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복합의 신 무기체계가 좋은가, 기존의 것을 최신화한 개량형이 좋은가?
정부가 잘못한 기획, 독박은 업체가 쓴다
첨단과 외양에만 집착하는 의사결정이 더 큰 문제

무기체계에 있어서 20세기는 SF의 시대였다. 1∙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겪으면서 첨단무기를 갈망하던 세계 각국은 다양한 무기체계들을 등장시켰다. 특히 미국의 주도로 무한 기술경쟁을 하던 냉전시절이 극심했다. 성공하는 체계도 있고 실패하는 체계도 있다. 예를 들어서 총알로 총알을 잡는 확률의 미사일 방어는 나름의 성공을 거뒀지만, 레이저 무기는 아직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무기지만 정답을 찾지 못하는 것도 있다. 바로 미래형 소총이다.

◆ 미국의 차기소총사업

미육군 차기소총으로 경쟁했던 슈타이어 ACR 소총.
미육군 차기소총으로 경쟁했던 슈타이어 ACR 소총.
미국은 1960년대 M16 소총을 채용한 이래에 혁명적인 소총에 대한 열망을 키워왔다. 우선 1980년대는 ACR(첨단전투소총) 사업을 통해 정말 혁신적인 시도를 해봤다. 이때 무탄피 탄환을 채용한 G11 소총도 등장했고, 탄두내장형(telescoped) 탄환을 채용한 슈타이어 ACR도 등장했다. 소총의 르네상스 시기가 열리나 했다. 하지만 1986년 시작한 ACR 사업은 겨우 3단계 정도 사업을 진행하다가 1990년 종결해버렸다. 애초에 ACR 사업을 했던 건 명중률 때문이다.

당시 M16 소총을 사용하는 병사는 실전의 스트레스 속에서도 45m 정도의 표적은 정확히 제압했지만 220m의 표적에 대해서는 대략 10발 쏘면 1발 맞는 수준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런 명중률을 2배 높이는 총을 만들겠다는게 ACR 사업의 목표였지만 3단계 사업까지 와서도 유수 총기업체 4개사들은 목표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미군은 개발사업에만 3억불을 쓰고도 미련없이 사업을 접었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OICW사업이었다. OICW는 Objective Individual Combat Weapon의 준말로 미래 보병이 쓸 막강한 소총을 만드는 계획이었다. 즉 일반 5.56mm 탄을 사용하는 소총과 저속의 공중분열 스마트탄을 발사하는 유탄발사기를 결합한 복합소총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닌가? 맞다, 우리 군의 K11 복합소총이 바로 미국의 OICW 사업에서 모티브를 얻어(라고 쓰고 '베껴'라고 읽는다) 만든 총기다.

◆ K11의 원형이 된 XM29

K11 복합소총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XM29 OICW.
K11 복합소총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XM29 OICW.
OICW의 결과 1990년대에 처음 등장한 소총이 바로 XM29이다. 당시 개발완료를 눈앞에 두고 있던 HK사의 G36 소총의 바탕에다가 앨리언트 테크놀로지(ATK)사의 20x28mm 유탄발사기를 얹었다. 특히 20mm 유탄은 목표한 지점에서 공중폭발을 일으키는 엄청난 화력을 가진 총기였다. 그러나 사격통제 장치까지 얹으면 무려 7.8kg의 무게인데다가, 부피도 엄청나서 결국 미군은 XM29 개발을 2004년 취소해 버렸다.

대신 미군이 택한 방법은 좀더 덜 급진적이었다. XM8이라는 5.56mm 플라스틱 소총(말이 플라스틱이지 실제 가동부는 금속 채용)을 기본화기로 했고, 공중폭발유탄발사기는 XM25라는 이름으로 별도로 만들었다. 탄환도 20x28mm 탄으로는 화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25x40mm 탄으로 구경까지 바꿨다. 그러나 XM8은 신뢰성 문제로 결국 채용되진 못했고, XM25는 초도생산분이 아프가니스탄 전장으로 보내졌다.

XM25는 '퍼니셔(응징자)'라는 별명으로 전장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엄폐물 뒤에 숨어있는 적은 제거할 수 있는 스마트탄이라는 점에서 외양상으론 엄청나게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우선 XM25를 임무에 사용하도록 테스트파일럿 역할을 하던 특수부대들은 이 총기를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레인저 대원들은 XM25를 현장에 들고나가길 꺼려했다고 한다. 임무시에는 XM25 발사기에 25mm 유탄 36발을 휴대하는데 그 중량이 무려 16kg에 이른다. XM25를 들면 현장에서 M4 카빈소총 사수가 한 명 없어지는 셈인데, M4 사수를 뺄 만큼 쓸만한 무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막상 미군은 XM29와 같은 복합소총을 채용하지 않고 스마트유탄발사기인 XM 25만 따로 채용했다.
막상 미군은 XM29와 같은 복합소총을 채용하지 않고 스마트유탄발사기인 XM 25만 따로 채용했다.
신뢰성도 문제였다. 2013년에는 작전 중에 유탄 2발이 장전되면서 총이 폭발해 부상자가 발생했다. 가격도 정당화하기 어려웠는데, XM25는 한정당 3500불을 넘었다. 결국 2014년과 2016년 미 국방부 감찰관실에서 무려 2차례나 감사를 실시한 이후 2016년 보고서에서는 사업 종료를 권고했다. 게다가 유탄발사기 제작사인 HK와 탄환 제작사인 ATK가 불화를 일으키면서 양쪽이 소송전을 벌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4월 5일 미 육군은 XM25 사업을 취소시키기에 이르렀다.

◆ K11의 등장

 K11 복합소총은 2008년부터 화려하게 등장했고 심지어는 모연구기관의 자화자찬 속에 ‘명품무기’로 까지 불렸다.
K11 복합소총은 2008년부터 화려하게 등장했고 심지어는 모연구기관의 자화자찬 속에 ‘명품무기’로 까지 불렸다.
이렇게 미국이 실패한 일도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한 나라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미국은 실패했던 OICW를 한국에서만큼은 성공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XM29 OICW의 콘셉트를 대놓고 모방했다. 좋게 말하면 오마쥬고 나쁘게 말하면 카피품이다. 뭐 어차피 무기의 세계란 오히려 민간제품보다 저작권에 민감하지 않다. 언젠가는 공개될 특허출원으로 무기체계의 핵심능력을 공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런 맥락에서 K11이 등장했다. 반자동으로 된 유탄발사기를 수동식 즉 볼트액션방식으로 바꿔 XM29의 단점을 극복했다. 혹은 그렇게 알려지면서 2008년부터 K11의 신화가 시작됐다. 세계 최초의 복합소총으로 어떠한 적도 제압할 수 있다면서, 미국 OICW가 제시했던 장미빛 그림들을 그대로 쏟아내었다. 언론보도도 해외에서도 부러워한다면서 찬사일색이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주축이 되어 2000년부터 8년간 불과 185억원의 개발비로 세계 최초의 복합소총을 만들어냈다는 말이다. 미국 ATK와 독일 HK가 보면 기절할 결과일 것이다.

2008년 7월 전투용적합판정을 획득하고 2010년에는 K11 복합소총은 총 208정, 액수로는 700억원 규모의 공급계약까지 맺었다. 그러나 이미 한참 계약이 추진되고 있는 시점에서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0년 국정감사에서는 2차 생산물량 208정 가운데 80정을 검사한 결과 검사량의 절반에 가까운 38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후 방위사업청이 2차 생산물량 208정과 시험용 1정에 대해 두 차례로 나눠 전수검사를 실시한 결과 처음 160정의 불량률은 6.9%였지만 나머지 49정의 불량률은 다시 30% 이상으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 계속되는 불량

K11은 충분한 실전평가 없이, 심지어는 정말 필요한 것인지 충분한 고민없이 개발 배치된 것이 문제였다.
K11은 충분한 실전평가 없이, 심지어는 정말 필요한 것인지 충분한 고민없이 개발 배치된 것이 문제였다.
불량 문제에 대해서 어떤 조치가 이뤄졌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2011년 10월 드디어 문제가 터졌다. 육군 37사단에서 야전 운용성 확인 시험 중 폭발사고가 일어나면서 사격하던 이모 일병이 얼굴과 팔 등에 열상 및 찰과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K11은 1년이상 양산을 하지 못하다가 2012년 12월이 되어서야 양산이 재개됐다. 1만여발의 실 사격으로 안전성을 확인하고 군의 보완 요구사항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물론 이 제품들은 양산됐다.

그러나 2014년 3월, K11 복합소총은 또 폭발사고를 일으켰다. 국방과학연구소 다락대 사격장에서 실험하던 도중 약실내에서 공중폭발탄이 터지면서 사고가 난 것이다. 1차 폭발과 유사한 상황이었다. 이 사고로 사격자인 하사와 옆에서 대기 중이던 상병, 사격통제하던 대대장 등 3명이 파편으로 부상을 입었다. 전력화는 당장 중지되었으나 다행히 결함이 사통장비임을 가까스로 알아내고 7월쯤 다시 생산이 시작됐다.

그러나 2014년 10월에는 공중폭발탄의 격발센서 EMI 불량으로 자석의 자성을 격발신호로 인식한다는 국정감사 지적이 있었다. 국정감사로 시끄럽자 국방과학연구소는 11월 언론과 국방부 관계자 등을 모아서 주요무기 공개품질시연회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방산비리' 문제로 시끄럽던 방위산업계의 불명예를 씻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연회 직후 품질검사 도중에 사통장치의 균열현상을 발견했고, 결국은 이 부분에서는 사통장치 개발업체의 부정이 밝혀졌다. 업체관계자들이 검사합격판정을 받기 위해 검사방법을 속인 것이다.

K11 복합소총은 잇단 결함으로 체계 통합개발자인 S&T모티브가 모든 비난과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애초에 결함이 되었던 부분은 EMI 불합격 유탄과 엉성하게 만들어진 사격통제장치 때문이었다. 즉 잘못은 유탄제작사와 사통장치제작사가 하고, 모든 비난은 체계통합업체로 쏠린 것이다. 심지어는 해당업체는 야시경 등을 카피생산 해왔지 사통장치 개발에 특화된 업체도 아니었다. 업체선정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도 살펴봐야만 했었다.

◆ 문제는 무엇인가?

육군은 무려 4500억원 가까운 예산으로 K11복합소총을 1만5000정이나 만들 계획이었다.
육군은 무려 4500억원 가까운 예산으로 K11복합소총을 1만5000정이나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더 주목할 것이 있다. 바로 국책연구기관의 문제다. 애초에 능력없는 업체가 사통장비를 개발하는데도 이를 관리감독하지 못했고, 국내개발사업이다보니 실제 능력있는 외국제품을 사와서 대체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구조를 짜놨다. 결과 해외수출을 하려고 해도 사통장치가 저 모양이라 글렀다. 개발과 사업관리의 실패다. 세계 최초로 복합소총을 개발했다고 온갖 언론에 광고할 때와는 다르게, 막상 책임지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K2 전차의 파워팩 개발실패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무려 4485억원을 들여서 1만5000정을 만들겠다는 육군이다. K11의 정당 가격은 1600여만원에 이른다. 물론 이중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통장치 가격이 1300만원이나 된다. 이렇게 K11을 1만5000정 만들어서 육군의 분대에 분대지원화기로 배분하면 분대의 화력이 현저히 높아질까? 매우 의문스럽다.

오히려 분대 하나당 3200만원(유탄발사기 2개이므로)을 들이면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 우선 PVS-04K 야시경 6개나 야시경과 적외선표적지시기와 결합하면 4세트를 살 수 있다. 적군을 압도할 수 있는 야간전투능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10명의 분대원에게 전원 신형헬멧과 방탄조끼를 사주고 가늠자-가늠쇠 조준정렬 없이 즉각 사격이 가능한 도트사이트를 사줄 수 있는 돈이다.

◆ 제대로 기획된 무기체계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실전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장비를 사는 대신, SF영화처럼 멋진 총기를 사는데 돈을 낭비해버린 셈이다. 그나마 개발이라도 잘했으면 업체들이 해외수출이라도 해서 돈이라도 벌어갔을텐데, 국책연구기관의 판단미스가 겹쳐 오히려 제작사는 상당한 피해를 끌어 안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도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일까? 소요기획의 무능이 불러온 참사이다. 우리가 방산비리라고 부르는 일은 실제로는 오퍼상들 비리가 많지만, 이렇게 개발실패에 가까운 일들이 생기는 건 대게 이런 문제로 인해서 생긴다. 새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길 기대해본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서울대 법대와 국방대학교 국방관리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방부·방사청·합참 정책자문위원을 겸하고 있는 군사컨설팅기업 AWIC(주)의 대표이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