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초기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으로 창조경제 전도사를 자처한 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원장이 최근 '창조경제'과 거리를 두고 나섰다. 윤 원장은 최근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창조경제 대신 '제4차 산업혁명'을 전파하느라 여념이 없다.

미래창조과학부 제공.
미래창조과학부 제공.
윤 원장은 창조경제를 제시하면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후인 2013년 3월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대상 강연을 통해 창조경제를 설명했고, 그보다 전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해 창조경제의 큰 그림을 그렸다. 2013년 3월부터 2년 간 박근혜 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을 역임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핵심 기조인 창조경제를 추진하는 주무부처다. 윤 원장은 이중국적 논란 등으로 낙마한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를 추천한 것도 윤 원장이다.

하지만 창조경제는 최근 최순실씨를 중심으로 벌어진 국정 농단의 수단으로 악용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윤 원장이 제4차 산업혁명을 전면에 내세우며 사실상 창조경제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관련 전문가들도 '창조경제'와 4차 산업혁명은 사실 '인간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혁신을 이룬다'는 개념에서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윤 원장은 미래부 제2차관 재직 당시 한 강연에서 "창조경제는 창의적 아이디어로 창업이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전략이다"며 "과거 40년간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 것은 부지런히 손발을 움직이는 것이지만,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창조경제의 핵심 수단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NIPA로 적을 옮긴 후 갑자기 제4차 산업혁명 전도사로 변신했다.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6' 전시회 현장에서 만난 윤 원장은 "앞으로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릴 것이다"며 "MWC에서 이런 내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 원장 스스로 불과 3년도 안된 상황에서 창조경제라는 용어 대신 제4차 산업혁명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높은 클라우스 슈밥 다보스포럼 회장을 비롯해 페이팔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 등 주요 인사들이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 집중하는 분위기를 반영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원장은 창조경제 전도사에서 제4차산업혁명 전도사로 변신했다. / 유진상 기자
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원장은 창조경제 전도사에서 제4차산업혁명 전도사로 변신했다. / 유진상 기자
윤 원장은 제4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기존 제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주입하기 위해서는 비타민 처방이라 할 수 있는 ICT가 필요하다"며 "대한민국은 소프트웨어 파워 중심으로 기존 경제 패러다임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권 초기에 그가 주창했던 창조경제와 별 다를 게 없는 내용인데, '제4차 산업혁명'이란 말로 표현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사회적으로 흡입력이 강한 윤 원장이 '상상력을 통한 혁신'을 표현하는 용어를 다르게 사용하는 것을 두고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 정부의 핵심 부처인 미래부 차관까지 했던 인물이지만 다음 행보를 위해 최순실 사태로 국정농단에 악용된 창조경제를 스스로 버린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창조경제 대신 제4차 산업혁명 전도사가 된 윤종록 원장은 11일 공영방송 KBS의 '명견만리'에 강연자로 나와 제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의 역할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에스토니아가 왜 21세기 성장 모델로 소프트웨어 의무 교육을 선택했고 이것이 어떻게 성과로 이어지는지 소개했다. 그의 말 속에는 최순실 게이트 논란의 중심에 있는 '창조경제'는 쏙 빠졌다.

정부 한 관계자는 "미래부는 정부의 창조경제 기조를 추진하는 주무부처다"며 "용어 자체를 혼용해 쓰는 것은 기조 자체의 추진 동력을 분산시킬 수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