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에서 6월 3일부터 7일까지 ‘미국 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 2022)’가 개최될 예정인 가운데 참여 국내 기업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존 코로나 수혜 기업들의 가치 하락과 업계 내 부정적인 이슈로 침체된 제약바이오 시장이 이번 ASCO를 계기로 활력을 되찾을 지 여부도 주목된다.

미국 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 2022) 행사장 모습 / ASCO 홈페이지
미국 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 2022) 행사장 모습 / ASCO 홈페이지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매년 4만명 이상의 과학자 및 의료산업 관계자들이 참여해 최신 암 치료 개발 동향과 임상 결과 등을 공유하는 ASCO가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다. 그간 코로나19로 제대로 공개되지 못했던 항암 치료 포트폴리오들이 대거 모습을 들어낼 것으로 보여, 어느때 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특히 국내 바이오기업들도 이번 행사에 대거 참여해 다양한 항암제 임상연구를 공개한다. 우선 국내 참가 기업 중 유일하게 구두 발표를 진행하는 유한양행은 얀센에 기술수출한 비소세포폐암 ‘레이저티닙’과 ‘아미반타맙’의 병용 임상 추가 결과를 발표한다. 공개된 논문 초록에 따르면, 평가할 수 있는 임상 참여 환자 50명 중 ORR(객관적반응률)이 36%, CR(완전관해) 1명, PR(부분관해)이 17명으로 나타났다.

HLB(에이치엘비)는 선양낭성암에 대한 항암신약 ‘리보세라닙’의 임상 2상에서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회사 측에 따르면 미국과 한국에서 환자 8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임상 결과, 리보세라닙은 1차 지표인 ORR이 암의 크기변화를 기준으로 하는 반응평가 기준 15.1%, 크기 변화와 함께 밀도를 측정하는 CHOI 평가 기준 50.8%에 도달해 선낭암 치료제로 높은 가능성을 확인했다.

VEGFR TKI(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 티로신키나제 저해제) 약물 치료경험이 없는 환자에게서는 16.9%로 보다 높은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 통상 환자 선별에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은 10~30여 명 수준의 소규모 연구자 임상에서 니볼루맙, 펨브롤리주맙, 소라페닙 등 여러 항암제를 처방한 결과 선낭암의 암세포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ORR 0%), 5~10% 수준의 낮은 반응률을 보였던데 반해, 리보세라닙은 엄격히 통제된 다수 환자군에서 높은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고 HLB는 설명했다.

HLB는 기존 임상이 완료된 리보세라닙 위암 3·4차에 이어 간암 1차 글로벌 3상과 선양낭성암 2상 임상 완료에 따라 미국 자회사 엘레바를 통해 미국 식품의약국(FDA)를 비롯 각국 보건당국에 순차적으로 신약승인신청(NDA)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선낭암은 가속승인 프로그램을 지정받을 경우 3상 임상 없이 곧 바로 NDA 진행이 가능하다.

메드팩토는 이번 ASCO에서 췌장암 대상 ‘백토서팁’ 병용요법 임상 초록을 공개한다. 매드팩토 측은 췌장암 환자 16명을 대상으로 폴폭스와 백토서팁을 병용 투여한 결과, 안전성 면에서 기존 치료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효과성에서는 높은 개선 효과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췌장암은 조밀한 세포외 기질이 암을 둘러싸고 있어 항암제 접근이 어려워 치료 반응이 낮은 난치병이다. 암이 췌장 이외의 부위로 퍼지지 않고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건강한 상태인 경우 수술치료가 가능하지만, 많은 환자들은 절제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진단되기 때문이다.

연구를 구체적으로 보면 백토서팁 200㎎을 1일 2회 투여한 13명의 환자에게서 ORR이 23.1%으로 나타났다. 38.5%는 암덩어리가 더 커지지 않는 안전병변(SD)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른 임상적 유용성(Clinical benefit)은 61.5%다. 또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mPFS)는 5.6개월이었다. 반면 젬시타빈 실패환자 대상 폴폭스 2차 요법에서의 mPFS는 1.7개월, ORR은 0%다.

엔케이맥스는 ‘슈퍼NK’라고 불리는 후보물질 SNK01의 임상 데이터를 다수 공개한다. 미국에서 임상 1상을 진행 중인 바벤시오와 SNK01 병용 투여 파이프라인이 주목된다. 본래 미국에서 SNK01 단독 투여 임상으로 진행되다가 환자 9명 중 7명에서 안정병변이 확인돼 바벤시오와 병용 시험을 추가로 승인받았다. 2021년 중간 결과에서 완전관해 1명, 부분관해 2명, 안정병변 5명의 치료 효과를 확인했고 올해 ASCO에서 업데이트된 데이터를 발표한다.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GFR) 양성 고형암을 적응증으로 한 임상 1·2a상 데이터도 공개된다. 글로벌 제약사 어피메드와 같이 수행하는 임상이다. 어피메드의 NK인게이저 이중항체 AFM24와 SNK01을 병용 투여했다. NK인게이저는 NK세포와 암 항원의 거리를 줄여 암세포 살해를 유도하는 항체다. 혈액암 위주로 성과를 내오던 세포치료제 분야에서 고형암을 적응증으로 연구분야를 확대해 업계 주목을 받고 있다.

의료 인공지능(AI) 솔루션 개발기업인 루닛은 역대 최다인 연구초록 11편 발표한다. AI 기반 조직분석 플랫폼 ‘루닛 스코프(Lunit SCOPE)’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해당 연구를 통해 다양한 암 치료를 위한 바이오마커 발굴에 활용될 가능성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루닛은 미국 스탠포드대학병원을 비롯해 삼성서울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등 국내외 주요 의료기관과 함께 연구를 진행해 16개 이상의 암종, 1800명 이상의 실제 환자 데이터를 분석했다. 또한 루닛은 올해 ASCO에서 실제 병리과 전문의가 판독 과정에서 AI 기반 병리분석 솔루션 ‘루닛 스코프 PD-L1’을 사용할 때 임상적 유용성을 평가한 연구 결과도 함께 발표한다.

와이바이오로직스는 면역항암제 ‘YBL-006’의 임상 1상 결과를 선보인다. 이번 발표는 지난해 9월 유럽 최대 규모의 종양학회 ESMO에서 임상 1상 중간 결과를 발표한 지 8개월 만이다.

총 67명의 다양한 고형암 환자 중 52명에게서 효능을 평가해 ORR 15.4%, 완전 반응 1건과 부분 반응 7건이 포함됐다. 12개월이 지난 후에도 완전 반응과 부분 반응을 보인 환자 2명에게서 지속적인 반응이 관찰됐으며, 응답 기간의 중앙값은 4.9주였다.

약동학 연구를 위한 환자군을 제외한 유효성 확인을 위한 특별 관심 대상 암종의 환자군에서는 ORR이 19.4%로 나타났다. 참여한 환자 중 바이오마커 분석이 가능했던 환자군은 32명이었으며, 바이오마커에 대해 양성반응을 보인 환자군의 ORR은 62.5%로 바이오마커가 확인되지 않은 환자의 ORR인 8.3%와 비교해 높은 것이 확인됐다.

YBL-006은 국내 첫 PD-1 항체 면역항암제다. PD-1은 1992년 기전이 발견된 후 2015년 머크(MSD)의 ‘키트루다’가 나오면서 항암치료의 패러다임을 전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아직 세계적으로 품목 허가받은 제품은 10종에 불과하다.

에이비엘바이오는 ASCO뿐 아니라 부대 행사인 맥킨지 심포지엄에 참석해 파이프라인 임상 개발을 논의한다. ASCO에서는 항암 분야 임상 개발 현황을 파악하고, 진행 중인 임상과 관련해 현지 연구자 및 협력사를 만날 계획이다. 맥킨지가 주최하는 심포지엄에서는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가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패널로 초청받아 ‘글로벌 무대로 도약을 준비하는 아시아 항암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업계 관계자는 "유한양행을 제외한 국내 기업의 구두 발표 부재는 다소 아쉽지만 국내 바이오 기술을 파악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들이 이번 행사에서 쏟아져 나올 것이다"며 "그간 침체돼 있던 제약바이오 시장이 이번 ASCO를 기점으로 하반기엔 탄력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