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기차 배터리 3위 기업으로 도약을 꿈꾸는 SK온이 폼팩터(형태) 한계에 가로 막히며 실적 부진을 이어간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소재와 폼팩터가 다양화하는 상황에서 SK온의 시장 대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 LG, 파나소닉 등 배터리 경쟁사가 원통형 기술을 보유하지 못했고, 개발을 검토 중인 각형의 경우에 양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단일화 리스크가 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부문 자회사 SK온의 올해 1분기 매출은 1조2599억원, 영업손실 규모는 2734억원이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9% 증가했지만, 영업손실폭은 370억원 줄이는 데 그쳤다.

반면 삼성SDI는 1분기 매출 4조494억원, 영업이익 3223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1분기 실적 중 최고치를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6.7%, 영업이익은 142% 급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1분기 매출 4조3423억원, 영업이익 2589억원으로 작년 1분기 대비 매출은 2.1% 늘고, 24.1% 줄었지만 시장 전망을 웃도는 실적을 기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SK온의 파우치형 NCM9 배터리 / 이광영 기자
SK온의 파우치형 NCM9 배터리 / 이광영 기자
반도체 수급난과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에도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이 공통적으로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낸 것은 원통형 배터리 수요 급증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삼성SDI는 1분기 전기차와 고출력 전동공구용을 중심으로 원통형 배터리의 매출이 증가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주요 고객사인 테슬라로 향하는 원통형 배터리 공급이 증가한 것이 예상보다 향상된 성적표를 받아든 계기가 됐다.

전기차 배터리는 크게 ▲파우치형 ▲각형 ▲원통형 등으로 나뉜다. SK이노베이션이 주력하는 파우치형은 얇은 비닐 재질의 주머니에 담는 형태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 배터리 재료를 층층이 쌓아올려 만들기 때문에 공간을 빈틈없이 사용할 수 있어 에너지 밀도가 높다. 다만 생산 원가가 높고, 유휴 공간이 적은 탓에 열 관리가 어렵다.

각형 배터리는 사각형 캔 모양이다. 파우치형에 비해 제작 공정 단계가 간소해 대량 생산 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 파우치형 배터리보다 외부 충격에 강하고 내구성이 좋아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원통형 배터리는 가장 오래된 배터리 기술이다. 과거 휴대폰, 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사용하다가 테슬라가 전기차용으로 선택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표준화된 크기로 대량생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원가 부담이 가장 낮다. 원통 형태의 특성상 공간 활용도가 높지 않다는 게 단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원통형과 파우치형, 삼성SDI가 각형과 원통형으로 2가지 이상의 배터리를 주력 제품으로 내세운 것과 달리 SK온은 파우치형 배터리만 공급하고 있다.

SK온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중인 배터리 공장 / SK온
SK온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중인 배터리 공장 / SK온
SK온의 파우치형 집중 전략은 배터리 시장점유율 상승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배터리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SK온의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2020년 대비 0.1%포인트 상승한 5.6%를 기록하며 6위에서 5위로 올라섰다. 1.3%포인트 하락해 4.5%의 점유율을 기록한 삼성SDI과 대비되는 성장세다.

하지만 다양한 폼팩터의 배터리를 도입하는 완성차 기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폼팩터를 다변화하지 않은 SK온의 약점은 뚜렷하다. 배터리 시장에서는 점차 원통형배터리의 수요가 파우치형을 앞서고 있다. 테슬라를 필두로 볼보, 재규어, 리비안, 루시드모터스 등 원통형 배터리를 채택하는 완성차 업체가 늘어나는 추세다.

SNE리서치는 원통형 배터리 수요가 2021년 83억6000만셀에서 2022년 106억6000만셀로 100억셀을 돌파한 후 2030년 285억8000만셀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30년 시장 규모는 2021년 대비 3.4배쯤 늘 것으로 예측했다.

SK온은 원통형 대신 각형 배터리 개발을 검토 중이다. 최근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의 각형 채용 움직임이 본격화해서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3월 열린 ‘파워데이’를 통해 2023년부터 각형 배터리를 사용하고, 2030년까지 80%로 비율을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계획에 따르면 2025년부터 폭스바겐 내 SK온 배터리의 점유율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SK온은 1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각형 배터리에 대해 "개발은 진행 중이지만, 양산에 대한 구체적 계획은 없다"며며 "기존의 파우치향 배터리 기술을 기반으로 차별적 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