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추진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통신망을 공짜로 이용하겠다는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사용료 지불을 요구하는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 간 갈등을 해결할 열쇠로 주목된지만, 21일 열린 해당 상임위원회(상임위) 법안 소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공청회 등 추가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법안의 완결성을 높일 기회인 만큼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평가도 있지만, 미국 관계 기관과 기업은 해당 법안에 여전히 반대 목소리를 낸다. 국회 자체 일정으로 법안 처리가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5월 열리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 항소심은 국회 입법 절차와 관계없이 관심이 쏠린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각 사 로고 / IT조선 DB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각 사 로고 / IT조선 DB
신중론 제기한 과방위, 법안 통과 대신 공청회 카드 택했다

24일 국회와 통신 업계 등에 따르면, 21일 국회에서의 법안 통과가 불발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향후 진행 일정에 업계 관심이 높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21일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2소위)를 열고 넷플릭스와 구글 등 글로벌 CP의 망 사용 계약과 사용료 지급을 의무화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상정했지만, 결국 통과를 보류했다.

글로벌 CP의 사업 확대로 국내 통신망의 트래픽이 급증했는데, 통신망 기반으로 사업 중인 구글이나 넷플릭스 등 CP는 망 이용료 지불을 거부하고 있다. 해당 개정안은 이런 문제가 풀고자 상정된 법안이다. 국회 관련 상임위인 과방위 소속 김영식·이원욱·양정숙 의원 등은 총 6개에 달하는 법안을 상정했다.

과방위 여야 의원은 21일 국내 사업자 역차별 문제와 망 중립성, 계약 자유의 원칙 등을 언급하며 법안 처리에 우려를 나타냈다. 성급한 법안 통과보다는 관련 업계와 정부 기관, 전문가 의견을 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논의도 더했다. 이에 공청회를 열고 다양한 곳에서 의견을 청취, 법안 처리에 도움을 받겠다는 입장이다.

해당 법안의 통과를 기대하던 통신 업계는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실망하지 않는 분위기를 보인다. 여야 간 입장이 갈려 법안 통과가 불발된 사례가 아니라 법안의 완결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처리가 보류된 만큼 앞으로 진행될 공청회를 통해 목소리를 충분히 내겠다는 입장이다.

국회 과방위 관계자 역시 "관련 법안이 여럿인 만큼 단번에 통과되긴 어렵다"며 "공청회를 진행하자고 얘기가 나온 만큼 앞으로 더 많은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 IT조선 DB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 IT조선 DB
자국 기업 피해 우려하는 美…유튜브는 국내 투자 줄이겠다는 경고도

글로벌 CP와 미국 관계 기관이 법안에 반대 의사를 나타내는 점은 부담 요소다. 망 사용료 지급을 두고 국내 ISP인 SK브로드밴드와 소송까지 진행 중인 넷플릭스는 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구글의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유튜브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거텀 아난드 유튜브 아태지역 총괄 부사장은 20일 한국 공식 유튜브 블로그에 글을 올려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국내 투자를 줄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최근 ‘2022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발간해 망 사용료 지급을 의무화하려는 한국 국회에 우려를 표했다. USTR은 자국 CP가 한국 사업자와의 경쟁에서 불리할 수 있는 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국내외 기업을 차별 없이 대우해야 한다고 명시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 미국 대사 대리 역시 21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개최한 한 세미나에 참석해 미 USTR이 주장한 것과 동일한 내용의 우려를 나타냈다.

국회는 5월 인사청문회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하반기에는 상임위 구성원 교체를 진행한다. 이달부터 당장 공청회를 포함한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여야가 국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등 이슈로 갈등하는 만큼 법안 처리가 예상보다는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넷플릭스 본사 전경 일부 / 넷플릭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넷플릭스 본사 전경 일부 / 넷플릭스
법원으로 쏠리는 시선…넷플릭스-SKB 항소심 2차변론 내달 진행

국회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처리에 신중론을 내세운 가운데, 법원에서 진행 중인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항소심에 관심이 쏠린다.

넷플릭스는 2020년 4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망 사용료 지급 의무가 없음을 확인하는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넷플릭스는 1년여 소송 끝에 2021년 6월 1심에서 패소하자 항소를 택했다. SK브로드밴드는 이에 부당이득 반환으로 반소를 제기, 병합 심사로 항소심 1차변론을 마쳤다.

2차변론은 5월 18일 열린다. 재판부는 1차변론까지 각사별 주장을 들은 만큼 2차변론에선 양사 간 쌍방 변론과 반박을 진행하겠다고 예고했다. 기술 적인 부분에 대한 논의인 만큼 상세 설명을 더한 프레젠테이션도 진행할 예정이다.

통신 업계는 소송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고 국회에서의 법안 처리에 기대를 나타냈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소송에도 일부분 영향을 줄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다. 하지만 기존 시나리오와 전개가 다소 달라지면서 소송 결과에 대한 중요도가 더 커진 상황이다.

넷플릭스는 3월 항소심 1차변론 후 "인터넷 생태계 참여자는 소속 국가를 불문하고 상호 자율 합의로 시장 원리에 따라 연결 조건을 정했다"며 이후 진행되는 소송에도 망 사용료 지급 의무가 없음을 강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와 달리 네이버와 카카오, 디즈니플러스 등 국내외 CP는 망 사용료를 지급하고 있는 점, 망 사용료 지급이 망 중립성과는 별개의 사안인 점 등을 들어 의견을 개진할 예정이다.

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대표 변호사는 넷플릭스와의 항소심 1차변론 후 기자들과 만나 "(재판부가) 예단을 하고 있진 않아 보인다"며 "성실하게 준비해서 5월 재판을 준비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