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뒤늦게 루나 사태 수습에 나서 빈축을 사고 있다. 한국산 스테이블 코인 테라(UST)와 위성 토큰 루나(LUNA) 폭락으로 투자자 피해가 커진 이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해 스테이블 코인 거래 주의를 당부하고 나선 것. 업계에서는 실효성 없는 ‘하나마나한 조치’라는 비난이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거래소)들이 하나같이 ‘가상자산 거래에 관한 위험 고지’를 공지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권고한 데 따른 조치다. 금융 당국이 루나 사태를 검사하거나 감독할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사업자 공지를 통해 추가 피해를 막아보자는 공산이다.

거래소들은 "가상자산거래는 손실에 대한 위험이 매우 클 수 있으므로 회원님의 가상자산거래시 본인의 투자목적, 재산상황, 거래(투자)경험 등을 감안하시고 아래 유의 사항을 충분히 인지 후 거래 하시기 바란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가상자산은 가격 변동폭의 제한이 없고, 원금 소실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루나 사태로 국내에서 이미 20만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상황인데, 뒤늦게 위험을 고지해 대처가 늦은 것 아니냐는 쓴소리가 나온다. 스테이블 코인 위험 관련 공지가 나온 건 지난 9일 테라 1달러 페깅이 깨진지 13일 째, 업비트에서 대규모 차익 거래가 발생한 지 열흘 만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가상자산공개(ICO)를 금지했으면 해외에서 발행된 코인의 국내 유통도 막았어야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ICO 등록이나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를 통해 금융당국의 책임 소재를 줄이는 한편, 사전에 문제있는 코인을 걸렀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국내 가상자산 사업자는 "이번 루나 사태를 계기로 ICO 신고제 등 투자자 보호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며 "금융당국은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 권한을 가지고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면서도 정작 투자자 보호에 대해서는 어떠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거래소를 통한 위험 고지는 하나마나한 대처다. 법적 권한이 없어 개입이 어렵다는 주장도 핑계에 불과하다"고 날을 세웠다.

거래소도 대처가 늦기는 마찬가지다. 업비트는 지난 18일 빗썸과 코인원, 코빗은 다음날이 돼서야 스테이블 코인의 위험성을 설명하고 자체 플랫폼에 상장된 스테이블 관련 코인 종목을 안내했다.

안내에 따르면 업비트와 빗썸에 상장된 스테이블 코인 관련 종목은 각각 13개, 10개다. 업비트와 빗썸이 모두 상장한 스테이블 코인 관련 종목은 ▲웨이브(WAVES) ▲트론(TRX) ▲스팀(STEEM) ▲다이(DAI) ▲하이브(HIVE) 등 다섯 종목이다. 거래소 두 곳 이상에 상장된 스테이블 관련 코인은 니어프로토콜(NEAR)과 리저브라이트(RSR)다.

코인원은 10개, 코빗은 6개 종목의 가상자산에 대해 거래를 지원하고 있다. 고팍스는 지난 16일 루나와 테라KRW(KRT)를 상장 폐지한 후 스테이블 코인 거래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는 "투자자들은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정작 국내에 차익 거래를 노리는 투기 수요가 몰리는 동안 정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며 "피해가 발생한 이후 위험을 공지하는 안내로 투자자 보호 조치를 취했다고 보기 어렵다. 면피용에 불과하다"고 질책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