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의 명운을 쥔 암호화폐 리플(ripple)의 소송이 핵심 쟁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증권거래위원회(SEC) 주요 인사의 발언 공개 여부에 맞춰 법원이 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여 가상자산의 증권성 범위도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9일 외신에 따르면 윌리엄 힌만(William Hinman) 전 SEC 기업금융국 국장의 연설 내용이 조만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수 일내에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리플 소송을 맡고 있는 새라 넷번 판사가 SEC에 이메일을 공개하라는 명령에, SEC가 제기한 항소 결과다.

"이더리움은 증권" 연설 내용 공개여부 판결 임박 전망

리플 커뮤니티의 변호사인 제레미 호건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오는 10일까지 관련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원고인 미국 SEC가 계속 소송을 지연시켜 판결이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리플의 개발사인 리플랩스와 SEC의 소송은 지난 2020년 10월 시작됐다. SEC는 리플랩스의 자체 코인인 XRP를 ‘미등록 증권’으로 판단했다. 리플랩스가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총 13억달러(한화 약 1조4000억원)에 달하는 XRP를 유통시켰다며 현행법 위반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대법원 하위 테스트에 따르면 ▲돈을 ▲기업에 투자해서 ▲수익을 기대하고 ▲제3자의 노력으로 수익이 발생하면 증권형 토큰으로 본다. 양측은 이중 제3자의 범위를 두고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리플랩스는 XRP가 탈중앙화돼 있어 ‘증권’이 아닌 ‘상품’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같은 주장의 근거가 힌만의 연설 내용이 담긴 이메일이다. 힌만은 지난 2018년 이더리움이 탈중앙화 구조를 바탕으로 거래돼 증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은 각국 금융당국이 증권성 범위를 가늠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박민우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은 "리플랩스와 SEC의 소송 결과에 따라 우리 가상자산 정책도 지금과 다르게 가져가야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SEC vs CFTC 관할권 싸움…개리 겐슬러 증권성 사수 '안간힘'

일각에서는 ‘SEC가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는다. 증권성 범위가 넓어지면 SEC가 가상자산 관할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가상자산의 증권성 범위가 좁아지면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관할의 확대된다.

개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지난달 CNBC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주요 가상자산 가운데 증권이 아닌 상품으로 불릴 수 있는 유일한 가상자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향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비트코인 감독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힌만의 연설 내용이 공개될 경우 소송이 리플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한다.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힌만 증언이 공개되면 리플에게 유리하겠지만 법원이 행정 절차에 영향을 준 부분은 삭제할 수도 있다고 결정한 걸로 알고 있다" 며 "따라서 공개 정도를 SEC가 어느 정도로 조절하느냐에 따라 임팩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CFTC 권한 확대 법안 발의…"소송 합의 땐 관할권 싸움에 영향 없어"

미 의회도 CFTC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미 상원의원 커스틴 길리브랜드와 신시아 럼미스는 CFTC의 권한을 확대하는 가상자산 규제 법안을 내놓은 바 있다. 대부분의 가상자산이 상품과 유사하다는 판단에서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이 상품으로 분류돼 CFTC 관할에 속하는 게 시장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로스틴 베남 CFTC 의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상품 자격을 갖춘 가상자산이 수천개는 아니더라도 수십개는 될 것"이라며 "CFTC가 가상자산을 규제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제 송금 프로젝트인 리플이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역할이 확장되면서 탈중앙성이 부각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리플은 은행들이 국제 송금에서 겪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코인이다. 최근 리플은 메타버스 기업 플러프 월드와 손잡고 NFT를 발행 매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다만 소송 자료를 간소화해달라는 SEC의 요구를 리플랩스가 받아들이면서, 소송이 합의로 끝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석문 센터장은 리플 소송이 SEC와 CFTC의 가상자산 관할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소송 결과에 따라 다를 것"이라면서도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협상으로 마무리되면 SEC·CFTC 관할권 싸움에 영향을 주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만일 협상 없이 법원 판결까지 가면 그 판결의 논리가 각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판명하는데 사용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