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바 반도체 인수 엇갈리는 韓·中·美 셈법...日 정부 개입 가능성에 혼전양상

입력 2017.03.18 01:52 | 수정 2017.03.18 02:00

메모리 반도체 업계 '태풍의 핵'으로 떠오른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부 인수전이 혼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인수전은 애초 전형적인 '쩐의 전쟁'이 될 것처럼 보였으나, 일본 정부의 개입 가능성에 도시바의 상장폐지까지 내부 변수가 커지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일본 도시바가 생산한 메모리 반도체에 새겨진 도시바 로고의 모습. / 도시바 제공
◆ 중화권 밀어내고 미국에 러브콜?…日 정부 적극 개입하나

입찰 기업들이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최근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매각이 자국 기술 유출과 안보 위협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입찰에 개입하겠다고 밝혀 판이 요동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꺼내들 수 있는 유력한 카드는 '외환 및 대외 무역법(Foreign Exchange and Foreign Trade Act)'이다. 이 법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핵심 기술을 가진 기업을 인수하려는 외국 기업은 사전에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도체는 항공, 미사일 등 최첨단 무기에 사용되는 필수 부품이다. 산업적으로도 4차 산업혁명의 중심축인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공학 등에서 기본이 되는 부품이다. 일본 정부가 매각에 개입할 이유는 충분한 셈이다.

실제 일본 정부는 2011년 의료장비 및 카메라 제조 기업인 올림푸스가 경영난으로 지분을 매각할 때도 올림푸스의 광학 기술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매각 과정에 개입했다.

실제 일본 민관 펀드인 산업혁신기구는 분사 예정인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에 출자해 의결권의 34%를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서는 7조원대의 자금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가 비슷한 이유로 도시바 반도체 사업 인수 대상자로 미국 기업을 선호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일본 정부는 도시바 경영난의 중심에 있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파산 신청 압박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웨스팅하우스의 원전 사업에 채무보증을 선 미국 정부와의 조정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조정 과정을 원만하게 처리하기 위해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부 매각 조건을 미국에 더 유리하게 제시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도시바와 미국 기업과의 관계도 끈끈한다.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핵심 생산 거점인 요카이치 공장의 주요 라인을 공동으로 운영한다. 지난해에는 도시바의 최대 협력사 중 하나인 샌디스크를 인수했다. 마이크론은 2013년 일본의 D램 제조사인 엘피다를 인수한 경험이 있다.

도시바는 미국 반도체 기업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했다. 사진은 도시바의 일본 요카이치 낸드플래시 공장 전경. / 도시바 제공
이는 입찰에 뛰어든 SK하이닉스에 그리 반가운 소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망스러운 상황도 아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인수에 나선 배경에는 최근 이 시장에서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화권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개입설은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를 중화권 기업에는 결코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된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일본과 중화권 사이에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펼칠 수 있게 된 셈이다.

다만, 도시바가 올해 들어 결산실적 보고를 두 차례나 연기하면서 증시 퇴출과 그룹 해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점은 또 다른 변수다. 일각에서는 도시바의 상장 폐지설까지 거론된다.

도시바는 2015년 대규모 회계조작 문제가 발각되면서 도쿄증권거래소로부터 특설주의시장종목으로 분류된 데 이어 최근에는 상장폐지 우려에 감리종목으로 지정됐다.

도시바는 분사 예정인 반도체 사업부에서 새로 발행하는 주식까지 담보로 내놨지만, 일본 은행권은 신중한 반응이다.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 지분 인수를 위한 입찰 조건이 일부 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 원전 때문에...낸드플래시 세계 2위 알짜 사업부 매물로 내놓아

도시바는 지난해 말 원전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의 파산으로 자금 압박이 심해지자 알짜 사업으로 평가받는 반도체 사업부를 매각하는 고육책을 택했다. 도시바는 메모리 반도체의 하나인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글로벌 2위다. 낸드플래시는 기존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를 대체하는 차세대 저장장치로 각광받고 있다.

도시바는 반도체 사업부 매각 논의 초기 사업의 중요성을 고려해 지분 19.9%만을 팔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지분 일부 매각만으로는 필요한 자본을 확보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50% 이상, 최대 100%까지 매각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앞서 19.9%의 지분이 시장에서 3조~4조원대로 평가받았음을 감안하면, 50%의 지분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최소 10조원을 훌쩍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도시바 인수전에는 SK하이닉스와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 등 낸드플래시 3~5위 기업을 포함해 애플 제품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홍하이그룹(폭스콘)과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기업 TSMC,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의 칭화유니그룹 등이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