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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 중요한 도구다. 이를 이용해 자동차와 같은 제품을 개발하고, 암과 같은 질병의 치료법을 찾아내며,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책을 수립하고, 블랙홀과 같은 자연현상을 이해하는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가장 신비로운 영역인 두뇌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 가능할까? 언뜻 보기에 무모하게 보이는 이 문제는 그동안 과학자들의 꾸준한 노력을 통해 한걸음씩 진도를 나가고 있다.

 

인간의 두뇌는 약 1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신경세포는 전기신호를 통해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뇌 이해의 출발점은 개별 신경세포의 전기적인 성질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신경세포를 수백에서 수천 개의 '구획(compartment)'으로 나눈 후, 각 구획에 실험을 통해 얻은 전기적 특성을 부여해 신경세포 전체를 사실적으로 시뮬레이션 하는 구획모형(compartment model) 방법이 사용된다.

 

 

신경세포의 컴퓨터 모형: 소뇌피질에 존재하는 퍼킨제세포의 구획모형 <출처: 영국 UCL(University College London)Gleeson 교수>

 

하나의 신경세포를 컴퓨터로 이해한 후에 그 수를 점차 늘려가면서 뇌 전체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어떻게 보면 '무식한' 전략을 추구하는 그룹이 스위스 로잔공대의 Markram 박사팀이다.

 

첫 단계인 Blue Brain Project의 1차 목표는 최소의 기능단위로 알려진 쥐의 외피원주(neocortical column)를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더듬이 등에서 전달되는 신호를 처리하는 체성감각(somatosensory) 외피원주가 선택되었다. 하나의 외피원주에는 약 1만개의 신경세포가 3천만 개의 시냅스를 통하여 연결되어있다. 이러한 방대한 규모의 계산을 위해서는 슈퍼컴퓨터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하여 Markram 박사팀은 8192개의 CPU로 이루어진 IBM BlueGene/L 슈퍼컴을 전용으로 사용했다.

 

외피원주 시뮬레이션을 위해서는 많은 수의 신경세포를 다루기 위한 컴퓨터의 처리속도도 문제지만, 시냅스를 통하여 이루어진 복잡한 신경세포 네트워크를 얼마나 잘 구현하는 것이 핵심적인 이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Markram 박사팀은 2008년 컴퓨터로 구현한 외피원주의 거동이 실제의 것을 재현함을 보였다.

 

 

외피원주 컴퓨터 모형: 뇌 기능의 최소단위로 알려진 쥐의 외피원주 컴퓨터 모형. 1만개의 신경세포가 3천만 개의 시냅스를 형성하고 있다 (출처: Blue Brain Project)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2011년 Markram 박사팀은 100개의 외피원주로 이루어진 쥐 메조서킷(mesocircuit)의 시뮬레이션에 성공하였다. 다음 단계인 쥐의 대뇌 전체는 약 2억 개의 신경세포가 약 1000억 개의 시냅스를 통하여 연결되어 있다. 이의 시뮬레이션을 위해서는 최소한 1페타플롭스(PFLOPS)의 처리속도와 100TB의 메모리가 탑재된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

 

뇌 시뮬레이션과 컴퓨터속도: 쥐의 외피원주(neocortical column)와 메조서킷(mesocircuit) 시뮬레이션은 각각 2008, 2011년에 완료되었다. 쥐의 뇌, 인간의 뇌 시뮬레이션에는 각각 1PFLOPS, 1EFLOP의 처리속도가 필요하다고 추정된다 (출처: Human Brain Project)

 

 

마지막 단계인 인간의 뇌를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서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와 약 100조 개의 시냅스에서 생성되는 정보의 처리능력이 필요하다. 이는 위해서는 현재 슈퍼컴의 성능을 훨씬 뛰어넘는 최소 1엑사플롭스(EFLOPS)의 처리속도와 100페타바이트(PB)의 메모리가 필요하다.

 

올해 초 유럽연합은 앞으로 10년안에 슈퍼컴퓨터를 사용해 인간 뇌 전체를 시뮬레이션 하겠다는 'Human Brain Project'를 승인하였다. 로잔공대 등 80여 기관이 참여하는 이 사업에는 무려 10억유료(약 1조5천억원)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입된다.

 

이 내용을 자세히 보면 (1)뇌의 구조 및 기능에 관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2) 슈퍼컴퓨터와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IT 플랫폼을 구축해 (3) 대표적인 뇌질환에 대한 치료법을 제시하며 (4)전체적인 이해를 촉진하기 위한 이론체계를 수립하는 네 가지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위해 IBM, 크레이(Cray) 등 미국기업, EuroTech, Bull 등의 유럽기업들과 전용의 엑사플롭스급 슈퍼컴퓨터를 구축한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향후 10년 뒤에는 컴퓨터가 나를 대신하여 이 글을 작성할지도 모른다.

 

  <이지수 소장 약력>

-미 보스턴대학 물리학 박사

-독일 국립슈퍼컴센터 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센터 센터장

-()한국계산과학공학회 부회장

-Journal of Computational Science 편집위원

-(현재) KISTI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