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약업계에 오리지널 의약품을 지키기 위한 해외 제약사와 제네릭(복제약) 생산을 노리는 국내 기업 간의 치열한 특허 공방이 발생하고 있다.

해외 제약사의 재판 승리에도 불구하고 물질특허 만료로 후발의약품에 대한 판매권이 인정받는가 하면, 특허 우회를 통해 후발의약품 생산을 노리는 등 오리지널 의약품이 차지한 시장에 도전장을 내미는 기업들이 늘고있는 추세다.

해외 오리지널 의약품을 상대로 국내 제약사들이 다양한 특허 우회 공방을 펼치고 있다. / 픽사베이
해외 오리지널 의약품을 상대로 국내 제약사들이 다양한 특허 우회 공방을 펼치고 있다. / 픽사베이
제약업계에 따르면 최근 노바티스의 DPP-4 억제제 계열 당뇨병 치료제 ‘가브스(성분명 빌다글립틴)’에 대한 특허 공방이 펼쳐졌다. 특허심판원은 가브스 및 가브스메트에 적용되는 ’N-치환된 2-시아노피롤리딘’ 특허(2022년 3월 4일 만료) 존속기한연장무효심판 환송사건에서 기각 심결을 내렸다. 즉 오리지널사인 노바티스가 승리하게된 것이다.

다만 분쟁이 진행되는 동안 해당 물질의 특허가 만료돼 후발의약품 판매에는 영향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업계는 노바티스가 특허 만료 전 판매를 시작한 후발의약품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분쟁은 올해 한미약품과 안국약품을 시작으로 경보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삼진제약, 한국뉴팜 등이 가브스와 메트포르민 복합제인 가브스메트에 대한 후발의약품을 줄줄이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1월 1일자로 급여 등재를 확정한 한미약품과 안국약품은 1월 10일 각각 염변경 단일제인 ‘빌다글’과 복합제인 ‘빌다글메트’, 가브스 제네릭인 ‘에이브스’를 공식 출시하며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돌입했다.

특허 문제로 이들보다 급여 적용이 다소 늦어진 후발의약품들도 재정비를 마치고 출격한다. 경보제약의 염변경 후발약인 ‘빌다’를 비롯해 삼진제약 ‘빌가드엠’,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힐러스메트’, 안국약품 ‘에이브스메트’, 안국뉴팜 ‘빌다틴메트’ 등이 2월 1일자로 급여등재됐다.

이미 한미약품과 안국약품, 안국뉴팜은 2017년부터 가브스 물질특허의 연장된 존속기간 중 일부가 무효에 해당한다며, 법원에 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당시 1심에서는 연장된 존속기간 중 187일에 대해 무효로 한다는 심결이 내려졌다.

이후 2심에서는 55일에 대해서만 연장 무효가 인정됐고, 대법원에서는 각하 판결이 내려지면서 1심에서 사건을 다시 다룬 결과 기각 심결이 내려졌다. 이로인해 노바티스는 물질특허 만료 시점까지 권리를 모두 인정받게 됐다.

하지만 2심 결과에 따라 3개사는 물질특허 만료 전인 올해 1월 10일부터 후발의약품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최근 한미약품은 이번 특허심판원의 심결에 대해 항소하겠다고 밝히는 등 특허물질 만료 이전의 권리를 다시 되찾겠다는 의지를 보여 관련 재판이 지속될 예정이다.

다만 후발의약품의 판매기간이 작다는 점과 수익 규모 산출의 한계 및 이익이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향후 노바티스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주목된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유비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가브스와 가브스메트의 합계 처방액은 445억원에 이른다.

보령은 노바티스의 백혈병 치료제 ‘타시그나(성분명 닐로티닙)’ 특허우회에 도전한다. 최근 보령은 타시그나 특허 4건에 전방위적인 소극적 권리범위확인 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타시그나는 2030년 11월 만료되는 용도·용법 특허, 2027년 만료되는 제제특허, 2026년 7월 만료되는 결정형특허와 염특허, 2023년 8월 만료되는 물질특허 등으로 보호받고 있다. 이 가운데 보령은 물질특허를 제외한 나머지 특허를 회피할 전망이다.

2015년 몇몇 국내 기업이 타시그나의 연장된 존속기간에 대한 물질특허 무효 심판을 제기한 바 있지만, 패소한 전력이 존재한다.

‘타시그나’는 필라델피아 염색체 양성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다. 노바티스의 또 다른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후속 약물로, 글리벡에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들이 투여받는 의약품이다.

앞서 보령은 글리벡 특허소송에서 승리한 바 있기에 타시그나 특허우회 소송도 자신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타시그나 제네릭에 대한 판권을 획득하게 되면 글리벡 제네릭과 시너지를기대할 수 있어 소송전에 대한 업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특허분쟁이 시작된 만성심부전 치료제 ‘엔트레스토(성분명 사쿠비트릴·발사르탄)’와 관련한 제약업계의 움직임도 치열하다. 국내 제약사들이 엔트레스토 후발약물 제작에 착수하자 노바티스가 새로운 특허를 추가해 방어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4월말 의약품 특허목록에 ‘심방 확장 또는 재형성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NEP 억제제’ 특허(2033년 8월 22일 만료)를 새롭게 등재했다. 기존에 적용되던 특허 중 가장 늦게 만료되는 특허가 2029년 1월 28일 만료인데, 이보다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을 4년 7개월 가량 늘린 것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엔트레스토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4건의 특허에 대한 심판을 청구하며 후발의약품에 대한 도전을 감행했다. 하지만 노바티스가 새로운 특허를 추가 등재하며 제약사들의 전략에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엔트레스토의 기존 특허에 도전 중인 14개 제약사는 새로 등재된 특허에 대해서도 심판을 청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 등재된 특허의 존속기간이 가장 늦게 만료되기 때문에 이미 진행 중인 특허심판에서 모두 승소하더라도 새 특허가 남아있는 한 제네릭을 출시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산업의 전반적인 발전이 제네릭으로 이뤄진 만큼 오리지널 의약품에 대한 특허우회는 각 제약사들의 미래성장동력을 위한 중요한 전략 중 하나다"며 "이러한 특허전은 국내 제약사들이 개발한 신약의 특허방어 전략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