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슈퍼 호황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반도체 업계의 3D 낸드플래시 기술 경쟁이 치열한 양상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비롯해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가상현실(VR) 등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에 요구되는 고속·고용량 저장장치 수요가 늘면서 회로를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3D 낸드가 고부가 제품으로 급부상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선보인 4세대 64단 V낸드 기반의 울트라 슬림 PC용 1TB SSD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지난해 선보인 4세대 64단 V낸드 기반의 울트라 슬림 PC용 1TB SSD / 삼성전자 제공
3D 낸드플래시 시장은 그동안 삼성전자가 사실상 독주 체제를 유지했다. 삼성전자는 2013년 8월 세계 최초로 1세대(24단) V낸드 양산을 시작한 이후 매년 적층 수를 늘려왔고, 올해 상반기에는 4세대(64단) V낸드를 본격적으로 양산할 예정이다. 64단 3D 낸드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기가바이트(GB)의 1000배인 테라바이트(TB) 시대가 열리게 된다.

삼성전자의 64단 V낸드는 기존 3세대(48단)보다 적층수를 30%쯤 높여 512기가비트(Gb) 용량을 담을 수 있다. 칩 하나로 대부분의 스마트폰 저장 용량인 64기가바이트(GB)를 구현할 수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선 3D 낸드 기술을 바탕으로 이 시장 점유율 38%를 차지하며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삼성전자의 독주는 수년간 낸드 분야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경쟁사들이 추격하지 못하도록 기술 간격을 벌리는 초격차 전략이 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최근 후발 주자들의 3D 낸드 기술 추격 속도가 빨라지면서 삼성전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됐다.

글로벌 낸드 시장 3위인 웨스턴디지털은 최근 기술 및 제조 파트너인 업계 2위 도시바와 공동 개발한 64단 3D 낸드의 시험 생산에 들어갔다. 웨스턴디지털의 64단 3D 낸드 시험 생산은 도시바의 일본 요카이치 공장에서 진행되며, 본격적인 양산은 올해 하반기쯤 이뤄질 것으로 회사측은 내다보고 있다. 이 제품은 삼성전자의 64단 V낸드와 동일하게 칩 하나로 512Gb를 구현했다.

도시바는 미국 원전 사업 실패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여전히 삼성전자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다. 도시바는 올해 상반기 64단 3D 낸드 양산을 예고하는 등 삼성전자에 가장 근접한 기술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부문 매각이 관련 업계의 최대 이슈로 부상한 것도 인수 결과에 따라 향후 낸드 시장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장 4위인 SK하이닉스는 현재 48단에 머물러 있는 3D 낸드 기술을 대폭 끌어올려 64단을 건너뛰고 바로 72단으로 직행한다는 전략을 내걸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72단 3D 낸드 개발을 완료하고, 하반기부터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의 계획대로라면 내년부터는 72단 3D 낸드 양산이 가능할 전망이나, 도시바 변수에 따라 양산 시기가 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한 전체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인텔은 '3D 크로스포인트'라는 독자적인 기술로 3D 낸드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인텔은 이 기술을 탑재한 첫 상용 제품을 조만간 선보일 예정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크로스포인트 기술은 기존 낸드와 전혀 다른 구조를 띠고 있어 단기간에 낸드 시장에 위협 요인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를 추격하는 업체들도 회로를 쌓아올리는 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선 것으로 보이지만, 얼마나 빨리 수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지난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깜짝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경쟁사들이 48단 3D 낸드 수율 향상이 지연되면서 삼성전자에 수요가 쏠렸기 때문인 점을 감안하면, 64단 3D 낸드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의 영향력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