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줄 알았던 리베이트 관련 ‘급여정지’ 행정처분이 아직까지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4년전 사문화된 법안이 오늘날 그 효력이 발생해, 환자들은 오랜기간 처방받던 의약품을 더 이상 투약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2014년 7월 정부는 불법 리베이트를 근절하겠다는 취지로 적발품목에 급여정치 처분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당시 시행된 ‘리베이트 투아웃제’는 처음 리베이트를 제공하다 적발될 경우 금액에 따라 경고를 받거나 1~12개월의 건강보험 급여정지 처분을 받게 되고, 2회 적발 시 영구 퇴출이 이뤄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다 2017년 노바티스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 해당 처분으로 급여정지 목록에 올랐다가 환자단체의 강한 반발로 인해 제도에 대한 비합리성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백혈병환우회는 "오랜기간 글리벡을 복용받던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이 다른 약제로 처방을 강요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발했다. 관련 전문학회 등 의료계에서도 급여정지 처분이라는 비의학적 이유로 약품을 변경하는 것에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정부와 제약사간의 제도적 논리가 환자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사건이었다.

이에 정부는 2018년 9월 리베이트 적발시 1·2차에는 약가인하를, 3·4차에는 급여정지 처분을 받도록 개정했다. 특히 지난해 12월엔 3·4차 처분을 받는 경우에도 리베이트 의약품이 환자진료에 불편을 초래하는 등 공공복리에 지장을 줄 것으로 예상될 때, 과징금 처분으로 대체될 수 있도록 변경되면서 급여정지 처분은 사실상 사문화 됐다.

또 2020년 10월 급여정지에 대해 과징금 대체 사유로 ‘환자 진료에 불편을 초래하는 등 공공복리에 지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때’를 추가했다. 이로써 7년간 두 번의 개정을 통해 환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급여정지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올해 급여정지 처분 대상 의약품이 수백가지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국제약품의 고혈압 치료제 ‘발사르’ 등 전문의약품 11종이 이번달부터 건강보험 적용이 일시정지된다. 옛 제도 시행 기간인 2014년 7월부터 2018년 9월 사이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현재 또는 미래에 적발되도, 해당 약제는 급여정지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2018년에 개정된 신법을 그 이전에 발생한 리베이트 제공 행위에 소급 적용할 수 없다는 점도 존재한다.

이로인해 제약사는 물론 환자와 의료계까지 난감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시 환자 부작용이 리베이트 근절에 대한 기대 보다 크다는 판단과 환자의 건강권을 위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법이 개정됐지만, 단순 법리적 논리에 의해 사문화된 법안이 그 생명력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환자단체 관계자는 "시대가 지나면서 많은 논란과 다양한 검토를 거쳐 합리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 법 제도라고 생각한다"면서 "국민 건강에 침해돼 개정을 거친 법이 아직까지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동일한 대체 약제가 없는 경우 ▲대체 약제의 처방·공급·유통이 어려운 경우 ▲약물 변경으로 환자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등에 급여정치 처분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제약사들이 사실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정부가 관련 내용을 판단하는 데도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급여정지 처분을 피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치료적 동등성(therapeutic equivalence)에 대한 부작용 우려도 존재한다. 의약품에 따라 생물학적 동등성(bioequivalence)이 인정되더라도 치료적 동등성에 차이가 있다는 의학적 근거 때문이다.

의약품의 용량을 점진적으로 줄이거나(tapering) 반대로 점진적으로 늘리는 등의 요법이 이뤄지고 있는 경우 또는 호르몬제 등을 일정 기간 동안 스케줄에 따라 투약하고 있는 경우 중간에 의약품이 변경되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비의학적 이유로 급히 의약품을 변경할 경우도 유효성에 차이가 발생해 치료 기회를 상실하거나 부작용을 겪는 등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동일한 성분의 의약품들 간에도 첨가제가 다를 수 있는데 첨가제에 따라서는 설령 허가받은 첨가제라고 하더라도 호흡곤란 등 아나필락시스, 알러지, 락토즈 불내성 소화기관 부작용 등 중증 또는 경증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난감한 상황은 병의원과 약국 등도 마찬가지다. 의료계에서는 급여정지로 인해 상당한 경제적, 행정적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요양기관은 처방 변경을 위해 대체 약품을 재선정해야 하기에 입찰 과정을 한번 더 시행해야 한다. 의사들은 오랜기간 환자가 큰 부작용 없이 처방받던 약제를 변경해야 한다며 설득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병원 의사는 "고혈압 등 다양한 약제를 장기복용하는 환자분들은 오랜 기간 약품을 섭취하면서 자신에게 어떤 약이 더 잘듣고, 특별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 지를 명확히 알고 계신다"며 "그런데 환자에게 4년전 법으로 인해 더이상 선호 의약품을 처방해드릴 수 없게 됐다는 말을 건내야 하는 상황이 참으로 난감할 따름이다"라고 토로했다.

불법 리베이트에 대한 중징계는 국내 의약산업을 건강하게 만드는 필수요소이지만, 국민의 건강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제재가 과연 옳은가에 대해선 물음표가 존재한다. 또한 치명적인 규제는 발전하는 제약산업을 위축시키므로, 정부는 이에 대한 균형을 맞춰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이끌어야한다.

7년간 기나긴 논의를 거쳐 합의에 이른 법령을 제쳐두고, 4년전 사문화된 법안이 아직도 살아숨쉬고 있다는 점이 과연 모두를 위한 선택일까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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