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PC 제조사 “이제 믿을 건 게이밍 PC”

입력 2016.08.20 12:22

'게이밍 PC=조립 PC'라는 공식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다. 대기업이나 전문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PC는 기본적인 용도에만 충실하게 설계되어 있어 일반 소비자나 오피스, 학교, 공공기관 등에서 사용하기에는 적합했지만, 강력한 하드웨어 성능을 요구하는 게임 용도로는 눈길을 잡을 수 없었다.

반면, 조립 PC는 브랜드 PC보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장점 외에도 고성능 CPU나 그래픽카드, 대용량 메모리 등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구성할 수 있어 고성능 게임용 PC를 구성하기가 훨씬 유리했다. 그로 인해 게임용 PC를 구입하겠다는 말은 조립 PC를 장만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통했다.

최근 공개된 레노버의 ‘아이디어센터 Y710 큐브’(왼쪽)와 HP의 ‘오멘(OMEN) X 데스크톱’은 전통적인 PC 기업들도 게이밍 PC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음을 잘 보여준다. / 레노버, HP 제공
최근 완성품 브랜드 PC가 게이밍용으로는 부족하다는 편견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레이저(Razer)'나 '에일리언웨어(Alienware)' 같은 하이엔드 게이밍 PC 브랜드를 시작으로 에이수스(ASUS)와 MSI 등 대만계 PC 제조사들이 조립 PC에 못지않은 강력한 사양과 성능을 갖춘 게이밍 PC를 내놓으면서 게이밍 PC는 무조건 조립 PC로만 만들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최근에는 업무용 PC 제조사로 친숙한 HP와 레노버도 자체 브랜드의 고성능 게이밍 PC를 잇따라 선보이면서 게이밍 PC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처럼 세계 유수의 PC 제조사와 브랜드들이 게이밍 PC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데는 현재 PC 시장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의 일반 PC 시장의 판매량과 매출은 갈수록 떨어지는 반면, 고가에 고부가가치 상품인 게이밍 PC의 판매량은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이 보편화하면서 기존 일반적인 기능의 PC의 역할은 많이 축소됐다. 인터넷 검색이나 메일 및 메시지 송수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활동 등 기존에 PC로 하던 일상 작업 중 상당수는 이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할 수 있게 됐다. PC로만 가능했던 온라인 쇼핑이나 금융거래 등도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그로 인해 용도가 겹치는 일반적인 용도의 PC 판매량은 수년째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관련 업계의 침체도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PC 관련 업체인 인텔조차 최근 이 부분의 인력을 감원하는가 하면, PC용 CPU 중심에서 벗어나 IoT(사물인터넷)와 기업용 데이터센터, 5G, 파운드리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세우고 있을 정도다.

본격적인 브랜드 ‘게이밍 PC’는 전통적인 게이밍 PC 전문 브랜드나 대만계 PC 제조사들의 완제품으로부터 시작됐다. / 에일리언웨어, MSI, 에이수스 제공
PC 관련 시장 중 유일하게 눈에 띄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게이밍 PC' 부문이다. 전 세계적인 경기 불안과 침체에도 불구하고 '게임' 자체는 새로운 스포츠이자 레저 문화로 주목받으면서 게임 시장만큼은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다.

무엇보다 캐주얼한 게임 플랫폼이 따라오기 힘든 '온라인 게임'을 내세운 PC 게임 시장은 매출과 규모 면에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면서 전체 게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규모의 게임 대회 및 리그는 대부분이 PC 기반 온라인 게임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를 시작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 '카운터 스트라이크' 등은 모두 PC 기반 온라인 게임이다.

파급력도 크다. 최근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개인 또는 전문 매체의 '인터넷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 시장도 온라인 PC 게임 및 관련 콘텐츠가 대세를 형성하고 있을 정도다. 물론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대중화로 인해 모바일 게임 시장도 급성장했지만, 대부분 간단히 즐기는 캐주얼 게임 위주인 데다, 워낙 빠르게 트랜드가 바뀌다 보니 전체 게임 시장을 주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이다.

게임이 TV나 인터넷 방송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화'의 일종이 되면서 게임 인구도 갈수록 늘고 있으며, 게이밍 PC와 주변기기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증가하는 추세다.

시장 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2016년 2분기 국내 PC 출하량은 100만대 수준으로 2015년 동기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으며, 여기에는 고사양 게이밍 PC에 대한 수요와 판매량이 크게 증가한 것이 한몫한 것으로 나타났다.

IDC 등 시장조사기관은 국내 게이밍 PC 출고량이 늘어난 이유로 ‘오버워치’처럼 최신 고성능 하드웨어를 활용하는 게임들이 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 오버워치 게임 캡처
특히 '오버워치'를 비롯한 최신 게임들이 멀티코어 프로세서와 다중 그래픽 등 고사양 시스템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고가·고성능의 게이밍 PC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는 것이 IDC 측의 분석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가장 큰 수요처인 PC방을 제외하고도 일반 컨슈머 시장에서의 2016년 2분기 게이밍 PC 출하량은 13만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분기 전체 PC 출하량의 약 13%에 달하는 양이다.

권상준 한국IDC 수석연구원은 "2016년은 게이밍 PC가 다시 한 번 도약하는 시기로 기록될 것"이라며 "가격과 성능 등 사용자 요구에 부합하는 실속형 게이밍 PC가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했다.

인텔이 개발자 포럼에서 선보인 PC 기반 VR/AR 헤드셋 ‘프로젝트 얼로이’ / 인텔 제공
그뿐만이 아니다. 2016년 들어 게이밍 PC 시장은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이라는 새로운 우군을 얻어 더욱 뻗어갈 성장 동력원을 얻었다. 단순히 360도 영상을 보여주거나 간단한 가상 오브젝트를 몇 개 보여주는 데 그치고 있는 모바일 VR·AR 솔루션과 달리, 실제로 반응하는 풀 3D 그래픽에 기반한 고품질 VR 및 AR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중상급 게이밍 PC 수준의 강력한 시스템을 요구한다.

VR 및 AR 시장 규모가 급성장하면 그에 비례해 '게이밍 PC'로 대표되는 고성능 PC의 수요가 급증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특히 VR과 AR 기술을 활용하기에 가장 적당한 콘텐츠가 바로 '게임'인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플랫폼은 다르지만, AR 기술을 활용한 '포켓몬 고'가 전 세계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것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쯤 되면 향후 PC 시장의 흐름은 '게이밍 PC'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글로벌 PC 제조사인 HP와 델(에일리언웨어), 레노버 등의 기업들이 노골적으로 게이밍 PC시장에 눈을 돌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