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개선, M&A, 오너십 교체 등 이유 다양

피터 정 AIA생명 대표가 임기를 불과 7개월여 남겨두고 ‘일신상의 사유’로 갑자기 사임했다. 글로벌 금융그룹의 한국법인인 AIA생명의 수장 교체가 이처럼 후임도 결정되지 않은 채 갑자기 이뤄진데 대해 업계가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

공석이었던 AIA생명 대표 자리는 박정진 법무지원본부장이 대표 대행을 맡다가 내달 1일 그룹 출신인 네이슨 촹이 신임 CEO로 선임된다. 현재 금융당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유독 많은 수의 보험사에서 CEO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실적에서부터, 대주주 이슈, M&A 등 이유도 다양하다. 올 들어 지금까지 ▲AIA생명 ▲MG손해보험 ▲동양생명 ▲롯데손해보험 ▲흥국생명 ▲흥국화재 ▲하나생명 ▲하나손해보험 ▲신한손해보험 ▲교보생명 ▲미래에셋생명 등에서 10여명의 수장이 바뀌었다.

올해 새로 부임한 보험사 대표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네이슨 촹 AIA 대표, 오승원 MG손보 대표, 저우궈단 동양생명 대표, 이은호 롯데손보 대표, 강병관 신한손보 대표, 김재식 미래에셋생명 대표, 김재영 하나손보 대표, 이승렬 하나생명 대표, 임규준 흥국화재 대표, 임형준 흥국생명 대표 / 각 사
올해 새로 부임한 보험사 대표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네이슨 촹 AIA 대표, 오승원 MG손보 대표, 저우궈단 동양생명 대표, 이은호 롯데손보 대표, 강병관 신한손보 대표, 김재식 미래에셋생명 대표, 김재영 하나손보 대표, 이승렬 하나생명 대표, 임규준 흥국화재 대표, 임형준 흥국생명 대표 / 각 사
실적부진 ‘MG손보’와 매각 채비 나선 ‘동양생명·롯데손보’

박윤식 전 MG손해보험 대표는 지난 2월 임기를 1년 앞두고 오승원 신임 대표에게 자리를 내줬다. 2020년 3월 부임한 박 전 대표는 회사 건전성 회복과 실적 개선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MG손보는 2019년 지급여력(RBC) 비율이 100% 아래로 떨어지면서 감독당국으로부터 경영개선명령을 받았다. 당기순이익도 78억원에 그쳤다.

박 전 대표는 한화손보 대표 재임시 실적 개선 공로를 인정받아 3연임에 성공했었던 인물이라 기대가 컸다. 하지만 회사 경영은 좀처럼 나아지지 못했다. 2020년 1005억원의 적자를 낸데 이어, 2021년에도 617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RBC 비율도 88%에 그쳐, 보험사 의무 기준인 100%를 맞추지 못했다.

동양생명은 올해 뤼젠룽 전 동양생명 대표 대신 저우궈단 동양생명 감사위원을 선임했다. 뤼젠룽 전 대표는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순이익인 2756억원을 올렸지만, 결국 4연임에는 실패했다. 그러자 업계에선 동양생명 매각설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중국 금융당국은 작년 6월 동양생명의 모기업인 다자보험의 민영화를 추진, 다자보험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자회사 동양생명도 새 주인을 찾아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롯데손해보험은 지난 2월, 9개월간의 이명재 대표 체제를 종식시키고, 이은호 전무로 수장을 바꿨다. 이명재 전 대표가 ‘일신상의 사유’로 사임을 표명했지만, 업계에서는 롯데손보 주인인 사모펀드 JKL파트너스가 회사 매각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에 들어갔다고 보는 분위기다.

그룹과 눈높이 맞추기 들어간 ‘흥국’과 ‘하나’...생명·손보 동시 교체

흥국과 하나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사 대표가 동시에 바뀌었다. 모기업 오너십의 이해 관계에 따라 CEO 교체가 단행됐다는게 세간의 평가다. 흥국생명과 흥국화재의 경우,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출소에 맞춰 본격적인 새판짜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박춘원 흥국생명 대표 후임으로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 출신인 임형준 대표가 CEO 바통을 이어 받았다. 박춘원 전 대표의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박 전 대표 부임 전인 2020년 255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1629억원까지 급증했다.

흥국화재에서는 권중원 대표가 물러나고, 매일경제신문과 금융위 대변인 출신인 임규준 대표가 취임했다. 권 전 대표는 흥국화재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지만, 3연임에는 실패했다.

업계에서는 "관과 언론 출신 대표를 영입, 그룹사 차원에서 대외 소통 채널을 넓히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 태광그룹 계열인 예가람저축은행과 고려저축은행 모두 외부 인사를 새롭게 영입, 태광그룹 금융 계열사들이 체제 정비에 들어갔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줬다.

하나생명과 하나손해보험은 지난 3월 이승렬 하나은행 전 경영그룹기획장을 하나생명 대표로, 김재영 하나손해보험 부사장을 하나손해보험 대표로 선임했다. 하나금융지주는 한 달 전 함영주 신임 회장이 새로 부임했다. 계열사 사장단 역시 함 회장의 사람들로 바뀔 것이란 전망이 이전부터 나왔다.

디지털 금융 예고한 신한손보, 자리바꿈 교보생명·미래에셋생명

신한금융지주는 프랑스 BNP파리바그룹으로부터 BNP파리바카디프손해보험(카디프손보)을 인수하면서, 올리비에 깔랑드로 대표 대신, 강병관 전 삼성화재 투자관리파트 부장을 대표로 선임했다. 1977년생인 강병관 대표는 업계 최연소 CEO 타이틀을 달았다. 강병관 대표는 삼성그룹 금융계열사의 디지털 통합 플랫폼 구축 작업에 매진했던 인물. 신한금융은 카디프손보의 사명을 신한손해보험으로 바꾸고 디지털 손보사로의 재편을 예고했다.

교보생명은 올 4월 초, 신창재 대표(회장), 편정범 신임 대표(사장), 윤열현 대표(사장) 등 3인의 각자대표 체제에서 윤열현 대표가 빠진 2인 각자대표 체제로 바뀌었다. 교보생명은 윤열현 전 대표가 특별경영고문으로 선임돼 후배들에게 40년 간 쌓은 영업 노하우를 전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윤 전 대표는 교보생명 대표직 선임 당시 영업통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1982년 교보생명 입사 후 영업일선에 경력을 쌓았다.

미래에셋생명은 김평규 대표 대신, 김재식 미래에셋생명 관리총괄이 변재상 대표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는다고 발표했다. 김평규 전 대표는 미래에셋금융서비스 대표가 됐다. 김재식 대표는 지난 2017년 6월부터 2019년 1월까지 미래에셋생명 대표를 맡았다가 미래에셋증권 대표를 거쳐 지난해 11월 미래에셋생명 관리총괄로 다시 복귀한 인물.

이 밖에도 작년 말 최영무 삼성화재 대표, 허정수 KB생명 대표, 최창수 농협손해보험 대표가 임기 만료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각각의 자리에 홍원학(삼성화재) 대표, 이환주(KB생명) 대표, 최문섭(농협손보) 대표가 새롭게 회사를 이끌게 됐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