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타 병원에 이송되 뒤 숨지는 일이 발생하면서 의료계 내외부로 충격이 전해지고 있다.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만약 쓰러진 의료진이 의사였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며 간호사 처우 문제로 불이 붙어, 일각에서는 간호법으로 갈등이 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에 대해 대한간호사협회가 올린 추모글. / 홈페이지 캡처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에 대해 대한간호사협회가 올린 추모글. / 홈페이지 캡처
의료계에 따르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지난달 말 서울아산병원에서 새벽 근무 중이던 간호사 A씨가 뇌출혈로 쓰러져 숨졌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논란이 된 부분은 A씨가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수술할 의료진이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결국 숨졌다는 점과, 당시 대부분의 의사가 학회에 참석해 의료진 공백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사건이 공개되자 일부 직원들은 "당직 의사가 수술을 강행했어야 한다"는 지적과 더불어, "간호사는 아파도 출근해 병원에서 죽어야하는 소모품 같은 존재"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직무 간 갈등으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의료전달체계의 최상위단계인 상급종합병원 종사자의 응급상황조차 처리하지 못해 사망에 이르렀는데 그 원인이 휴가 떠난 의사의 공백을 메울 의사가 없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며 "국내 최대 병상 규모를 자랑하는 병원의 의사 부족 현상이 이 정도면 다른 병원과 지방병원은 더 심각할 것이다"고 비판했다.

의료계에서도 이번 사건에 석연치않은 부분이 많다고 보고있다. 서울아산병원은 전세계 50위권에 위치한 대형병원임에도 의료진이 근무 중 아무런 대처없이 숨졌다는 점은 납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의료 공백이 장기간 발생했다는 점 역시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사건 내용이 알려지면서 일부 환자 커뮤니티에는 당시 뇌출혈로 환자들이 서울아산병원에 긴급 이송됐다면 끔찍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마저 흘러나온다.

또한 이번 사건이 의료계에 논란을 가져온 ‘간호법 제정’까지 파장이 번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간 여러 간호사 단체들은 간호법 제정에 핵심 골자로 간호사 처우개선 문제를 주장해왔고, 이번 사건이 대표적인 예시로 작용할 수 있다.

간호단체관계자는 "간호사들에게 계속된 희생을 요구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한시라도 빨리 끊어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은 참으로 비통한 의료사고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간호협회 역시 성명을 통해 "간호사의 이번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나라 의사 부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일깨워 준 예견된 중대한 사건이다"며 "서울아산병원은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본원 응급실에서 발생했던 일과 당일 근무한 당직자의 대처, 응급실 이동 후 서울대병원 전원까지 걸린 시간 등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에 간호법이 계류중인 법제사법위원회의 판단에도 막대한 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법사위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의원들이 민주당 소속이긴 하지만 이번 법사위원장에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지명되면서 의료계는 간호법과 관련해 충분한 의견수렴 시간을 갖자는 입장을 취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간호사법 재정이 급물살 탈 가능성이 높아져 법사위도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나아가 지난해 좌초됐던 공공의대 논의까지 불붙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현 정부도 대학병원 분원과 공공임상교수제 등을 통해 의료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 관련 논의가 이뤄질지도 관심사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4일 송파구보건소와 함께 서울아산병원 현장확인에 돌입한다.

이번 현장확인은 관할 보건소 담당자 이외 복지부 실무자까지 동행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현장확인을 통해 진료기록부, 환자 전원일지 등을 확인하고 해당 간호사를 적절하게 치료했는지와 전원이 적절했는지 등을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현장에서 간호사가 사망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될 일이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정부가 직접 나서 대책마련에 돌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