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사태 해부]② 허물어진 달러 연동구조…’죽음의 나선’ 왜?

조아라 기자
입력 2022.05.16 16:05
[편집자주] 국내 스테이블 코인으로 한 때 촉망받았던 테라(Terra)가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의 블랙홀이 됐다. 50조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마운트곡스 해킹 사건(2014년) 이후 8년 만에 글로벌 크립토 시장에 미친 초대형 충격파다. 테라의 성장과 붕괴, 그리고 앞으로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짚어봤다.

테라 생태계의 가장 큰 약점은 불안정성이다. 일찍이 전문가들은 "내재가치가 없는 테라의 생태계가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해왔다. 게다가 예치 이자를 대출 이자보다 높여 불안정성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자금이 무한하게 유입돼야만 한다. 폰지(다단계) 사기 아니냐는 지적도 이래서 나왔다.

조금만 흔들려도 도미노 붕괴 위험…’죽음의 나선’ 비유도

테라와 루나의 생태계는 꾸준한 가상자산 투자 수요 → 비트코인(BTC) 가격 상승 또는 유지 → 앵커 프로토콜의 안정적인 이자 지급 → 테라 수요 증가 → 차익 거래 투자 유지 → 테라 1달러 페깅 유지 → 루나 가격 상승이라는 순환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거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로 신뢰가 깨지면 순차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비트코인은 테라 생태계의 주요 준비금이다. 준비금이 부족하면 달러 페깅이 어렵다. 이자를 제대로 지급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러면 투자자 입장에서 테라를 맡길 이유가 없다. 자연스럽게 테라의 수요는 줄어든다. 테라의 매도세가 강해지고 가격은 떨어진다. 테라의 가격을 1달러로 페깅하는 과정에서 루나가 시장에 풀린다. 그러면 루나의 가격이 떨어진다.

달러 페깅이 유지되리라는 기대가 있다면 차익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가격은 자연스럽게 복구된다. 하지만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신호가 반복되면 차익 거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 때 투자자가 테라와 루나를 모두 내다 팔면서 일종의 ‘뱅크런’이 발생한다. 테라의 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루나가 계속 발행되면서 동반 폭락이 발생한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죽음의 나선(death spiral)’이라고 표현했다.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 아이언(IRON)과 아이언을 담보하는 타이탄(TITAN) 토큰이 그렇게 사라졌다.

지난해 캐나다의 라이언 클레멘츠 캘거리대학교 경영법학 조교수는 ‘실패할 운명’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에 허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GCR이라는 트위터리안이 1년 뒤 루나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며 1000만달러(약 120억원)를 베팅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권도형 대표가 베팅을 수락하면서 테라의 알고리즘이 가진 위험성은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테라 생태계 흔드는 위험 수 차례…’악수’ 된 비트코인 준비금

투자자들 사이에 이자를 제대로 지급받을 수 없다는 우려가 퍼진건 앵커 프로토콜의 예치 이자를 낮추는 투표가 진행되면서다. 대다수 투자자들은 반발하고 일어섰다. 첫 번째 위험 신호다. 눈치 빠른 투자자들은 이때 앵커 프로토콜에서 테라를 인출하고 사태를 관망했다.

권도형 대표는 진화에 나섰다. 비트코인을 준비금으로 마련하겠다고 했다. 루나 발행사인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는 지난 2월부터 비트코인을 매집했다고 알렸다. 테라 생태계에 투자자들을 머물게 하려는 유인책이다. 지난 9일 기준 LFG는 비트코인 26억9000만달러, 한화로 약 3조4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발표가 되레 리스크를 키웠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비트코인을 흔들면 테라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취약점에 기반, 영업기밀을 권도형 대표가 스스로 밝혔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기준, 지난 4월 5일 5700만원선으로 회복한 비트코인은 지난 12일 속 떨어져 3700만원까지 밀렸다. 그만큼 테라의 준비금도 쪼그라든 셈이 됐다. 투자자들은 두 번째 위험 신호를 감지했다.

코인데스크코리아 보도에 따르면 클레멘츠는 "비트코인을 낮은 가격에 사기 위한 전략을 이용하고자 하는 유인책(사실상 경제적 모럴 해저드)을 만들 수 있다"며 "나는 UST가 스스로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 UST를 공격한다면 그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매도 세력 ‘테라 흔들기’ 추측 설득력…권도형, 리페깅으로 재기 노려

세 번째 위험신호가 나오면서 결국 디페깅(De-Pegging)이 발생했다. 글로벌 가상자산 분석 보고서인 메사리(MESSARI)에 따르면 지난 5월 7~8일 양일간 15억개의 테라 물량이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로 유입된 정황이 발견된다. 같은 기간 앵커 프로토콜 예치금이 4조원 가까이 빠지면서 알고리즘이 무너졌다. 테라의 1달러 가치가 깨졌다.

투자자들이 테라와 루나를 내던지면서 테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글로벌 가상자산 통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 5일 10만4000원에 거래되던 루나는 17일 오전 11시 기준 0.35원에 거래되고 있다. 사실상 마이너스 100%에 가까운 수치다.

일각에서는 취약점을 감지한 공매도 세력이 테라 매도를 주도했다는 추측이 나왔다. 눈엣가시였던 한국산 코인에서 투자자를 대거 빼오는 동시에, 대규모 공매도 차익을 볼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음모론이라고 치부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지만, 블룸버그 등 일부 외신과 메사리 리포트 등 보고서도 이같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음모론에 힘이 실렸다. 공매도 세력으로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과 시타델(Citadel)이 지목됐다.

특히 스테이블 코인 USCD 발행사 써클(Circle)에 투자한 블랙록이 주목을 받았다. 실제 루나 폭락으로 USCD의 시가총액은 65조32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들 기업은 테라와의 연관성을 강력 부인하고 있다.

파장은 컸다. 테라는 일시적으로 블록체인 가동을 중단했다. 바이낸스가 루나를 상장폐지했다가 번복했다. 국내 5대 거래소 모두 루나를 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 권도형 대표는 지난 14일 트위터를 통해 비통한 심정을 알리고, 테라 생태계 복구안을 제안했다.

복구안에는 디페깅 전에 테라와 루나를 담보로 맡긴 보유자에게 새로 발행하는 토큰을 분배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테라의 ‘회생 방안(Revival Plan)’이다. 반면 현재 LFG가 보유한 비트코인의 행방도 확인되지 않아 여전히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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