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가 초우량고객(VVIP)을 겨냥해 내놓은 TV의 존재감이 기대 이하다. 삼성전자 ‘마이크로LED TV’와 LG전자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은 출시 후 1년이 훌쩍 넘었지만 유의미한 판매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14일 삼성디지털프라자와 LG베스트샵 등 가전 매장 등에 해당 제품 관련 문의를 해 보면, 실제 판매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

가전 매장 한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전시 중인 해당 상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문의를 하거나 구매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더 퍼스트룩’에 전시된 마이크로 LED TV 110·101·89인치 3종 / 이광영 기자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더 퍼스트룩’에 전시된 마이크로 LED TV 110·101·89인치 3종 / 이광영 기자
삼성전자는 2021년 3월 가정용 마이크로LED TV를 출시했다. LG전자는 화면을 말았다 펼치는 롤러블(Rollable) TV인 시그니처 올레드 R을 2020년 10월 내놨다. 두 제품 모두 양산형 제품이 아니다. 주문 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삼성전자는 공급망 이슈로 지난해까지 주문을 받지 않다가 올해 들어서야 주문을 받고 있다. 삼성디지털프라자는 110인치 마이크로LED TV를 예약하면 설치까지 8주쯤 걸린다고 안내한다.

양사는 각 TV의 판매량을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지만, 정황상 저조한 성적을 거둔 것으로 확인된다. 두 제품의 흥행을 막는 공통적인 요인은 가격이다. 110인치 마이크로LED TV의 가격은 1억7000만원, 시그니처 올레드 R은 1억원이다. 안방 수요를 겨냥하기엔 국내는 물론 해외 소비자에게도 부담스러운 가격대다.

이들 TV를 대체할 수 있는 또 다른 제품군이 있다는 점도 판매 부진의 이유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2021년 8월부터 98인치 크기의 네오 QLED TV(KQ98QNA90AFXKR) 출고가를 2000만원대로 설정해 판매했다. 카드할인 등 프로모션 적용 시 1000만원 중반대에 구매가 가능한 셈인데, 소비자로선 10배 넘는 가격에 조금 더 큰 마이크로LED TV를 사냐되는 것이냐는 회의적 시각이 있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중 89인치 마이크로LED TV를 선보일 예정인데, 이 제품 출고가 역시 1억원 초반대로 결정될 전망이다. 일반 소비자가 구입하는 대중적 제품이라는 타이틀 달기에 거리가 있다.

삼성전자는 2년 전부터 가정용 TV 라인업을 네오 QLED와 마이크로LED 투트랙으로 가져 가겠다는 전략을 천명해왔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크로LED TV를 차질없이 양산하기 위해 설비 증설과 지역별 분할 생산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1억원 미만으로 마이크로LED TV 가격을 내리지 않는 이상 한 부회장이 꿈꾸는 가정용 마이크로LED 대중화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 부회장은 1월 당시 "마이크로 LED TV는 베트남에서 홀로 공급을 전담하기엔 생산능력과 속도가 떨어진다"며 "멕시코와 슬로바키아에서 증설을 완료한 3월 말에는 원활하게 제품을 양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2021년 12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대체불가토큰(NFT) 기반 예술 작품 전시회 '더 게이트웨이(The Gateway)'에서 관람객들이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을 통해 NFT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LG전자
2021년 12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대체불가토큰(NFT) 기반 예술 작품 전시회 '더 게이트웨이(The Gateway)'에서 관람객들이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을 통해 NFT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LG전자
LG전자 롤러블 TV는 65인치(대각선 길이 163㎝) 단일 기종으로 ‘거거익선(화면이 클수록 좋다)’ 트렌드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지녔다. 소비자 입장에선 65인치 롤러블 TV에 1억원을 투자하기 보다는, 1000만원대 미만의 70~80인치대 올레드 TV를 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LG전자는 연내 97인치 올레드 TV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 제품은 유럽에서 2만5000유로(3370만원)에 출고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국내시장에서는 더 저렴한 가격에 나올 가능성이 높다. 올레드(OLED) TV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돌돌 말리는 퍼포먼스를 포기하면 3분의 1 가격에 90인치대 올레드 TV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셈이다.

LG전자 내부에 정통한 관계자는 97인치 올레드 에보의 2000만원대 출고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 금액을 밝힐 수 없지만, 충분히 경쟁력 있는 수준에서 책정할 것이다"라며 "경쟁사 98인치 제품 가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LG전자가 대형화 추세에 맞추기 위해 더 큰 사이즈의 롤러블 TV를 추가 출시할 가능성은 낮다. OLED 패널을 활용한 TV 제조 공정은 65인치에 최적화 돼있는데, 70인치대로 넘어가는 순간 원가가 급등하기 때문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로LED TV, 롤러블 TV 모두 상업용 제작 또는 브랜드 홍보용으로 활용되는 데 그치고 있다"며 "1억원이 넘는 가격대를 극복하고 대형화 트렌드에 부합하는 것이 대중화의 관건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