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DX부문장)이 그린 ‘빅픽처(큰그림)’에는 네오 QLED 8K 대중화가 있다. OLED는 빠졌다. 올해 8K TV에 대한 집중적인 마케팅을 통해 프리미엄 TV 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야심찬 각오가 담겼다.

8K(7680×4320)는 가로와 세로 화면 모두 4K(3840×2160)의 두배다. 풀HD(1920×1080)의 가로와 세로를 각각 두배 늘린 4K를 다시 두배 늘린 초고해상도다. 75인치 이상 TV에서 8K 해상도를 제대로 체감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오 QLED 8K’ 광고 영상 / 삼성전자
‘네오 QLED 8K’ 광고 영상 /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30일 오후 11시 온라인으로 개최한 ‘언박스 앤 디스커버(Unbox & Discover)’에서 사용자 경험을 중심으로 한 사업 비전과 2022년 TV 신제품을 공개했다. 40분 분량의 영상에서는 OLED 기반 TV가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았다. 31일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사옥에 위치한 ‘딜라이트 홍보관’에도 OLED TV를 찾아볼 수 없었다.

전자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삼성전자가 올해 TV 사업에서 사실상 OLED를 ‘패싱’한 것으로 풀이한다. 언박스 앤 디스커버가 단순히 제품 라인업을 공개하는 것이 아닌 전반적인 TV 사업 전략을 세계에 발표하는 자리인 만큼 의미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 언박스 앤 디스커버에서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OLED TV 패널 거래설의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TV 라인업에서 QD-OLED를 소개할 경우 LG디스플레이가 생산하는 W-OLED 패널 역시 언제든 도입할 수 있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OLED TV를 주력 제품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향후 LG디스플레이와의 빅딜이 지지부진하거나 자칫하면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CES 2022에 이어 이번 행사에서도 OLED TV 소개를 배제한 것은 적어도 연내 LG디스플레이의 W-OLED 패널을 탑재한 TV를 출시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며 "삼성전자의 8K 집중 전략이 성공을 거둘 경우 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회사 내부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DX부문장)이 30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언박스 앤 디스커버' 행사에서 오프닝 연설을 하고 있다. / 삼성전자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DX부문장)이 30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언박스 앤 디스커버' 행사에서 오프닝 연설을 하고 있다. / 삼성전자
다만 한 부회장이 강조한 8K TV 대중화는 쉽지 않은 미션이다. 콘텐츠 부족과 4K TV 대비 비싼 가격이 수년간 소비자의 발길을 돌리게 한 치명적 약점으로 지목됐는데, 소비자에게 8K를 어필하기엔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2021년 하반기 세계 시장에 출하된 8K TV는 17만7800대쯤이다. 전년 동기 대비 20% 감소했다. 2021년 4분기 출하량은 9만5000대쯤으로 전년 대비 30% 줄었다. 수치만 보면 시장이 개화하기는커녕 축소하고 있는 셈이다. 옴디아는 올해 상반기에도 8K TV 출하량이 15만1900대로 전년 대비 18.6%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올해 TV 매출에서 8K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을 2021년보다 두배 이상 늘린다는 목표를 잡았다. 8K로 촬영한 스마트폰 영상을 TV를 통해 8K 화질로 볼 수 있고, HD나 4K 소스를 8K로 업스케일링(Upscaling)해 시청 가능한 장점 등이 소비자의 구매 심리를 자극할 것이란 기대가 크다.

8K 대중화를 향한 삼성전자의 행보는 절박하기까지 하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옴디아 자료 기준)은 2019년과 2020년에 30%를 넘겼지만, 지난해 29.5%로 전년 대비 하락했다. OLED TV 판매 비중을 늘린 LG전자의 위협이 결정적이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소비자의 실질적 화질 체감이 어려운 TV 영상광고를 꺼려왔는데, 최근 다시 TV 광고를 내놨다.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나온 네오 QLED 8K 광고 이후 7개월 만이다. 광고에서 오랜 시간 강조한 단어가 바로 ‘8K’와 ‘빅픽처(Big Picture)’다. 언박스 앤 디스커버 행사명도 ‘Let’s Do Neo QLED 8K’로 8K가 주인공이었다. 디지털프라자, 백화점, 하이마트 등 주요 오프라인 매장에는 ‘8K존’을 만들어 대대적 마케팅에 돌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4K TV가 본격 출시된 2013년 당시에도 회의적 시각이 많았지만 30인치대에서 50인치대로 대형화를 이끈 회사의 전략이 적중하면서 압도적 시장 1위로 발돋움 할 수 있었다"며 "70인치대 이상 크기에서 강점을 발휘하는 8K TV 역시 비관적 전망을 딛고 삼성전자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