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한국지식재산총연합회라는 단체가 '급조'됐다. 연합회는 창립기념식에서 국회를 상대로 정책 건의서도 전달했다. 한 달 뒤에는 일단의 특허전문가 그룹이 결성돼, 당시 유력 대선주자였던 문재인 후보 지지를 느닷없이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가 더불어민주당 등 국회와 문 후보에게 요구했던 것은 크게 두가지다. 행정부 내 지식재산부(처) 신설과 청와대 내 지재비서관 직제 설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요구안 모두 거부됐다. 최근 공식 발표된 문재인정부의 '청와대 직제 개편안'과 행정자치부의 '정부조직 개편방안' 어디에도 지식재산 전담 비서관이나 부처의 신설 얘기는 없다. 한 달 넘게 공석 상태인 특허청장 인선 역시 타부처에 밀리고 있다.

새 정부나 집권여당 입장에서 보면, 지식재산(IP) 분야는 후순위다. 대선 기간 중 딱히 진 빚도 없다. 4차산업혁명과 동의어 정도로 생각해 잠시 눈여겨 봤을 뿐, 막상 선거 끝나고 보니 표와 직결된 것 같지도 않다. 여기까지가 특허나 IP를 바라보는 우리 위정자들의 시선이다. 신구 정부, 여야 막론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IP가 일반 국민과 괴리돼 있기 때문이다. 특허가 변리사 등 특정 종사자들만의 전유물로 치부돼왔기 때문이다. IP는 '그들만의 리그'라, 아니 오히려 그런 카르텔 때문에 지금껏 잘먹고 잘 살았다. 이젠 아니다. 기술은 갈수록 일반화되고, 특허와 IP는 4차산업 시대의 기본 질서가 됐다. 매일 쓰는 스마트폰 한 대에만 수백개 특허가 들어 있다. 주말 드라마 한 편에도 음악과 캐릭터 등 각종 저작권이 숨어 있다. 우린 이미 부지불식 중에 IP를 소비하고 생성하는 시대에 산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어렵고 과도하게 경건한 특허는, 일반인의 접근을 원천 차단한다. 일제 때부터 써오던 특허 의장이란 용어가 '특허 디자인'으로 공식 변경되는데 100년 이상 걸렸다. 현재, 특허 출원을 '특허 신청중'이란 쉬운 말로 바꾸자는 논의가 있지만 기약 없다.

특허청 등 IP유관기관들이 '특허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발명왕 에디슨' 위인전 수준이다. 미 특허청(USPTO)은 누구나 즐겨 먹는 '시리얼'을 활용, 캐릭터 저작권과 상표권, 제과공정 특허 등을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쉽고 재밌게 일반 국민들에게 전달한다.

'원더랜드'의 저자 스티븐 존슨은 "유희가 주는 생산성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강력하다"고 했다. 향신료 한번 맛보자고 전쟁까지 일으키는 게 인간이다. 동서양을 잇는 항로 역시, 그저 '후추'를 유럽으로 가져오기 위해 처음 열렸다. 금은보화가 아니었다. 위기의 네이버를 구한 건 최첨단 검색 시스템이 아닌, 고스톱 게임(한게임)이었다. 미 국방부와 일부 연구소에만 존재하던 초기 인터넷(아르파넷)이 통신보안과 기술적 엄숙주의에 매몰돼 있었다면,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지금의 수많은 닷컴은 없다.

재밌어야 산다. 유쾌해야 통한다. 세상에 말을 걸라. 특허가 살 길이다. IP에 힘이 실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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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동 위원은 전자신문 기자와 지식재산 전문 매체 IP노믹스의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는 국내 최대 특허정보서비스 업체인 ㈜윕스에서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IP정보검색사와 IP정보분석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특허청 특허행정 모니터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특허토커'와 'ICT코리아 30년, 감동의 순간', 'ICT시사상식 2015' 등이 있습니다. '특허시장의 마법사들'(가제) 출간도 준비중입니다. 미디어와 집필·강연 활동 등을 통한 대한민국 IP대중화 공헌을 인정받아, 올해 3월에는 세계적인 특허전문 저널인 영국 IAM이 선정한 '세계 IP전략가 300인'(IAM Strategy 300:The World's Leading IP Strategists 2017)에 꼽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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