여기서 각 요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상한가 기준 요건 당 15%씩 내려간다. 직접 개발하거나 생산하지 않고 전 공정을 다른 회사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허가받은 제네릭은 종전 최고가의 72.25% 수준의 약가를 받게 된다.

등록원료 사용 요건은 원료의약품 교체를 통해 충족할 수 있다. 즉 제약사들은 내년 2월까지 약가인하 수용 또는 생동성시험 수행을 통한 약가 유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로인해 제네릭 약가 재평가 공고 이후 제약사들의 생동성시험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0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1년 8개월 동안 승인받은 생동성시험 계획은 총 768건으로, 월 평균 38건으로 집계됐다. 종전 1년 8개월(2018년 11월~2020년 6월) 동안 승인받은 445건(월 평균 22건) 대비 72.6% 늘어난 수치다.

전체 임상시험이 줄어든 반면 생동성시험을 증가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2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포함한 국내 전체 임상시험은 총 99건으로, 전월 대비 16.8% 감소했다. 다만 2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은 총 51건으로 전월 48건에 비해 6.25% 증가했다.

지난달 승인받은 생동성시험 계획 51건 중 39건이 이미 판매 중인 기허가 제네릭 제품으로 나타났다. ▲엘앤씨바이오 ▲대웅바이오 ▲셀트리온제약 ▲바이넥스, 메디카코리아 ▲한국휴텍스제약 ▲하나제약 ▲더유제약 ▲마더스제약 ▲삼익제약 ▲휴비스트제약 ▲엔비케이제약 ▲뉴젠팜 ▲한국파비스제약 ▲킴스제약 ▲뉴젠팜 ▲비보존제약 ▲한풍제약 ▲일성신약 ▲유니메드제약 ▲신풍제약 ▲진양제약 ▲제뉴파마 ▲화이트생명과학 ▲위더스제약 등 기허가 제네릭의 생동성시험에 착수했다.

우선 이들이 높은 약가를 받기 위해선 제조원을 자사로 변경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보통 국내 제약산업 내 중소·중견 기업들 대부분은 자체 공장을 갖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CMO(위탁생산) 방식을 채택하는데, 약가 재평가 시 불리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CDO(위탁개발)사들이 등장하며 연구 또한 타사에 맡기는 경우도 있어, 이번 재평가에서 약가방어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제제연구를 직접 수행해 생동성시험을 진행한 후 같은 결과를 얻어내는 회피 전략이 최선이다. 하지만 생동성시험만 6개월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제제연구부터 다시 시행하는 제약사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조원 변경을 통해 약가를 방어하는 ‘자사전환’ 방식은 활성화 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일각에서는 지난해부터 중견 제약사 중심으로 제약공장 인수전이 활발히 진행된 바있는데, 그 이유가 약가 재평가를 준비하기위한 자사전환 때문이라는 분석도 흘러나온다.

다만 소형 제약사들은 각각의 제네릭을 모두 자체생산할 수 없을뿐더러, 수천개에 달하는 위탁 제네릭이 난립한 환경에서 자사전환을 추진하는 제품 비중은 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식약처로부터 허가받은 제네릭 중 생동성시험을 진행하지 않아 약가 하락을 앞둔 제품만 9145개에 달한다. 2019년 위탁 제네릭은 2277개, 2020년에는 1405개로 집계됐다.

이 같은 제네릭 약가 재평가 제도는 국내 제약산업 선진화를 위해 제네릭 난립을 줄이고 신약 개발 장려 및 의약품 품질 향상을 목적으로 정부와 보건당국이 기획한 방안이다. 그러나 현금확보의 어려움과 기술력 부족을 겪고있는 대다수의 중소형 제약사에게는 불만의 여지가 다수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한 중견 제약사 관계자는 "솔직히 국내 제약 산업이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건 글로벌 기업 의약품을 복제해 자체 의약품으로 성장시킨 ‘제네릭 사업’ 덕분이었다"며 "아직 국내 제약산업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고 판단된 상황에서 당국의 무리한 약가 재평가는 산업 전반을 차지하는 중소형 제약 생태계를 붕괴시키겠다는 의미로 밖에 안보인다"고 비판했다.

의약품 하나당 생동성시험에 대한 비용부담이 막대하기 때문에 다수의 제네릭을 보유한 제약사는 어쩔 수 없이 약가인하를 받아들이는 상황이 속출할 것이라고 업계는 내다봤다.

더불어 페니실린제제, 성호르몬제제, 생물학적제제, 세팔로스포린제제, 세포독성 항암제 등 단독 공정이 필요한 의약품의 경우 별도 공장이 필수적이지만, 생산 시설 모두를 갖춘 업체는 극소수이기 때문에 관련 제네릭을 생산하는 기업 역시 약가 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생동성시험을 거쳐 비동등 결과를 받게되면 약가 인하가 아닌 판매금지 및 회수 처분이 내려진다. 비동등 판정을 받은 제네릭과 동일한 제조시설에서 생산된 다른 위탁 제품도 재검수 대상에 포함돼 지난해 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의약품 임의제조 사건’만큼 거대한 파급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의약품 품질 향상을 위한 정부의 방침은 알겠지만 모든 정책은 단계를 밟아 나가며 천천히 시행되야하는 법이다"며 "계단식 약가제도 등 국내 산업 생태계와 맞지 않는 정책을 일괄하고 있는 당국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도들이 정말 제약산업 육성을 위한 길이 맞는지를 자문해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