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개월 만에 해외 경영 행보를 재개한다. 7일 오전 전용기편으로 유럽 출장길에 오른 이 부회장은 10일간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각국 파트너사와 협력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출장을 계기로 삼성의 대형 인수·합병(M&A)이 가시화 될지에 이목이 쏠린다. 삼성은 2016년 독일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한 후 이렇다 할 M&A에 나서지 않았다. 넉넉히 쌓인 현금성 자산을 토대로 이 부회장이 올해 첫 유럽행 발걸음을 뗀 만큼 대형 M&A를 실행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9년 7월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모습 / 조선일보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9년 7월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모습 / 조선일보DB
올해 1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보유액은 125조8896억원이다. 2017년 말(83조원)보다 40조원 이상 늘었다. 차입금을 포함해 1년 내 현금화 가능한 유동자산을 포함할 경우 현재 삼성전자가 M&A에 투입할 수 있는 자산은 최대 20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부회장의 유럽행으로 가장 유력하게 언급되는 M&A 분야는 차량용 반도체다. 유력 기업인 NXP(네덜란드), 인피니온(독일),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스위스) 등이 모두 유럽에 있다.

하지만 지난해 세계적 반도체 수급난으로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의 몸값이 급등한 점은 삼성이 M&A 추진을 망설일 수밖에 없는 요인으로 꼽힌다.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였던 NXP는 앞서 퀄컴이 2016년 440억달러(55조원)에 인수를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NXP의 시장가격은 2021년 말 기준 680억달러(85조원) 수준까지 치솟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반도체 M&A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매물은 영국의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ARM이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대주주인 ARM은 삼성전자와 애플, 퀄컴 등이 개발·판매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반도체 설계 핵심 기술을 다수 보유한 기업이다.

소프트뱅크는 2020년 9월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ARM을 최대 400억달러(50조원)에 매각하려 했지만, 각국 규제 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후 인텔, 퀄컴, SK하이닉스 등이 ARM 지분 인수 의사를 밝힌 상태다.

ARM 몸값이 천문학적 수준으로 오른데다 규제 당국 등을 의식해 주요 기업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인수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기업 간 합종연횡이 펼쳐질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최근 삼성도 컨소시엄 참여 후보군으로 떠올랐다.

이 부회장은 앞서 5월 30일 방한 중인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차세대 메모리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PC·모바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당시 재계 안팎에서는 양사 간 협력 방안 논의가 ARM 인수와 관련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같은 배경에 이 부회장이 유럽 출장 중 M&A 성사를 위해 영국 등을 깜짝 방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최근 삼성의 450조원 투자 계획에 대해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다"라고 밝히며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삼성전자 최고경영진도 최근 M&A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 중임을 전했다. 한종희 부회장은 1월 'CES 2022'에서 M&A 관련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고 한데 이어 최근 삼성호암상 시상식에서도 대형 M&A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부회장의 이번 출장에서 M&A 계획이 구체화 되거나 발표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통상적으로 삼성의 M&A는 이 부회장의 일정 중 나온적 없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M&A 계획이 이 부회장의 출장 일정이 끝난 뒤 시간을 두고 발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 한 고위 관계자는 "이번 출장에서 M&A 관련 발표가 나오지 않을 것이 유력하다"며 "아직은 (발표가 임박했다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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