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조기진단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미국과 유럽 등에서 각광받는 ‘액체생검’ 기술에 대한 국내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기존 암 검사 대비 편의성과 정확도가 높아, 진단 시장의 패러다임이 전환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해외 기업이 독과점하기 전에 빠른 국산화 추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액체생검에 대한 규제를 속속 풀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픽사베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액체생검에 대한 규제를 속속 풀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픽사베이
한국바이오협회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을 비롯해 유럽 등에 위치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액체생검’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이들 규제당국은 액체생검에 대한 검사비용 상승 및 기술발전 저해 요소를 제거함에 따라 국민이 암 조기검진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개선하고 있다.

한국 국민이 평균기대수명 83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8%로 추정된다. 난치성 암도 조기에 발견만 한다면 생존 확률을 극대화할 수 있어, 어떤 암종을 불문하고 치료 생존률 향상을 위해서는 조기진단이 필수적이다.

액체생검은 환자의 조직을 직접 떼어내는 기존 ‘조직생검(Tissue Biopsy)’과는 다르게 생체 내 혈액에서 순환 종양성 DNA, 순환성 종양세포, 엑소좀 등을 분리하고 내부의 핵산 정보를 분석하는 비침습성(피부를 관통하지 않거나 신체의 어떤 구멍도 통과하지 않고 질병 따위를 진단) 기술이다.

조직 검사에 비해 편하고 빠르며, 높은 정밀도가 요구되기 때문에 정확도 역시 높다. 최근 의료계 패러다임이 환자 개인의 유전체 정보·임상정보를 분석해 질환의 진단 및 치료에 활용하는 정밀의료 형태로 변화하면서 액체생검이 더욱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액체생검 시장규모는 2016년 2349만달러(249억원)에서 연평균성장률 15.6%를 통해 2030년 24억달러(3조12억원)로 10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액체생검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기업은 가던트 헬스(Guardant Health)와 그레일(Grail), 이그젝트사이언스(Exact Sciences) 등 대부분 미국 소제 바이오텍들이다.

최근 AP통신은 암 진단분야 기업인 미국기업 그레일이 암세포에서 떨어져 나온 DNA 조각을 혈액으로 검사하는 액체생검을 통해 췌장암, 난소암 등 현재 표준 검사 방법이 없는 암을 진단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레일은 2016년 미국 유전체분석기업 일루미나에서 독립한 액체생검 테스트 회사다. 단일 혈액 채취에서 발견된 DNA에서 최대 50개의 서로 다른 종양을 한 번에 진단 가능한 테스트기를 출시한 바 있다.

그레일 관계자는 A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가에서 4~5개의 암을 검사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암으로 인해 사망한다"며 "혈액검사가 말기 암을 감소시킬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14만명을 대상으로 영국 국립보건서비스와 함께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와 미 보건당국 역시 혈액검사를 통해 암을 더 빨리 발견하고 생명을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 7년간 20만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계획 중이다.

2012년 설립돼 미국 레드우드시티에 본사를 둔 가던트 헬스케어는 최근 센디에고에 연구 시설을 확장하며 액체생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가던트 헬스케어는 올해부터 암의 조기 발견부터 초기 환자 질병 재발 모니터링, 진행성 암 환자의 치료법 선택 및 치료 반응 모니터링까지 암의 전주기에 대한 혈액 검사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던트는 현재 1만1000명 이상의 종양 전문가가 25만개 이상의 테스트를 수행할 정도로 암 진단을 위한 액체생검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아미르알리 타라사즈(AmirAli Talasaz) 가던트 헬스케어 최고경영자(CEO)는 "암의 모든 단계에 걸쳐 환자가 더 길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혈액 검사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며 "암 진단에 대한 비즈니스는 앞으로 희망적이며, 가던트의 큰 성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도 액체생검을 통한 암 조기진단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우선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는 액체생검 기술을 기반한 ‘온코캐치’를 개발 중이다. 온코캐치는 소량의 혈액에서 암을 유발하는 후천적 체세포 변이와 순환 종양 DNA(cfDNA)의 암 발생 패턴을 탐지, 분석하는 DNA 메틸레이션 기술이다. 암 조기 진단, 암 재발과 전이 모니터링, 동반진단 등 암 진단과 치료의 전주기에 적용할 수 있다.

앞서 EDGC는 올해 2월 미국 의료영상 인공지능(AI)분석 전문기업인 할로 다이그노스틱(HALO Dx)와 ‘액체생검 온코캐치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HALO Dx는 미 전역에서 암 검진 영상의학과 전문병원 40여곳을 보유한 의료기업이다. 해당 협약에 따라 양사는 극초기 암 진단 기술 온코캐치와 영상의학을 접목한 초정밀 스크리닝 서비스를 미국 의료 시장에 제공할 예정이다.

EDGC 관계자는 "온코캐치는 암종별 패턴을 분석해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며, 극초기 암을 진단할 수 있다"며 "대장암과 유방암, 폐암 등 10개 암 진단이 가능하도록 개발하고 향후 모든 암종으로 진단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젠큐리스는 자체 개발한 액체생검 간암 조기진단 검사 ‘헤파이디엑스(HEPA eDX)’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헤파이디엑스는 미량의 혈액으로 바이오마커의 메틸화(meSDC2)를 검사함으로써 간암을 조기 진단하는 제품이다. 조기진단을 비롯해 재발 모니터링 용도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계획(IND) 신청을 시작으로, 왕희정 인제대학교 해운대백병원 교수가 주축이 돼 진단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지노믹트리는 분변을 이용해 대장암 진단을 할 수 있는 ‘얼리텍’을 개발했다. 얼리텍은 소량의 분변 속 DNA 시료에서 대장암 조기진단용 바이오마커인 신데칸-2(syndecan-2) 유전자의 DNA 메틸화 상태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식약처로부터 2018년 의료기기 3등급 허가를 받기도 했다.

지노믹트리는 최근 말레이시아 사업화를 위해 현지 기업 에스피디 과학(SPD Scientific)과 얼리텍 독점계약을 체결했다. 지노믹트리는 계약을 통해 말레이시아 전역의 판매망을 확장하고, 얼리텍 대장암 검사 서비스의 현지 공급을 위해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말레이시아는 국내 기업이 단독, 직영 형태로 진출하기보다 현지 파트너와의 전략적 제휴나 합작을 통해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 SPD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빠르게 현지 사업화를 활성화 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엔젠바이오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에 액체생검을 활용한 예후진단 제품을 내놓을 전망이며, 마크로젠은 기존 액체생검 서비스 ‘악센 액체생검(Axen Liquid Biopsy)’을 고도화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추세가 병원을 아파서 가기보단 내 자신이 더욱 건강하기 위해 질병을 선제대처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며 "액체생검은 진단분야뿐 아니라 의료산업의 거대한 기류를 바꿔놓을 기술로 해외 기업들이 독과점하기 전에 국내 기술을 확보해 국민보건 전반을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