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차세대 TV 전략이 난항을 겪는다.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의 대형 디스플레이 개발과 투자 계획이 혼선을 빚고 있어서다. 미니LED를 광원으로 쓰는 ‘네오 QLED’로 최대한 시간을 벌고, 차세대 기술인 ‘퀀텀닷나노로드발광다이오드(QNED)’를 적용한 TV를 상용화 한다는 삼성전자의 시나리오가 꼬였다.

17일 전자·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1분기 QNED 시제품 생산 라인을 구축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을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늦어도 2025년까지 QNED 패널을 양산하겠다는 계획은 2026년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DX부문장)이 3월 30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언박스 앤 디스커버' 행사에서 오프닝 연설을 하고 있다. / 삼성전자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DX부문장)이 3월 30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언박스 앤 디스커버' 행사에서 오프닝 연설을 하고 있다. / 삼성전자
QNED 기술은 나노로드라고 부르는 긴 막대기 모양의 청색 LED를 발광 소자로 삼는다. 무기 소자가 빛을 내는 구조로, 이론상으로는 유기 화합물을 채용한 OLED와 대척점을 이룬다. 긴 수명과 적은 잔상(번인), 낮은 전력소모 등이 장점이다. 생산 원가도 QD디스플레이(QD-OLED) 보다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내부 정보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QNED의 기술 고도화 속도는 상용화 시점을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더딘 편이다"며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외계인이 갑자기 기술을 발전시키면 상용화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3월 북미와 유럽시장에 삼성디스플레이 패널을 탑재한 QD-OLED TV를 출시했다. 하지만 QD-OLED는 삼성전자가 QNED로 전환하는 징검다리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생산능력 한계 탓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QD-OLED 생산능력은 8.5세대(2200x2500㎜) 원장 기준 월 3만장이다. 8.5세대 원장 하나로 65인치 패널 3장, 55인치 패널 2장을 찍어낼 수 있다. 단순 계산하면 연간 180만장의 패널을 만들 수 있다. 삼성전자가 매년 출하할 수 있는 QD-OLED TV 수량은 많아봐야 100만대쯤인데, 이는 삼성전자의 연간 TV 판매량인 5000만대 중 2% 수준에 불과하다.

65인치 QD디스플레이  / 삼성디스플레이
65인치 QD디스플레이 / 삼성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는 4월 사내 게시판에 QD-OLED 패널 수율이 75%를 달성했다고 공표했다. 2021년 11월 양산 당시 수율이 채 50%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최근 수율 개선 성적을 냈지만, QD-OLED 패널 라인을 증설하는 ‘터닝포인트’로 삼기 어려운 처지다. 단기적으로 회사 수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QD-OLED 투자에 삼성디스플레이가 적극적으로 나서기엔 최주선 사장 등 경영진의 부담이 크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대형 OLED 시장가가 낮게 형성된 탓에 수율을 비약적으로 개선한 QD-OLED라 하더라도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삼성디스플레이는 QD-OLED 추가 투자가 아닌 라인 안정화에 초점을 두면서 장기적으로 QNED 전환에 올인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TV시장에서 과도기를 겪는 삼성전자의 결단에 전자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는 네오 QLED가 대형화와 8K 화질 구현에 최적이라며 OLED 대비 우위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전략은 같은 LCD 패널 적용으로 저렴한 가격에 TV를 내놓는 중국 제조업체와의 경쟁에서 대응이 어려운 약점을 지닌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LG디스플레이와 OLED 패널 거래를 통한 TV 라인업 다양화를 검토하는 것은, QNED 패널 탑재 TV 상용화 전까지 프리미엄 시장 선두 지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차세대 TV 전략에 차질이 생긴 삼성전자가 LG디스플레이와 OLED 협상에 전향적으로 나설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