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 보건 전문가들이 코로나19 비상사태(PHEIC) 종료 선언을 위한 조건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그간 국내 기업들의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CMO) 성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년 넘게 코로나 팬데믹을 겪어온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코로나19 백신 CMO 사업은 K바이오를 전세계에 알리는 선봉장 역할을 하기도했지만, 어떤 기업은 미래먹거리 확장을 위해 도전이 좌절되는 고배의 순간으로 기억될 전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과 SK바이오사이언스 L공장 전경 / 각사 제공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과 SK바이오사이언스 L공장 전경 / 각사 제공
블룸버그 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최근 WHO 전문가들이 당장은 코로나19에 대해 PHEIC 종료 선언을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이를 위한 조건과 시기 및 방법 등을 비공개로 논의하고 있다.

WHO의 PHEIC 종료는 시작 선언 때와 마찬가지로 사무총장이 전문가들과 협의해 선언한다. 앞서 WHO는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보고된 지 약 한 달이 지난 2020년 1월 30일 PHEIC를 선언했다.

PHEIC 종료 움직임은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생산이 점점 안정화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됐다. 실제로 화이자나 MSD(머크앤드컴퍼니)는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 자사의 코로나19 치료제의 복제약 생산을 허용하기로 한 상태다. 아스트라제네카 등 백신 제조사도 팬데믹 동안 자사의 백신 가격을 낮게 유지하기로 했다.

글로벌 바이오 의약품 생산 2위인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역시 팬데믹 종식을 위한 갖가지 노력들을 진행해왔다. 다만 이들 제약사들이 그간 추진해온 코로나19 CMO 사업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국내 당국으로 부터 허가를 받아 생산이 이뤄진 코로나19 백신은 현재까지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백스가 개발한 3종이다.

현재 모더나 코로나19 백신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해 5월 CMO 계약을 맺고 국내외로 공급하고 있다. 노바백스 백신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CMO를 전담하고 역시 국내외로 공급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생산 CMO 계약은 지난해 12월부로 종료된 상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모더나뿐 아니라 또 다른 mRNA(메신저리보핵산) 백신 CMO 계약 수주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미 미국 그린라이트 바이오사이언스와 코로나19 mRNA 백신 원료의약품의 CMO 계약을 체결하고 2분기 생산을 앞두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노바백스 코로나19 백신 생산에 집중할 계획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안동 L하우스에 노바백스 백신 위탁생산 라인 3개를 확보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한국과 태국, 베트남에선 노바백스 백신의 직접 판매를 맡는다.

에스티팜은 특정 백신에 대한 CMO 계약은 체결한 바 없지만 mRNA 백신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LNP(지질나노입자) 기술에서 앞서 있다. 에스티팜은 한국, 일본 등 아시아 12개국에서 제네반트 사이언스의 LNP 약물 전달체 기술을 이용해 mRNA 백신을 직접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 상태다.

반면 한미약품은 백신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한 제넥신이 최근 진행중인 코로나19 백신 ‘GX-19N’의 인도네시아 임상2/3상 시험 철회를 신청하는 등 사업 철수 움직임을 보이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러나 한미약품은 올해 1월 엔지켐생명과학, 자이더스와 함께 코로나19 백신 자이코브디 위탁생산을 위한 3자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코로나 관련 CMO 사업에 대한 카드는 아직 남아있는 상태다. 해당 본계약은 2분기에 이뤄질 전망으로, 한미약품은 자이코브디의 글로벌 공급을 담당하게 된다.

이밖에 한미약품은 MSD 코로나19 치료제 ‘몰누피라비르’ 특허를 잠시 빌려 제네릭(복제약) 생산을 추진, 저개발 국가 대상으로 공급, 판매를 진행할 계획이다.

휴온스글로벌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불안한 국제 정세를 고려해, 러시아산 코로나19 백신인 ‘스푸트니크V’의 위탁생산 사업을 접기로 했다. 앞서 휴온스글로벌 관계사인 휴메딕스는 100억원의 시설투자비용을 투입해 스푸트니크V 백신 충진을 위한 바이알 라인 증설을 마친 바 있다.

이번 결정에 따라 해당 바이알 라인은 추후 위탁생산 백신을 포함한 다른 의약품(주사제 등) 품목을 위한 설비로 대체할 계획이다.

한국코러스는 코로나19 스푸트니크V 백신 위탁생산에 대한 중단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현재 금융·물류 제재 등 국제 사회 동향이 러시아를 제재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CMO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져 가고 있지만, 한국코러스는 러시아 측으로부터 백신 공급 요청을 기다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녹십자는 지난해 8월, 얀센과 코로나19 백신 CMO 논의를 지속해 왔지만, 같은해 해당 사안을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냈다. 다만 당시 얀센은 코로나19 백신 사업을 점차 정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며, 최근 유럽의약품감독국(EMA)이 얀센 백신 접종자에 한해 ‘피부 소혈관 혈관염 수반 위험성’ 등 알수없는 부작용이 속출한다고 보고하는 등 시장 내에선 당시 협상 중단이 녹십자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과 같다고 보고있다.

GC녹십자는 완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오창 공장에 완제의약품 대량 생산이 가능한 통합완제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10억 도즈까지 생산량을 확대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GC녹십자가 화순 공장에 mRNA 백신 원액 생산을 위한 설비를 갖출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WHO가 코로나19 팬데믹 종료를 선언한다고 해도 코로나 백신은 이젠 독감 백신처럼 매년 진화하고 다양한 형태로 개발 될 예정이다"며 "현재 시점에서 CMO 사업이 좌절된 기업도 언제 어떤 기업과 또다른 계약을 통해 백신 생산 사업을 감행할지 모르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