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빅테크 업체 지분 중 상당 비율은 오너의 친인척이 아닌 전문 투자사 등이 가진다. 넷마블을 비롯해 카카오·네이버·넥슨 등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IT 기업 대부분이 그러하다. 그런데 최근 IT 벤처로 시작한 토종 소프트웨어(SW) 기업 내부 분위기는 다르다. 보통 IT기업 하면 전문경영인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는 등 기존 기업과 다른 운영 전략을 채택할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1세대 창업자의 뒤를 이어 2세들이 회사 경영의 중심에 서는 경우도 확인된다. 한글과컴퓨터, NHN, 다우키움그룹, 윈스, 마크애니 등이 대표적인 2세 경영 체제에 돌입하는 회사다. 상장기업의 경영 승계는 민감한 이슈다. 경영 능력이 미숙한 2세가 승계할 경우 회사의 존폐를 위협할 수 있는 탓이다. 경영 수업과 함께 자질까지 검증 받은 경우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주주들이 승계 자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IT조선은 최근 2세 승계가 이뤄졌거나 승계를 준비 중인 토종SW 기업 관련 주요 현안을 짚어보고, 앞으로의 숙제를 심층 분석했다. [편집자주]

‘문어발식’ 확장 나섰던 부친과 달리
선택과 집중 전략 택한 김연수 대표
B2C 기반 메타버스 기반 한컴타운 선봬
지난해 36.5% 폭락 영업이익 회복이 과제

국내 대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꼽히는 한글과컴퓨터 그룹이 2세 경영체제를 본격화했다. 창업주인 김상철 회장의 장녀인 김연수 미래전략총괄은 2021년 한컴 공동 대표로 선임되며 그룹의 미래 전략을 담당하고 있다. 같은 해 5월 김 회장 부부가 보유한 한컴 지분을 김 대표에게 넘기며 2세 경영 체제를 본격화했다.

한글과컴퓨터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어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컴위드의 지분구조(3월말 기준)를 살펴보면, 김상철 회장이 15.77%로 최대주주며, 김연수 대표가 9.07%로 2대 주주다. 이 밖에 김정실 이사를 비롯한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5.35%다.

김연수 한글과컴퓨터 공동 대표 / 한컴
김연수 한글과컴퓨터 공동 대표 / 한컴
김상철 회장은 그동안 독단적 경영방침을 펼친 결과 일부 직원의 불만을 사기도 했는데, 김연수 대표는 내부 직원과 소통을 늘려가는 등 아버지와 다른 분위기다.

김 대표의 사업 스타일은 아버지와 많이 다르다. 김상철 회장 시절 한컴은 B2B 위주로 사업을 펼쳤는데, 김연수 대표는 취임과 동시에 B2C에 손을 대며 아버지와 사업적 측면에서 다른 행보를 보인다. 메타버스 플랫폼 ‘한컴타운'이 김연수 대표의 경영 실력을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지 혹은 발목을 잡는 계륵같은 존재가 될 지에 관심이 쏠린다.

김상철 회장은 기업 인수·합병(M&A)에 적극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신사업을 벌이고 접고를 반복하다 보니 잦은 조직개편에 지친 직원들 사이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는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오너리스크', ‘회장리스크'라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할 정도다.

김 대표 역시 부친과 비슷하게 M&A에 열을 올리는 편이다. 김 대표는 한컴인스페이스, 한컴케어링크, 한컴프론티스 인수 등 한컴그룹의 굵직한 M&A에 관여하며 일찍이 경영에 동참했다.

IT 업계에서 김 대표의 행보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많다. 부친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 방식과 달리 선택과 집중을 위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과 같은 움직임 덕이다.

김 대표는 유럽 PDF 솔루션 기업 'iText' 인수 후 가치를 키워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최근 한컴MDS을 비롯해 한컴인텔리전스, 한컴로보틱스, 한컴모빌리티 등 종속회사를 1050억원에 팔기도 했다.

한컴은 오피스 기업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오랜 기간 다양한 신사업에 도전 중이다. 김 대표 역시 클라우드, 인공지능(AI), 자율주행, 항공우주와 같은 분야로 사업 확장을 노리고 있다. 한컴은 이번 매각 대금을 글로벌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우주 사업·데이터 기반 서비스 사업 투자와 인수에 활용할 예정이다.

5월 선보인 싸이월드와 연계한 ‘한컴타운’의 성공 여부도 김 대표에게 중요한 요소다. 메타버스 B2B, B2C 시장에 진출한 후 첫 성과를 보여줄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한컴의 2020~2021년 연결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을 비교한 그래프. 2021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2.4%, 36.5%씩 감소했다. / IT조선 DB
한컴의 2020~2021년 연결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을 비교한 그래프. 2021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2.4%, 36.5%씩 감소했다. / IT조선 DB
한컴MDS 매각 후 거대한 실적 공백을 메우는 것도 김 대표의 숙제다. 한컴MDS의 2021년 연결기준 매출은 1550억원이다. 같은해 한글과 컴퓨터 연결기준 매출이 3917억원이다. 그룹 전체 매출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던 사업이 떨어져 나간 셈이다. 게다가 지난해 한컴의 실적이 뒷걸음질 쳤기 때문에 올해까지 실적지표가 역성장하는 것은 김 대표의 경영자질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 대표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한컴의 2021년 연결 기준 매출액은 3917억원, 영업이익은 433억원이다. 2020년대비 매출액은 2.4%, 영업이익은 36.5% 감소했다.

한컴 관계자는 "김 대표는 겸손하다는 평가가 따라다니는 인물이다"며 "싱글맘인데도 불구하고 워커홀릭(일에 몰두하는 스타일)이며, 최근 미국 출장도 거의 무박으로 다녀올 정도로 일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열린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해 대표 취임 후 분기마다 ‘랜선데이'를 통해 화상으로 전직원과 소통하고 있다"며 "회사의 정책과 M&A, 제품개발에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만들며 적극적으로 소통한다"고 말했다.

류은주 기자 riswell@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