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정치적 리스크가 가중되는 중국 시장에서 서서히 발을 뺀다. 반면 미국 시장에선 2000억달러(263조원)를 투입하는 대규모 투자 카드를 꺼내들며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적극 화답하는 모습이다.

21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오스틴에 2곳, 테일러에 9곳의 반도체 생산공장을 건설하는 계획을 담은 세제혜택신청서를 텍사스주 감사관실에 제출했다. 20년에 걸쳐 2000억달러쯤을 투입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이다.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공장 항공사진 / 삼성전자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공장 항공사진 /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오스틴에 반도체 공장 2곳을 운영 중이다. 테일러에도 170억달러를 들여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 신청서에서 테일러 신공장 9곳에 1676억달러(220조4000억원)를, 오스틴 신공장 2곳에 245억달러(32조2000억원)를 각각 투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총 1921억달러(252조6000억원)의 투자금을 들여 1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삼성전자의 구상이다.

삼성전자는 이 중 일부는 2034년쯤 완공해 가동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이후 10년에 걸쳐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초대형 투자 구상은 미국 의회가 반도체 생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500억달러 이상의 보조금 지급을 추진하는 가운데 공개된 것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WSJ에 이번 신청이 반드시 투자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삼성전자는 "현재로서는 신청서에 적시된 새 공장들을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며 "신청서에 담긴 투자 제안은 삼성전자의 미국 사업 확장의 실행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한 장기 계획 절차를 반영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5월 18일 중국 시안 삼성 반도체 공장을 찾아 시설을 점검하는 모습 /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5월 18일 중국 시안 삼성 반도체 공장을 찾아 시설을 점검하는 모습 /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테일러시를 시작으로 미국에 초대형 투자 구상을 드러낸 반면, 중국 시장에선 투자를 줄이는 추세를 보인다.

삼성전자 ‘2022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중국 현지 법인에 고용된 인원은 1만7820명이다. 8년 전인 2013년 6만316명 대비 70.46% 줄어든 규모다. 삼성전자의 중국 임직원은 한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이슈가 터진 2016년, 미·중 무역 분쟁이 불거진 2018년을 기점으로 급감했다.

삼성전자는 고용 인력이 줄은 만큼 중국 현지 공장도 감축해왔다. 2018년 5월에는 선전 통신 공장, 12월에는 톈진 스마트폰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2019년 중국 내 마지막 스마트폰 생산기지인 후이저우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2020년 7월엔 쑤저우 PC 생산 설비도 철수했다. 이들 공장은 베트남과 인도 등으로 이전했다.

삼성전자의 남은 중국 생산기지는 쑤저우 가전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 공장, 시안 메모리 반도체 공장 등 3곳이다. 미·중 분쟁에 따른 고율 관세, 고강도 코로나19 봉쇄정책 등에 대한 우려로 남아있는 반도체 및 가전 분야 투자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