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세계 정상을 지킨 한국 디스플레이가 중국에 밀렸다. 2004년 디스플레이 종주국 일본을 제치고 성장가도를 달렸지만, 이젠 반대로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의 공세에 몸살을 앓는다. 한국이 17년 전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와 시장조사업체 옴디아 자료를 종합하면, 2021년 매출액 기준 국가별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은 중국이 41.5%로 1위에 올랐다. 한국은 한참 뒤쳐진 33.2%로 2위다.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는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에서 중국에 거의 백기를 들었다. 삼성은 최근 LCD 사업철수를 선언했고, LG도 대형 LCD 생산라인을 감축 중이다. 한발 앞선다고 생각한 OLED 기술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지난해 한국의 OLED 시장 점유율은 82.8%로, 2016년(98.1%)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인다. 중국은 같은 기간 1.1%에서 2021년 16.6%로 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다.

중소형 OLED는 독점 수준으로 평가받지만, 수년 내 1위 자리가 바뀔 수도 있다. 중국 1위 디스플레이 기업 BOE의 올해 OLED 패널 생산량은 전년 대비 70% 늘어나 1억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BOE는 갤럭시 중저가 시리즈를 넘어 애플 아이폰까지 야금야금 모바일용 OLED 공급처를 확대 중이다.

한국의 디스플레이 2021년 수출액은 26조4800억원 규모에 달한다. 반도체, 자동차 등과 함께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대표 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위상이 꺾였다. 1월 국회를 통과한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에는 반도체·2차전지·바이오가 전략산업으로 포함된 반면, 디스플레이는 쏙 빠졌다

차기 정부 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디스플레이 홀대론이 불거졌다. 반도체와 관련해서는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20%로 상향하고 기술인력을 10만명 늘리겠다는 청사진이 제시됐다. 반면 디스플레이와 관련한 뚜렷한 지원책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는 21일 새 정부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국가전략기술 중 ‘초격차 전략기술’ 분야에 반도체·2차전지·5G·6G·차세대 원전·수소와 함께 디스플레이를 포함시켰다. 디스플레이도 시설투자에 대해 대기업은 6%, 중견기업은 8%, 중소기업은 16%의 법인세액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인재 육성 측면에선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업부가 6일 발표한 국책과제인 ‘산업 혁신인재 성장지원사업’에서 디스플레이 분야는 단 1건도 채택되지 않았다. 현재 진행 중인 ‘웨어러블 스마트 디바이스’ 과제는 올해면 종료되고, ‘차세대 디스플레이 공정장비소재’ 과제는 2024년에 마무리된다. 신설 과제가 선정되지 않는 한 3년 후엔 디스플레이 인력양성 국책과제가 사라지는 셈이다.

현재 수준의 세액공제 혜택과 인재 양성책으론 중국의 공세를 버텨낼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은 천문학적 규모의 보조금 지원과 함께 고연봉을 미끼로 한국 인력을 영입하며 이미 산업의 주도권을 가져갔다.

일분일초가 급하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수년 전부터 뚜렷한 위기 징후를 보였지만 제대로 된 대응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가전략기술 지정은 의미가 크다. 차기 정부에선 반도체 지원만큼 디스플레이에서도 과감한 세제 혜택을 받길 바란다. 현재의 고급인력을 지키고,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는 핀셋 지원도 시급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