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에는 목적이 있다. 메타(구 페이스북)는 2014년 메타버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가상현실(VR) 헤드셋 제조 업체 오큘러스 VR을 인수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버워치’,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으로 유명한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인수를 선언했다. 메타버스 사업 확장과 게임 경쟁력 강화 등이 배경이다. 일부 게임사는 블록체인 사업 강화를 위해 소셜 카지노 업체, 블록체인 게임사를 인수했다.

반면 게임 개발사 크래프톤의 커플 앱 ‘비트윈’ 인수는 투명하지 않다. 인수 목적, 활용 등 구체적으로 밝힌 내용은 전무하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3월 자회사 비트윈어스를 설립하고, VCNC로부터 커플 메신저 비트윈 사업부를 인수했다. 당시 크래프톤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사업 확장 목적으로 비트윈을 인수했다며 구체적인 사업 계획 등은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했다. 이에 업계는 크래프톤이 수집된 비트윈의 데이터를 자사 인공지능(AI) 연구개발에 활용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사용자 대화 데이터를 이용해 버추얼 휴먼(가상인간) 기술을 고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비트윈은 지난해 3월 비트윈 사용자들에게 개인정보 처리 방침 변경 사실을 고지했다. 개정된 방침에 따르면 비트윈은 ‘회원이 서비스 이용을 위해 자발적으로 입력하는 텍스트 및 정보 등’을 수집할 수 있고, 신규 서비스(제품) 개발 및 과학적 연구를 위해 수집된 개인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 사용자 고지 이후 같은 해 4월에는 개인정보 처리 방침을 변경했다. 사용자 대화 데이터를 신규 서비스 개발과 과학적 연구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수집된 사용자 대화 데이터는 실제 어딘가에 활용되고 있다. 비트윈 측은 지난해 3월 대화 데이터 수집과 관련해 서비스 운영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1월에는 입장을 바꿔 신규 서비스 개발에 대화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모회사인 크래프톤 역시 비트윈 사용자 데이터를 일부 사용하고 있는 것은 맞다고 밝혔다. 또 연인 간 대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만큼 개인정보 침해가 되지 않도록 연구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비트윈 사용자는 자신의 대화 내용이 정확히 어디에 사용되는지 알지 못한다. 비트윈 측은 사용자 대화 데이터가 실제로 새로운 서비스 개발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 사용되고 있다면 개발 중인 서비스는 어떤 서비스인지를 묻는 사용자 문의에 제대로 답하지 않고 있다. 크래프톤도 사용자 데이터를 어느 정도로,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에 함구하고 있다.

의문이 생긴다.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해 이용하면서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리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말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참고할 수 있는 선례가 존재한다. 지난해 1월 발생한 AI 챗봇 ‘이루다’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얘기다. 당시 이루다의 경우 개발사인 스캐터랩이 자사 다른 애플리케이션인 ‘텍스트앳’과 ‘연애의 과학’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이루다에 전용해 문제가 됐다.

앞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이루다 사건을 조사 한 뒤 결정문에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 목적으로는 ‘신규 서비스 개발’이 명시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용자가 이루다와 같은 기존 서비스와 전혀 다른 신규 서비스 개발과 운영에 자신의 개인정보가 이용될 것을 예상하고 이에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이다. 개인정보 처리 방침에 ‘신규 서비스 개발’을 적어놓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다. 한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개발 중인 신규 서비스가 ‘이루다’라면 ‘이루다’라고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규 서비스 개발이 아닌, 과학적 연구 등을 위한 사용자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다면 더더욱 이를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기술 개발과 실증, 기초연구, 응용연구 및 민간 투자 연구 등 과학적 연구를 위해서라면 가명 처리된 정보는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위는 최근 비트윈의 개인정보 침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운영사인 비트윈어스 조사에 착수했다. 필요시 비트윈어스의 모회사인 크래프톤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크래프톤 측은 여전히 수동적 자세다. 특히 크래프톤은 비트윈 인수 후 대화 채널을 크래프톤으로 단일화했다. 비트윈 측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크래프톤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크래프톤 측은 "현재 개인정보위 조사 중인 상황이라 별도로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감출수록 의심만 커진다. 법적으로 거리낄 것이 없다면 더욱 적극적 자세로 해명에 나설 필요가 있다.

임국정 기자 summe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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