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A씨는 루나(LUNA)가 폭락하자 해외 거래소에서 서둘러 가격 하락에 베팅(숏)해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수단을 마련했다. 이어 남은 루나 물량을 업비트로 옮겨 팔아 시세 차익을 냈다. A씨는 이 과정을 수 차례 반복하며 적잖은 수익을 올렸다.

두나무 이석우 대표가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미림타워에서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상훈 조선비즈 기자
두나무 이석우 대표가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미림타워에서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상훈 조선비즈 기자
보따리상이자 공매도꾼인 A씨는 투기 세력의 전형이다. A씨는 루나 피해자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상당한 투자 수완을 자랑했다. 해외에서는 루나 가격 하락으로 숏 물량을 익절하고 한국에서는 루나 탈출에 성공하는 동시에 차익을 거두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렸다. 루나 폭락 사태 이후 A씨와 같은 성공 투자담이 관련 커뮤니티를 도배했다.

루나 폭락이 시작되자 한국 시장은 전문 투기꾼의 표적이 됐다. ‘트래블룰’ 시행으로 루나 가격 하락 속도가 더뎌 김치 프리미엄이 형성된데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투자자를 보유한 업비트가 입출금을 열어준 덕이다. 게다가 업비트에서는 루나 하한가가 정해 놓았는데 일부 투자자들은 업비트 최저가가 글로벌 하한가인 줄 알고 앞다퉈 루나를 매입하는 소위 ‘불나방’을 자처했다.

결과적으로 업비트는 투기 세력이 국내 투자자들에게 이른바 ‘폭탄’을 떠넘길 기회를 제공한 셈이 됐다. 업비트는 그 덕에 상당한 수수료 수익을 챙겼다. 업비트가 가두리 펌핑을 막기 위해 입출금을 열었다는 주장이 세간의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금융감독원 블록체인 자문위원인 최화인 블록체인 에반젤리스트는 "가상자산은 글로벌 시장으로 업비트가 입출금을 열어두고 시장 개입을 최소화한 조치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면서도 "트래블룰 시행과 가격 하한선이 설정된 구조는 피해자 손실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격 설정과 볼륨 한계라는 불합리가 결합되면서 시장 경제를 위해 입출금을 열었다는 주장은 자사의 편의에 따라 시장 경제 논리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래블룰로 루나 100만원 이상 물량 이동 어려워…시세 좁히기 애초에 ‘역부족’

업계는 테라(UST) 붕괴 당시 국내외 루나 시세차이가 좁혀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글로벌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권고하고, 우리 정부가 시행 중인 트래블룰을 지목한다. 실제 각종 커뮤니티에는 트래블룰 때문에 많은 양의 루나를 한꺼번 옮기지 못했다는 게시글이 적지 않게 올라왔다.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지난 3월 시행된 트래블룰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가 100만원 이상의 코인을 주고 받으려면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등록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같은 절차를 마치지 못한 투자자들은 99만원 가량의 루나만 옮길 수 있다.

가상자산 시장은 국가나 플랫폼간 시세 차익을 노리는 재정거래로 시세가 맞춰진다. 코인을 싸게 사 다른 거래소에서 비싸게 파는 식이다. 트래블룰 시행으로 해외에서 국내로 옮길 수 있는 매도 물량이 정해져 있다보니 루나 사태에 복병으로 작용했다.


국내 5대 원화마켓 가상자산 거래소의 루나(LUNA) 지갑 입출금 중단&재개 현황
국내 5대 원화마켓 가상자산 거래소의 루나(LUNA) 지갑 입출금 중단&재개 현황
업계에 따르면 업비트에서만 루나 입출금이 가능했던 지난 12일 오후 3시 기준, 비트코인(BTC) 마켓에서 루나는 648원에 거래됐다. 글로벌 시세보다 약 50% 이상 높았다. 이후 업비트는 13일 오전 3시 17분과 11시 36분 사이 약 7시간 가량 루나 입출금을 열었는데 이때 바이낸스와 무려 7배 넘게 시세 차이가 벌어졌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10만명에 불과하던 루나 이용자 수는 18일 기준 28만명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이들이 보유한 루나 물량은 317만개에서 809억개로 불어났다. 소수의 고래 투기꾼이 다수의 국내 투자자에게 물량을 내다 판 것으로 관측된다.

업비트 관계자는 "업비트의 루나 가격이 국내 거래소 중 가장 글로벌 시세와 비슷하게 형성됐으며 자금세탁 위험성은 회원의 거래, 전송 패턴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라며 "트래블룰이 시행됐더라도 법령에 따라 100만원 이상의 전송에 대해 자금세탁 위험성을 추가 확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비트 루나 하한가 1사토시…착시 효과로 국내 투자 쏠림현상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비트코인(BTC) 마켓에서 루나(LUNA) 최저가인 1사토시, 한화 0.4원에 사려는 매수 물량이 292억개 넘게 쌓여있다. 약 117억원 규모다. 루나를 2사토시 팔려는 물량은 74억개 정도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비트코인(BTC) 마켓에서 루나(LUNA) 최저가인 1사토시, 한화 0.4원에 사려는 매수 물량이 292억개 넘게 쌓여있다. 약 117억원 규모다. 루나를 2사토시 팔려는 물량은 74억개 정도다.
이 가운데 업비트의 루나 가격 하한선이 착시효과를 일으켜, 적지 않은 국내 소액 투자자의 피해가 커졌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업비트에서 루나의 하한선은 1사토시, 0.00000001 비트코인으로 정해져 있다.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약 0.388원이다. 한때 업비트에서는 1사토시에 루나를 사려는 매수 물량이 292억개 넘게 쌓였다. 약 117억원 규모다.

반면 바이낸스 등 해외 거래소에서 루나의 하한선은 설정돼 있지 않다. 한때 바이낸스에서 거래되는 루나 최저가는 0.00005847BUSD, 원화로 환산하면 0.075원 정도다. 업비트가 루나를 상장폐지하기 전 코인원에서는 루나가 0.2원대에서 거래됐다. 최저가는 0.098원이다.

이같은 시장 상황을 모르는 일부 개인 투자자들이 업비트 비트코인 마켓에서 루나를 최저가에 매입하려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루나를 사더라도 손실을 보지 않을 거라고 착각해서다. 결국 루나를 1사토시에 매입한 투자자들은 상장폐지 후 해외로 옮겨 판다고 해도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게 됐다.

업비트 루나 시세창 위에 위험 문구가 작게 표시돼있다.
업비트 루나 시세창 위에 위험 문구가 작게 표시돼있다.
시장 평가는 엇갈린다. 국내외 시세 차이를 적극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루나를 매입한 투자자 책임이라는 의견과 업비트가 이같은 위험을 보다 명확한 방법으로 고지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공존한다.

실제 업비트는 시세창 상단에 작은 글씨로 ‘시세 차이가 난다’는 경고 문구를 넣었을 뿐, 업비트에서 루나를 매매한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위험은 알리지 않았다.


해외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이 루나 매매를 시도하는 투자자들을 위해 위험 경고 내용이 담긴 팝업창을 띄우고 있다.
해외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이 루나 매매를 시도하는 투자자들을 위해 위험 경고 내용이 담긴 팝업창을 띄우고 있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의 조치와 비교하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들 거래소는 루나를 매매하려고 클릭하면 위험 팝업창이 뜨도록 설정하고, 이를 확인한 후에만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업비트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업비트는 고객센터를 통해 비트코인 마켓 최저가가 1사토시로 정해져 있다는 내용을 안내를 해오고 있다. 루나 폭락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일일이 이같은 내용을 공지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장우 한양대학교 글로벌기업가센터 겸임교수는 "루나 사태가 오로지 국내에서 이뤄진 현상이라면 입출금을 막을 수 있겠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공동으로 발생한 폭락이기 때문에 입출금을 닫아 가두리 펌핑을 유도하는 위험이 더 크다고 본다"며 "구조상 업비트에서 루나가 최저가로 보이지만, 실제 최저가는 해외에서 형성돼 있었다고 한다면 투자자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이같은 위험을 명확하게 고지할 필요가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에 대해 업비트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지 논의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투자자 보호 핵심은 ‘공동대응’…이해상충 소지 차단 필요성 대두

입출금을 막았던 가상자산 거래소도 위험을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거래소는 모두 시세가 급등하는 ‘가두리 핌펑’을 겪었다. 다만 해외 투기 세력이 국내로 유입하는 위험을 막는 게 투자자를 보호하는 조치라고 판단한 게 업비트와 차이점이다.

업비트는 공지를 통해 "자유롭고 공정한 디지털 자산 거래 환경 조성을 위해 원칙적으로 인위적인 입출금 중단 등 시장 개입을 지양하고 있다"며 "디지털 자산은 전 세계의 여러 글로벌 거래소에서 거래 및 입출금이 자유롭게 이루어 지면서 시세가 형성된다. 따라서 특정 거래소가 입출금을 중단할 경우, 여타의 거래소들과 단절되어 독자적인 시세가 형성됨으로써 디지털 자산의 가격이 왜곡되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업비트가 지난 20일 공지한 내용에 따르면 업비트를 제외한 다른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입출금을 막으면서 루나 시세가 급등했다.
업비트가 지난 20일 공지한 내용에 따르면 업비트를 제외한 다른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입출금을 막으면서 루나 시세가 급등했다.
루나 폭락 이후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각계 대응에 나서면서 이해상충 논란도 불거지는 모양새다. 공동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투자자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개별 거래소마다 사정이 달라 의견 조율이 어렵다. 국회에서 가상자산 상장과 상장폐지, 입출금 제한 등 공동 기준을 마련하라고 금융당국에 요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식시장의 경우 주가가 급락할 경우 서킷 브레이커를 발동, 단계별로 대응해 투자자 보호를 시도한다. 주가가 ▲8% 이상 하락(1단계) ▲15% 이상 하락(2단계) ▲20% 이상 하락(3단계)으로 나눠 중단 시기를 정한다. 3단계는 당일 주식 매매 거래를 중단한다.

가상자산 시장에는 이와 같은 규제가 없다. 2018년 금융당국이 가상자산공개(ICO)를 금지한 이후 업계와 전문가들이 상장 관련 가이드라인을 요구했지만 법적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가 없는 상황이다.

사업자들이 미리 공동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대처하거나, 협회를 통해 가이드를 구축하는 방법이 있지만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앞서 지난해 6월 국내 4대 가상자산 거래소가 특정금융법상 ‘트래블룰’에 대응키로 합의 했지만, 업비트가 이탈하면서 공동 전선이 깨진 사례가 이를 잘 나타낸다. 업비트는 시장 점유율 80%를 넘어가며 지배적 지위를 가지고 있어 공동 행동으로 얻을 게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각사가 입장이 명확치 않고 이해관계가 달라 아직 실무진단이 공동대응 관련해 논의가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며 "금융당국이 사업자들이 내놓는 대응 방안에 대해 톤을 조절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 후 대략적인 가이드나 지침이 나올 것으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