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특수를 누린 바이오기업들이 앤데믹(풍토병화)을 대비해 대규모 투자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대대적인 인수합병(M&A)를 진행해 기술 및 특허를 빠르게 확보하는 한편, 공장을 신설해 생산 능력을 대폭 확대하는 등 팬데믹 시기에 얻은 막대한 자본력으로 경영지속성을 창출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왼쪽부터)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사장과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지난달 개최한 기자간담회와 정기주주총회에서 자사의 미래전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각 사 제공
(왼쪽부터)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사장과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지난달 개최한 기자간담회와 정기주주총회에서 자사의 미래전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각 사 제공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수혜기업으로 손꼽히는 SK바이오사이언스, 삼성바이오로직스, SD바이오센서, 씨젠 등이 속속 대규모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이들 기업은 코로나로 인한 수주 물량 잭팟으로 보유 현금이 급격하게 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적극적인 M&A를 통해 백신 사업을 빠르게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향후 3~4년간 M&A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며 "좋은 매물이 나오면 제품뿐 아니라 기업이나 기술 등 가리지 않고 사들이겠다"고 설명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이러한 자신감은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벡스 등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CMO) 사업이 호황을 누리며 발생한 현금자본에서 나왔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2년간 영업이익으로만 5000억원 이상을 확보하며 제약바이오업계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안 사장은 "현재 현금으로만 1조6000억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기에 매년 영업활동 현금흐름으로 수천억원을 추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외에서 추가로 투자를 받아 5조원 이상을 확보한 후, 이를 M&A에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생산시설 투자도 늘릴 계획이다. 현재 인천 송도 R&PD(연구·프로세스개발) 센터 구축을 위해 지난해 말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토지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인천 송도동 인천테크노파크 확대조성 단지인 7공구 Sr14 구역은 3만414㎡(9216평)에 달하는 대규모 부지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이곳에 3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R&PD 센터에는 백신·바이오 분야 기초연구와 공정개발 및 생산을 위한 연구소, 공장, 사무실 등이 입주할 예정이다.

기존 백신 생산거점인 ‘안동 L하우스’ 역시 시설 확장에 나선다. 안 사장에 따르면 생산능력을 현재의 3배에서 10배까지 늘릴 구상을 계획 중이다. 또한 전세계 다양한 기업들과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현지시장을 공략하겠다는 포부도 공개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코로나 백신 수주로 올라간 명성과 자본력을 활용해 포트폴리오 확장과 공장 증설을 꾀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기존 항체의약품 CMO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세포·유전자 치료제, pDNA, 바이럴 벡터 등 차세대 바이오의약품으로 확장할 예정이다. 또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인수로 CDMO(위탁개발생산)·바이오시밀러·신약 등 3대 축을 갖춘 글로벌 종합 바이오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삼성바이오로직스 CMO 부문은 지난해 3분기 기준 연간 누적 계약 건수는 61건으로 2020년 전체 누적 계약 건수(57건)를 넘어섰다. 1~3공장은 풀(full) 가동에 가까운 높은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를 기반으로 지난해 2분기 이후 2개 분기 연속 분기 기준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회사 측은 "국내 최초 모더나 mRNA 백신의 완제 위탁생산 및 식품의약품안전처의 mRNA 백신 품목허가를 완료한데 이어, 미국 그린라이트 바이오사이언스와의 mRNA 백신 원료의약품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하는 등 mRNA 분야사업 확장에 성공적으로 첫발을 뗐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와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자가진단키트 수출과 판매가 급증하면서 제약바이오기업 중 처음으로 연매출 2조원을 돌파한 SD바이오센서 역시 지속적인 수익 확장을 위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SD바이오센서는 최근 충북 증평공장에 1880억원을 투자해 신속분자진단기기 카트리지 자동화 생산 시설 및 설비를 확충한다고 발표했다. SD바이오센서가 계획 중인 공장은 약 8880평으로, 국내에 위치한 SD바이오센서 공장 중 최대 규모다.

SD바이오센서는 2023년까지 증평공장 내 연간 5700만개의 M10 카트리지 신규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투자에 따라 SD바이오센서는 청원, 평택, 구미에 이어 증평공장에 추가로 대량 생산 설비를 갖추게 됐다.

M&A도 적극적이다. 올해 공격적인 M&A 계획을 밝힌 SD바이오센서는 3월 독일 체외진단 유통사 베스트비온(Bestbion)을 161억원에 인수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SD바이오센서의 올해 첫 M&A로 글로벌 진출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진단기기 업체 씨젠도 대대적인 R&D(연구개발) 확대로 미래먹거리 탐색에 나선다. 씨젠은 지난해 R&D 비용으로만 750억원을 집행했다. 2019년 98억원보다 7.5배 늘어난 규모다. 연구개발 인력도 2019년 115명에서 2020년 259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씨젠은 궁경부암(HPV), 성매개감염증(STI), 코로나 외 호흡기질환 등 진단 시약 및 장비 개발에 돈을 아낌없이 쓰겠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미국 법인 의과학부문(Scientific and Medical Affairs)을 총괄할 바이오 임상 전문가에 글렌 핸슨 박사를 영입하는 등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광폭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모든 업계가 마찬가지겠지만 잠깐의 성공에 취해 잠시라도 제자리 걸음을 하면 빠르게 도태되는 곳이 바이오 업계다"며 "현금 자본력을 빠르게 연구 개발 분야 및 생산 설비 증설에 투자해야만 앞으로 더 치열해 질 글로벌 바이오 산업 환경에서 족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