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업계가 올해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새로운 미래전략을 세우기 위한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경영인이 교체되고 회사 이름을 바꾸는 등 기업 미래를 변화시킬 움직임이 감지됐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가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데다 종식 이후 다변화될 경쟁체재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왼쪽부터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 송준호 총괄사장, 최용주 삼진제약 대표, 김민영 동아에스티 대표. / 각사 제공
왼쪽부터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 송준호 총괄사장, 최용주 삼진제약 대표, 김민영 동아에스티 대표. / 각사 제공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 지주사 한미사이언스를 비롯해 동국제약, JW중외제약, 동화약품, 삼진제약, 부광약품, 동아에스티 등 전통 제약사들이 경영체제 전환을 결정했다.

한미사이언스를 12년간 이끈 한미약품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의 장남 임종윤 사장이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신 임 회장의 부인 송영숙 회장이 단독대표 체제로 출범해 회사의 새로운 변혁을 알렸다.

임종윤 사장은 올해 3월이 등기임원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이었지만, 이번 정기주주총회에서 재선임 안건이 상정되지 않았다. 임 사장은 2010년부터 고 임성기 회장과 공동으로 대표이사를 맡았고 2016년부터 4년간 단독 대표이사 체제를 가동했다. 2020년 임성기 회장 타계 이후 송 회장이 추가로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2020년 9월부터 1년 6개월간 모자 각자 대표이사 체제가 운영됐다.

다만 임 사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 사장을 유지하기 때문에 경영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며, 해외 사업을 중점적으로 수행할 전망이다.

동국제약은 12년간 회사를 이끌었던 오흥주 대표이사 총괄사장 대신 송준호 신임 대표이사 총괄사장을 신규 선임했다. 오흥주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최근 동국제약은 현대바이오와 코로나 치료제 위탁생산 계약, 동아에스티·신풍제약·동구바이오제약과 전립성비대증 복합제 개발에 나서는 등 여러 기업과 협업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JW중외제약 역시 29일 대표이사 교체를 앞두고 있다. 2019년 12월 신규 선임된 이성열 대표에 대한 재선임 안건이 이번 정기주주총회에 상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JW중외제약은 이성열·신영섭 대표로 이뤄진 투톱 체제를 구축했다.

이로써 이번 주총을 통해 3년만에 신영섭 단독 대표 체제가 열릴 전망이다. 만약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되는 최지우 JW홀딩스 최고재무책임자가 대표이사에 오를 경우 투톱 체제가 재구축 된다.

삼진제약은 창립 이후 처음으로 단독대표 체제에 들어선다. 삼진제약은 이번 주총을 통해 임기가 만료된 장홍순 사장이 물러가고 최용주 대표가 단독대표로 회사를 이끌어갈 전망이다. 2019년 장홍순·최용주 사장은 대표이사로 선임돼, 창업주인 조의환·최승주 회장과 함께 4인 공동대표 체제를 구축했다. 이후 지난해 조의환·최승주 회장이 임기만료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고, 전문경영인인 장홍순·최용주 대표 투톱체제를 형성했다.

부광약품은 최대주주가 바뀌며 경영진에도 변화가 생겼다. 에너지·화학 전문기업 오씨아이(OCI)는 올해 2월 1461억원에 부광약품 지분 11%를 인수하며 최대주주에 등극했다. 이로써 부광약품은 기존 유희원 대표이사 사장 단독체제에서 유희원 OCI 부회장이 신임대표로 참여하며 각자대표 체제를 형성했다.

OCI는 2018년부터 바이오사업부를 신설하고 항암제 분야를 타깃으로 국내외 유망 바이오 벤처기업과 펀드에 재무적 투자를 감행해온 만큼 부광약품의 신약 파이프라인에 아낌없는 지원을 쏟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동아에스티는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김민영 사장을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이로써 동아에스티는 엄대식 대표이사 회장과 한종현 대표이사 사장의 각자대표 체제에서 김 사장 단독대표 체제로 변경된다. 기존 대표였던 엄 회장과 한 사장은 물러난다. 한 사장은 동화약품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오너 3·4세의 경영 참여도 눈에 띈다. 한독은 이번 주총을 통해 창업주 3세인 김동한 경영조정실 상무를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김 상무는 창업주 고 김신권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김영진 회장의 장남이다. 2014년 한독에 입사한 후 팀장, 실장, 이사를 거쳤다. 부친인 김영진 회장은 사내이사로 재선임됐다.

대원제약은 주총에서 창업주 3세인 백인환 마케팅본부장 전무를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백 전무는 창업주인 고 백부현 회장의 손자이자 백승호 회장의 장남이다. 백 전무는 미국 브랜다이스대를 졸업한 후 2011년 대원제약에 입사했다. 해외사업과 ‘콜대원’ 등 일반의약품을 판매하는 헬스케어사업을 담당하다가 2019년 마케팅본부 전무로 승진한 바 있다.

보령제약은 오너 3세인 김정균 보령홀딩스 대표이사를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또한 장두현 이사가 대표로 재선임되며 김정균·장두현 각자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됐다. 김 대표는 그룹 창업주인 김승호 회장의 손자이자 보령홀딩스 김은선 회장의 아들이다. 2014년 보령제약에 이사대우로 입사해 전략기획팀, 생산관리팀, 인사팀장을 거쳤다. 2017년부터 지주회사인 보령홀딩스의 사내이사 겸 경영총괄 임원으로 재직하다 2019년 보령홀딩스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특히 보령제약은 사명을 ‘보령제약 주식회사’에서’ ‘주식회사 보령’으로 변경하는 안을 이번 주주총회를 통해 승인했다. 보령의 사명 변경에는 회사를 종합 헬스케어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회사 측은 후속 변경 절차를 밟고 4월부터 제품등에도 새 사명과 CI(기업이미지)를 적용시킬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사명을 바꾼 기업은 이뿐만 아니다. 자동차 내장재 전문업체였던 두올물산은 지난해 12월 본격적으로 항암신약개발 사업에 진출할 것을 밝히며, 올해 3월 카나리아바이오로 사명을 변경했다. 회사는 현재 면역항암제인 ‘오레고보맙’의 임상 2상을 마치고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우리들제약은 이번 주총을 통해 사명을 팜젠사이언스로 하는 정관변경을 의결했다. 회사 측은 사명 변경으로 R&D역량을 갖춘 글로벌 바이오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팜젠사이언스는 사명 및 CI 변경 작업에 착수하는 한편 조만간 기업의 청사진도 공개할 예정이다.

제약기업 중 가장 빠른 주주총회를 개최한 경남제약헬스케어는 1월 사명을 커머스마이너로 변경했다.

커머스마이너는 현재 경영진의 횡령·배임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여 있어 기존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사명 변경을 감행한 것으로 관측된다. 회사는 사명 변경에 앞서 지난해 6월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로부터 상장폐지 통보를 받았으며, 이의신청서를 제기해 현재 심의 속개를 기다리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대대적인 경영권 전환 및 사명 변경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회사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이전과는 다른 색깔을 갖겠다는 선언과도 같다"면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산업계 전반이 급변하고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기존에 갖고있던 전통성을 탈피하고 융통성있는 구조로 사업전략을 변화시켰다"고 분석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