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저렇게 벗고 싸울 수 있어?” 비키니 아머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비키니 아머'는 판타지 게임에서 자주 목격되는 여성용 갑옷(아머)이다. 비키니 수영복 처럼 브레지어와 팬티가 기본 장비이며, 옵션으로 팔다리에 방어력을 높이는 장갑과 부츠 등을 착용하고 있다.

서양에서 ‘메탈 비키니'로 불리는 비키니 아머는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는 방어구다. 신체 최대 약점부위인 복부가 모두 노출된 상태이고 전체적으로 거의 알몸에 가깝기 때문에 도무지 싸우기 위한 의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판타지 계열 게임에서는 비키니 아머의 방어력 수치가 이상하리 만치 높은 경우가 허다한데, 이는 남성 게이머들의 게임 플레이 의욕을 상승 시키기 위한 ‘어른들의 사정'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 게이머들은 여성 캐릭터의 신체 노출도가 높을 수록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봐주면서 대충 싸워 준다는 ‘몬스터 신사론'이라는 이론을 앞세우며 비키니 아머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즉 여성의 아름다움이 각종 무기 공격을 튕겨내는 동시에 상대방의 전투력을 하락 시킨다는 논리다.


비키니 아머 원조는 누구?

비키니 아머의 모태는 판타지의 서브 장르이자 검과 마법의 세계를 그린 ‘히로익 판타지(Heroic fantasy)’에 있으며, 최초로 비키니 아머가 그림으로 묘사된 작품은 1930년대 펄프픽션(Pulp Fiction) 만화 잡지인 ‘와이어드 테일(Weird Tales)’로 기록되어 있다.

▲ 만화 잡지 '와이어드 테일' 표지/ 위키피디아 제공


비키니 아머를 장착한 여전사가 활약하는 원조 작품은 마블코믹스의 ‘레드 소냐(Red Sonya/ Red Sonja)’다. 붉은 머리에 신체 노출도가 높은 비키니 아머를 입은 ‘레드소냐’는 로버트 E 하워드의 단편 만화 ‘독수리의 그림자(The Shadow of the Vulture)’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잠잠하다가 1973년 출간된 마블코믹스의 만화 ‘코난 더 바바리안'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 1975년 출간된 마블코믹스 속 '레드소냐'/ 위키피디아 제공

‘레드소냐'는 미국에서 영화로도 등장했다. 브리짓 닐슨 주연의 영화 ‘레드소냐'는 악당들에게 빼앗긴 물건을 되찾기 위한 모험을 그리고 있으며, 조연으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코난 역으로 출연했다. 참고로, ‘레드소냐' 판권은 미국 출판사 다이나마이트 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간 상태다. 다이나마이트 엔터테인먼트는 ‘레드소냐' 이름을 건 만화책을 내놓고 있다.

▲ 영화 '레드소냐' 포스터/ 위키피디아 제공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20세기 서브컬처가 만들어 낸 창작물

‘비키니 아머'의 모태와 원조는 미국에 있지만, 비키니 아머를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킨 것은 일본이다. 일본의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 게임 제작자 들은 일본 대중문화(서브컬처) 황금기라 불리는 1980년대에 비키니 아머를 입은 섹시한 여전사들을 대량 양산하는 업적을 달성했다.

일본의 비키니 아머 선두 주자는 ‘아톰’을 탄생시킨 만화거장 테츠카 오사무다. 그는 1982년작 ‘프라임 로즈’로 비키니 아머(프로텍터)를 입은 여주인공 ‘프라임 로즈(에미야 타치)’를 세상에 공개했다.

▲ 일본의 만화 거장 테츠카 오사무가 그린 만화 '프라임 로즈'/ 아마존재팬 제공


1984년에는 성인 애니메이션 ‘크림레몬 SF-초차원전설 라루'가 이후 비키니 아머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계기를 만든다. 애니메이션 작중에는 평범한 소녀 캐론이 전설의 검사(剣士)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비키니 아머를 착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참고로, ‘크림레몬 SF・초차원전설 라루’은 촉수로 여성을 괴롭히는 촉수 묘사의 원조격 작품이기도 하다.

▲ ‘크림레몬 SF・초차원전설 라루’


1985년에 등장한 애니메이션 ‘드림헌터 레무(ドリームハンター麗夢)’의 주인공 아야노코우지 레무(綾小路 麗夢)도 비키니 아머를 입고 악마와 싸우는 용맹을 떨친다. 레무는 악몽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몽마(夢魔)를 퇴치하는 초능력 소녀다.

▲ 드림헌터 레무


이렇듯, 1980년대 일본이 탄생 시킨 ‘섹시 여전사’들은 미국으로부터 비키니 아머 종주국 타이틀을 빼앗아 온다. ‘원조'로 여겨진 미국 대중문화에 역으로 영향을 끼친 셈이다. 일본 서브컬처 문화가 재정의 한 비키니 아머는 이후 서양에서 탄생되는 각종 판타지 게임에 비키니 아머를 장착한 여전사들을 등장 시키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대표적인 비키니 아머 여전사들

1. 몽환전기 레다 (애니메이션/ 1985년작)
‘몽환전기 레다'는 17세 평범한 소녀 ‘아사기리 요코'가 돌연 판타지풍의 다른 세상인 아샨티를 모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요코는 여신 ‘레다'의 힘을 물려 받은 ‘레다의 전사'로서 아샨티의 총수인 제르에 맞서 싸운다. 물론 비키니 아머를 입고서 말이다.

애니메이션 ‘몽환전기 레다'는 일본의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이노마타 무쯔미'가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작품으로도 유명하며, 아직도 그 이름이 애니메이션 팬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영향력을 줬다.

▲ 환몽전기 레다 일러스트

▲ 환몽전기 레다 '아사기리 요코' 피규어/ 아마존재팬 제공

2. 몽환전사 바리스(게임/ 1986년작)
비키니 아머 여전사가 등장하는 게임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몽환전사 바리스'다. 1986년 PC-8801과 MSX 컴퓨터용으로 처음 등장했던 이 액션 게임은 인간계, 몽환계, 암흑계 3개의 세상의 평화를 위해 전설의 ‘바리스 전사'가 되어 마왕 로그레스를 물리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몽환전사 바리스'의 주인공 아소 유코(麻生優子) 1980년대 게임 출시 당시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1989년에는 일본에서 ‘미스 유코' 선발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 '몽환전사 바리스' MSX버전 패키지

▲ 게임기 메가드라이브용 '바리스3' 패키지 이미지


3. 극흑의 날개 바르키사스(애니메이션/ 1989년작)
애니메이션 ‘극흑의 날개 바르키사스'는 만화가이기도 한 우르시하라 사토시가 원작과 캐릭터 디자이너를 맡고 애니메이션 ‘메가존23’의 원화를 담당했던 요시모토 킨지가 감독을 담당해 캐릭터 비주얼이 뛰어났던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작중에는 여주인공 ‘레무네아'가 비키니 아머를 입고 전투를 벌인다.

레무네아가 입었던 비키니 아머는 이후, 우르시하라 사토시가 캐릭터를 디자인 했던 전략 게임 ‘랑그릿사'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비키니 아머를 발견할 수 있다.

▲ 레무네아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