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조업들이 자사의 공급망 경쟁력을 대체로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공급 위축이 평가에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매출액 상위 1000대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150개사를 조사한 결과, 자사 공급망 경쟁력에 대한 평가 수준이 낮고 2022년 하반기 공급망 여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 픽사베이
. / 픽사베이
기업들이 자사의 현재 공급망 경쟁력을 진단하여 점수화한다면 100점 만점 기준 평균 58점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는 ▲유연성(팬데믹, 재해와 같은 돌발상황에 잘 대처함) ▲분산성(특정 국가 또는 업체에 편중되지 않음) ▲신속성(권역별 공급망 현지화로 신속하게 대응함) 등에 대해 56~58점으로 평가했다.

상대적으로 ▲디지털화(공급망의 디지털 전환 및 데이터 통합이 잘 이루어짐) ▲ESG 대응성(탈탄소 공정과 같은 주요국·업체의 ESG 요구사항 강화에 잘 대응함) 등은 가장 낮게 평가(각 55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들의 자사 공급망 경쟁력 평가 /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들의 자사 공급망 경쟁력 평가 / 전국경제인연합회
최근 2년간 글로벌 공급망 문제로 피해를 본 기업들은 그 원인에 대해 ▲특정 지역 봉쇄 등으로 인한 팬데믹 리스크(35.3%)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국제정세 불안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30.7%) ▲운송 지연이나 파업 등 물류·운송 리스크(27.5%)를 꼽았다.

올해 하반기 글로벌 공급망 여건은 상반기 상황과 비교해 비슷(48.0%)하거나 악화(42.7%)할 것으로 보는 기업들이 많았다. 상반기 대비 약간이라도 개선될 것으로 보는 기업은 9.3%에 그쳤다.

또한 하반기 중 공급망 환경이 가장 우려되는 지역으로 생산·수입 측면에서는 중국·대만(51.4%), 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24.0%), 유럽연합(EU)(3.3%) 등을 예상했으며, 판매·수출의 경우 러시아·CIS(31.3%), 중국·대만(26.7%), 미국(7.3%) 등을 지목했다.

공급망 불안 요인과 재조정 전략 수립 여부 / 전국경제인연합회
공급망 불안 요인과 재조정 전략 수립 여부 / 전국경제인연합회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복합적인 공급망 리스크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중견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의 다변화와 디지털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공급망 관련 교수와 전문가들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올해 하반기도 글로벌 공급망 불안은 계속될 것이며, 정부와 민간 차원 모두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문일경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하반기에도 공급망 혼돈은 지속될 것이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올해 안에 종료되더라도 파괴된 공급망이 회복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반도체 전문가인 김영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반도체용 희귀가스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높아져 중국과 관계가 악화될 경우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며 "수입 중인 해외 제품과 대체 불가능한 반도체 장비도 다수인 만큼, 공급망 민감 품목을 면밀히 모니터링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김윤상 하이투자증권 기업분석부장은 "코로나19,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악화된 원자재 공급 차질은 중국의 석탄, 알루미늄 증산 등으로 최악의 국면은 벗어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주요 금속의 수급 차질이 해소되지 않아 하반기 공급이 큰 폭으로 개선되기는 어렵고, 긴축에 따라 전반적인 수요 역시 둔화될 전망이다"고 말했다.

조상록 기자 jsrok@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