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는 일반인들이 좀처럼 접근하기 힘든 초고속 연산을 지원하는 컴퓨터다. 흔히 대학 교수나 기업 부설 연구소 연구원들이 장기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유전자 연구를 비롯해 자동차 설계, 반도체 설계, 3D애니메이션 제작, 3차원 시뮬레이션 등 각종 작업에 슈퍼컴퓨터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슈퍼컴퓨터의 쓰임새는 요즘들어 더욱 확장되는 추세다. 온라인결제사이트인 `페이팔`에선 사기성 결제를 찾아내는데 쓰이고 있으며 의학 분야에서 임산부의 제왕절개 수술 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데도 쓰인다. 슈퍼컴퓨터 기술 가운데 일부는 일반 PC에도 적용된다. 가령 요즘 각광받고 있는 GPU의 핵심기술도 슈퍼컴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슈퍼컴퓨터안에 미래의 PC가 들어있는 셈이다.


IT조선은 지난해말 공식 출범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초대 소장인 이지수 박사의 슈퍼컴퓨터에 관한 기고문을 매주 한차례 싣는다. 물리학자인 이지수 소장은 지난 2001년부터 KISTI 슈퍼컴퓨팅센터에서 근무하면서 국내 슈퍼컴퓨터 보급의 초석을 다진 인사 중 하나다. 이지수 소장이 흥미롭게 풀어낼 슈퍼컴퓨터의 세계에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을 기대한다.(편집자)

 

슈퍼컴퓨터는 우리가 흔히 듣는 단어지만 그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동차의 경우와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골프퀸 박인비가 타는 슈퍼카인 페라리 FF는 보통 자동차에 비해 최대속력, 엔진마력, 가격 등 여러 면에서 '슈퍼'하다. 그렇다면 보통 자동차와 슈퍼카의 구분은 어떠한 양을 기준으로 하며 그 정확한 경계는 어디인가?

 

슈퍼컴의 경우도 상황은 유사하다. 현재 세계 최고의 슈퍼컴인 중국의 '은하2호(Tianhe-2, 중국명 天河)'는 처리속도, 전력소모, 가격 등 모든 면에서 일반 컴퓨터에 비하여 월등하다.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슈퍼컴의 기준은 자동차의 최대속력과 유사한 처리속도에 기반한다.

 

            은하2(Tianhe-2) 슈퍼컴퓨터(사진: 일본 쓰꾸바대학 Taisuke Boku 교수 제공)  

                        처리속도: 55PetaFLOPS, 전력소모: 17.5MW, 설치면적: 218

 

궁극적으로는 사칙연산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비인 컴퓨터의 기준이 1초에 처리할 수 있는 연산의 횟수인 FLOPS(FLoating-point Operations per Second)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하다. 현재 최고사양 CPU 중 하나인 인텔의 i7-2600K (3.4GHz)의 처리속도는 1초에 1천억 회에 해당하는 100GigaFLOPS가 조금 넘는다. 이에 비교하면 은하2호의 처리속도는 무려 이의 50만배가 넘는 55PetaFLOPS에 달한다.

 

이 능력을 인간과 비교해보자. 인간이 사칙연산 1회를 10초 만에 수행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그 처리속도는 0.1FLOPS이다 (실제 대학의 수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그 시간은 3분이 넘었다). 지구의 인구를 70억 명으로 가정하면 지구 인구 전체의 처리속도는 0.7GigaFLOPS이다. 따라서 인류가 2.5년간 수행할 계산의 양을 은하2호는 단 1초 만에 수행한다는 것이다.

 

슈퍼컴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어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중요한 도구다. 하지만 IT마니아들에게는 그 활용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 자체에 대한 동경과 관심이 존재한다. 마치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최신 슈퍼카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다른 측면에서 보면, 현재 일반자동차에 활용되는 기술이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슈퍼카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례로 대기로 버려지는 에너지를 터빈의 회전력으로 변화시켜 엔진의 출력 및 연비를 향상시키는 터보차저 기술은 슈퍼카인 '프르쉐 930터보'에 최초로 적용되었다

 

    

 페라리 FF: (출처: Ferrari) 최대속력: 355km/h, 엔진마력: 660hp, 가격: 4 6천만원

 

이와 유사하게 현재 PC에 사용되는 많은 기술들은 슈퍼컴에서 출발했다. 예를 들어 최신 CPU에 적용되어 멀티미디어 및 공학계산 분야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AVX(Advance Vector Extension) 기술은 Cray-1과 같은 1세대 벡터형 슈퍼컴에서 시작되었고, GPU의 핵심기술들도 슈퍼컴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IT 마니아라면 슈퍼컴의 동향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다음회에 계속...)

 

  <이지수 소장 약력>

-미 보스턴대학 물리학 박사

-독일 국립슈퍼컴센터 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센터 센터장

-()한국계산과학공학회 부회장

-Journal of Computational Science 편집위원

-(현재) KISTI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