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위기관리의 중요성은 더 강조되고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재난을 미리 짐작하고 이를 예방하는 것이 재난을 만난 뒤 은혜를 베푸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기존 위기·재난관리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IT조선 박상훈] 사례 1. 지난 2012년 11월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동부를 강타했을 때 송전탑에 문제가 생기면서 전력공급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가정 내 발전기를 돌리기 위해 '기름 사재기’로 주유 대란이 발생했다. 이런 혼란 상황에서 위력을 발휘한 것은 페이스북과 트위터였다. 주유소를 방문한 사람들이 주유소별 기름 보유 상황과 연락처, 대기시간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했고 이를 지도에 매핑해 보여주는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사태는 진정됐다.

 

사례 2. 지난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역사상 최악의 지진 중 하나다. 규모 9.0의 초대형 지진으로, 40m에 달하는 초대형 쓰나미가 육지를 덮쳤다. 이 결과 1만6000명 가까이 사망했고 2700여 명이 실종됐다. 부상자도 6000여 명에 달한다. 이 참사의 대혼란 중에 SNS는 큰 힘을 발휘했다. 당시 국민들 스스로 다양한 SNS를 이용해 피해 상황과 대피소 정보 등을 공유했고 사태 수습에 큰 도움이 됐다.

 

▲ 미국 멤피스 경찰서의 범죄 핫스팟 지도 (화면=한국정보화진흥원)

 

이처럼 빅데이터가 미래형 재난안전 체계의 주요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SNS를 통한 정보 공유 외에도 SNS 글과 기상정보, 센서 데이터 등 방대한 정보를 통합 분석하면 재난 관리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이들 데이터를 기반으로 앞으로 닥칠 재난을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해외의 경우 이러한 노력이 상당 부분 진전돼 재난뿐만 아니라 안전 분야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미국의 범죄 예측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시카고 경찰서는 911 통화 데이터 등 실시간 범죄 데이터와 거리 조명, 인구 밀도, 건물 형태 등 블록 단위 공간 데이터를 활용해 범죄 발생 시점과 위치를 예측한다. 테네시주의 멤피스 시는 범죄가 예상되는 지역에 경찰관을 집중적으로 배치한다.

 

국내도 빅데이터 활용한 재난관리 본격화

 

국내에서도 빅데이터를 재난 관리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이달 초 재난 예측과 대응에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시범과제를 선정하고 서비스 개발을 시작했다. 이번에 선정된 것은 조류인플루엔자(AI) 조기 대응 서비스와 산간 등 비탈면 붕괴에 대한 사전 예측과 조기 대응 등 2가지로, 체감효과가 크고 단기간에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과제라고 미래부는 설명했다.

 

이 중 AI 대응 서비스는 KT의 기지국 통계 데이터와 농식품부의 국가동물방역통합시스템(KAHIS)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AI의 확산이 사람, 차량의 이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분석하고 먼저 방역해야 할 지역을 예측한다. 이를 위해 사람과 차량 이동과 AI 확산 간의 연관관계 분석을 통한 확산 예측 모델도 개발하는데, 미래부는 90% 이상의 정확도로 전염 지역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미래부의 AI 조기 대응 서비스 개념도 (그림=미래부)

 

지자체 중에서는 경기도가 적극 나서고 있다. 경기도는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한 '경기도 재난관리 정보시스템 통합플랫폼'을 구축해 도내 31개 시·군과 산하기관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별도 아카데미도 설립해 일자리 창출도 노리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재난안전 관리와 함께 사이버재난 플랫폼으로 확장해 운영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경기도는 지난 6월 빅데이터 교육 프로그램인 ‘D-캠프’를 시작해 내부 인력에 대한 교육부터 단계적으로 역량을 쌓고 있다.

 

최근 가장 흥미로운 프로젝트 중 하나가 바로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스마트 재난관리 플랫폼(Smart Big Board)이다. 지난해부터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재난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가용한 정보를 분석해 현장 상황을 모니터링한다. 앞서 사례로 본 SNS는 물론 기상 정보, CCTV, 재난 이력 등을 총망라하고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고, 관련 데이터를 스마트폰으로 수집,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연구원은 '스마트 빅보드’라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내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재난관리에 빅데이터가 필요한 3가지 이유

 

이처럼 재난관리에 빅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접목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 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과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전통적인 행정망과 조직 외에 최대한 다양한 정보 전달 채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행정망은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도록 유도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반면 SNS와 같은 새로운 수단을 이용하면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실시간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정보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은 숙제지만, 앞선 몇몇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속보성 측면에서 SNS는 가장 강력한 정보 전달과 공유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것도 재난관리 분야에서 빅데이터가 주목받는 이유다. SNS를 통해 생산되는 정보량은 하루에 수백만 건 이상이고, 특히 재난 관제 센서는 거의 끊임없이 정보를 생산하기 때문에 이를 처리하려면 상당한 성능의 시스템이 필수적이었다.

 

▲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스마트 빅보드 (화면=국립재난안전연구원)

 

그러나 빅데이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비용 효율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둡 같은 기술은 비정형 데이터를 저렴하게 분석하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인 메모리 기술은 고속으로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에 안성맞춤이다. 최근에는 오라클 등이 빅데이터 처리에 특화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일체형 제품도 내놓고 있어 적어도 분석 성능에 관한 한 한계가 없다.

 

빅데이터를 재난관리에 적용하는 마지막 관문은 소프트웨어다. 대용량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한계가 깨져다고 해도 분석 결과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소프트웨어다. 얼마나 정교한 분석 모델을 만들 수 있느냐에 더 정확한 재난 예측과 대응을 가능하다. 현재 이 분야는 SAS와 같은 글로벌 분석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다.

 

'양치기 소년’ 우화 경계해야

 

아직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의미 있는 국내 연구성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최선화, 배병걸 연구원이 공동 발표한 '소셜 빅데이터부터의 재난이슈 탐지 모델’ 보고서를 보면 재난을 미리 감지하고 발생 이후 대응하는 것과 관련해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는 연구결과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억수로 쏟아지는 비에 강남역이 또 잠길까 두려워’와 같은 트윗들을 분석해 실제 침수피해 가능성을 분석하는 것이다. 역시 트윗 등 SNS 글을 통해 실제 재난 발생을 가장 먼저 포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그러나 빅데이터를 이용한 예측의 정확성은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 통계적 예측 기술이 성숙 단계에 올라왔다고 해도 대규모 재난재해 사고는 발생 빈도가 매우 낮아 관련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슈퍼컴퓨터와 고가의 분석 소프트웨어를 동원한 기상청의 자연재해 예보가 종종 틀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칫 정확도가 낮은 예측 시스템이 오보를 남발하면 예보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실제 재난재해가 발생할 때 ‘양치기 소년’ 우화처럼 속수무책이 될 수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기술에 대한 과대평가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적어도 관련 기술과 인력, 경험이 충분히 갖춰지기 전까지는 빅데이터와 같은 기술도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성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미래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세월호 침몰의 경우 첨단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규정만 제대로 지켰어도 충분히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며 "과학기술로 안전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기술지상주의적인 발상은 순진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nanugi@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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