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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훈의 블록체인과 핀테크] 가상통화 폭등과 유사하다고 알려진 '남해회사 버블' 뒷배경

입력 : 2017.11.29 18:45:57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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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네덜란드 튤립 버블과 현 가상통화 시장 양상을 비교해봤다. 이야기를 하나 더 꺼내면 어떨까? 튤립 버블만큼 이슈였지만, 전개 양상은 사뭇 달랐던 '남해회사 버블'과 가상통화 열풍 역시 비교할 가치가 있다.

18세기 초, 영국은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714)에서 실질적으로 승리했으나 전쟁자금을 국채로 조달한 탓에 엄청난 빚더미에 올랐다. 1711년 전쟁이 끝날 무렵 채무는 1000만 파운드에 달했고, 영국 재정지출 중 9%가 채무상환과 군사비일 정도였다.

당시 재무장관 로버트 할리는 스페인령 아메리카에 노예 공급을 허용하는 조약을 예상하고, 이를 위해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를 설립했다. 물론 목적은 영국의 채무 변제였다. 영국이 발행한 단기국채를 연리 6% 영구 주식증서로 전환, 남해회사의 이윤으로 이자를 지급해 국채를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이미 영국 중앙은행 '영란은행'과 '동인도회사 주식'을 매개로 성공한 전례가 있었다.

조약은 현실이 됐고, 30년간 11만4000명의 노예를 카리브해 스페인 식민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영국 정부는 이 특권과 남태평양 전 무역 독점권을 남해회사에 양도했고, 남해회사는 유상증자로 1000만파운드 상당 국채를 주식으로 전환 인수했다. 문제는, 조약으로 얻어낸 무역권 내용이 '1년에 500톤 이하 물량을 적재한 화물 한척'으로 당초 기대에 훨씬 못 미친 점이다. 게다가 실제 교역도 1717년에나 성사됐다. 남해회사는 되려 200만 파운드의 채무를 지게 됐다.

남해회사는 1718년 복권을 발행해 위기를 넘겼다. 1719년에는 연 5% 전환사채를 발행해 3100만파운드의 국채를 인수한다고 밝히고, 주식 발행권을 750만파운드 부담금을 안고 얻어냈다. 발행(underwriting) 가능한 금융회사로 변신한 것이다.

당시 영국정부의 총 부채는 5000만파운드 정도였는데 이 중 1500만파운드가 중도상환 불가능하고 거래도 거의 불가능한 장단기 연금(annuity) 증서였다. 고리에 비유동적 채권을 유동성 높은 주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영국 정부와 채권자, 남해회사 모두에게 솔깃한 선택이었다. 재무장관 존 아이스래비가 이 프로그램을 의회에 제출하자, 남해회사 주식 가격은 거래가 128파운드에서 50% 폭등한 187파운드가 됐다.

당시 프로그램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주식과 국채 교환은 시가로 실시한다. 즉, 남해회사의 주가가 액면가 100파운드 당 시장 가격 200파운드라면, 200파운드의 부채 1개와 남해회사 주식 100파운드 분을 등가 교환한다.

2. 발행 허용 수량은 교환 금액에 따르므로(200파운드로 교환) 액면 200파운드분의 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 즉 교체해도 수중에 100파운드, 시가 200파운드 분은 남게 된다.

3. 이것을 매물로 내놓으면, 매출 200파운드는 그대로 남해회사의 이익이 된다.

4. 위의 방법으로 남해회사의 이익이 올라가면 당연히 주가가 상승한다.

5. 1로 돌아가기.

이러한 단계를 반복해 주가를 무한히 올리면, 남해회사는 이익, 주식 보유자는 순식간에 부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남해회사 주가가 오르자 영국 의회는 프로그램 승인 법률을 통과시켰다. 주가가 더 오르면 남해회사 주식과 국채 교환비율이 감소해 정부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법 통과 후 남해회사 주식이 추가로 발행되었음에도 주가는 300파운드까지 상승했다.

남해회사는 위 프로그램 수행을 위해 공식적으로 750만파운드를 정부에 지불하기로 약속했다. 130만파운드에 달하는 로비자금이 옵션형태로 각료, 국회의원, 왕실 등에 제공되었다고도 알려졌다. 즉, 3100만파운드 국채의 '주식전환 권한 확보'에만 880만파운드 비용이 소요된 셈이다.

남해회사 주식 공모주 청약 과정에서 국회의원과 고위 관료는 주식을 배정, 자본이득을 누릴 기회를 얻었다. 1720년 4월 7일 국채차환법안 재가 후 8월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10만주가 현금청약으로 발행됐는데 이 중 1만7000주 이상이 의원, 귀족, 고위관료들에게 배정됐다. 심지어 일부는 자본 없이도 주식을 배정받았다.

자금조달을 마치는 동안 남해회사는 스페인 식민지에서의 통상권 확보, 은 광산 운영이 가능하다는 '루머'를 퍼뜨려 주가를 올렸다. 1720년 중반부터 남해회사 사업이 진행되면 무역독점권을 이용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리라는 기대가 높아지며 투자자들은 소유하고 있던 국채를 팔고 남해회사 주식을 구매하는데 열을 올렸다.

국채와 주식의 교환비율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주가를 올려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영진의 노력도 이를 도왔다. 귀족, 부르주아뿐 아니라 서민까지 '주식에 대한 충분한 이해'없이 돈을 벌기 위해 남해회사에 투자했다.

남해회사 임원은 주식 가격을 더 높이기 위해 '스페인이 영국에게 페루 포토시 은광을 넘겨줄 것이며 은이 쇠처럼 흔하게 될 것'이라는 루머를 흘렸다. 투기열풍은 더 거세졌다. 당시 런던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마차를 끌고 남해회사 주식을 구매하려 몰려들어 도로의 통행이 수주일 동안 마비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1720년 1월 128파운드였던 남해회사 주가는 5월 550파운드, 8월에는 1000파운드까지 상승했다. 물론 '본업인 무역활동은 거의 없었'다. 남해회사는 국가부채를 인수하는 금융회사로 탈바꿈해 경이적인 주가상승을 이뤘다. 상승기조에 편승해 은행과 영국 동인도 회사 주가도 같이 상승했다.

분위기에 편승한 '사기공모'도 줄을 이었다. 대중은 '아무 주식'이나 구매하려고 했고, '무슨 사업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프로젝트가 100개가 넘어갔고 '엄청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지만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다'는 회사까지 설립, 5시간만에 거액의 투자금을 갖고 유럽을 떠난 사례도 있다.

정부 허가 없이 이런 회사를 만드는 것은 금지였다. 하지만, '자금조달 시간이 극단적으로 짧아'지자 '무단으로 회사 설립 후 투자금을 받는 불법행위'가 지속됐다. 돈을 벌자는 대중들은 이에 열광적으로 투자했다. 위기를 느낀 영국 정부는 6월 24일 '거품 회사 규제법'을 통과시키고, 8월 24일 고지 영장을 발급하면서 투자자들을 보호하려 하였으나 그 순간 거품이 터져버렸다.

이후 남해회사 버블에 대한 영국 정부의 대응 및 결과를 살펴보고, 현 가상통화 시장과의 유사성을 검토하도록 하겠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 경영대 재무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비트코인 거래소 코인피아 자문위원이기도 합니다. 학계에 오기 전 대학자산운용펀드, 투자은행, 중앙은행 등에 근무하며 금융 실무경력을 쌓았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박사를 마치고 자본시장연구원과 시드니공과대(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영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주 연구분야는 자산운용, 위험관리, 대체투자 및 전자화폐로, 시드니공과대학 재직시절 비트코인 등 디지털화폐와 화폐경제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현재 SWIFT Institute에서 연구지원을 받아 전자화폐가 진정한 화폐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연구 중입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화폐가 대체투자 자산이 될지, 자산운용 측면에서 어느 정도 효용을 가질지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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