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동의 특허토커] 이상한 나라의 특허청

  • 유경동 윕스 전문위원
    입력 2017.08.02 18:00 | 수정 2017.08.03 06:00

    방학이라고 집에만 있는 애가 눈에 밟혀 동화책을 하나 읽어줬다. '좋은 아빠' 코스프레도 잠시, 읽던 책 내려놓고 삼천포로 빠진다. 토끼를 쫓아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 앨리스 같은 동화 이야기가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특허청에서 벌어지고 있다.

    앨리스, 아니 특허청이 기관의 자율과 독립을 쫓아 '중앙책임운영기관'이 된 것은 지난 2006년의 일이다. 출원·등록료 등 자체 수입이 있기에 가능했으며, 정부 부처 중에서는 유일하다.

    모든 것이 거꾸로인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건 그때부터다. '필요한 돈, 스스로 벌어 쓴다'는 게 책임운영기관의 기본 취지다. 그런데 우리 특허청은 기쓰고 번 돈, 삥 뜯긴다. 그 액수가 한 해 1000억원을 훌쩍 넘는다. 문제는 이게 해마다 급증세라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매년 정체 상태인 특허청 전체예산 대비 4분의 1쯤이다.

    예산 당국은 특허청이 번 돈 가운데 매년 일부분을 '공공자금관리기금'이란 명목으로 꿔 가(예탁), 지식재산과는 거리가 먼 기타 재정수요에 쓴다. 2016년부터는 이마저 예탁이 아닌 '전출'로 회계 용도를 변경, 이자는 물론이고 아예 갚지 않아도 되도록 해버렸다. 기획재정부가 2017년 특허청으로부터 거둬간 돈은 총 1350억원. 이 가운데 985억원이 전출금이다.

    특허청 예탁·전출금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 / 기획재정부 제공
    관계 법령에는 분명 해당 책임운영기관이 초과 수입금의 일정 부분을 재량 사용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예산 당국과의 협의·보고 체계가 복잡해 사문화된 지 오래다. (책임운영기관의) 수입 발생 시 국고 환수는 당연하다는 게 기획재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특허청 수입은 지식재산권 확보와 그 유지를 위해 해당 권리자가 지급한 돈이다. 적잖은 비용을 부담한 시장과 참여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핀셋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 수익자부담을 주장하고 싶다면, 부담자수익 역시 지켜져야 옳다. 기재부의 이런 갑질은 4차 산업혁명의 자양을 빼먹는 대표적인 '예산 적폐'다.

    미국 특허청(USPTO)도 우리의 책임운영기관과 유사한 '성과 중심기관'(performance-based organization)으로 지정돼 있다. USPTO는 민간기업(IBM) 출신의 데이비드 카포스 청장 재임 시절인 지난 2012년, 자체 예산권을 자율 집행하고 심사관 1146명을 대거 충원했다. 그 결과, 심사관 1인당 처리 건수가 71건으로 크게 줄었다.

    반면, 한국 특허청은 심사관 1명이 맡는 심사 건수가 한 해 230건으로 미국의 3배에 달한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특허 1건을 심사하는 데 들이는 시간은 고작 8.7시간에 불과하다. 이렇듯 초능력자를 요구하는 현실에서, 심사관이 각각의 특허심사에 심혈을 기울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특허의 무효화율이 현재 50%를 넘는다. 심사를 정식 통과해 등록증까지 받아도, 심판 계류시 절반 이상 휴지 조각이 되는 게 대한민국 특허의 민낯이다. 매년 뜯기는 돈 일부만이라도 이런 문제의 개선에 쓰일 수 있다면, 특허품질 제고는 물론이고, 이공계 박사급 유휴인력들에 양질의 일자리를 신규 제공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지난해 산업재산권의 국내 출원이 6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중국 등 주변 경쟁국의 지식재산권은 날이 갈수록 급증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만큼 글로벌 IP 시장에서 대한민국 특허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중국은 4월 1일 상표 출원 관련 각종 관납료를 절반으로 인하했다. 특히, 그 수혜 대상을 자국민뿐 아니라 외국인에게까지 넓혔다. 전 세계 IP를 모두 빨아들이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비싸다는 민원이 들끓는 현행 출원·등록료와 연차료 등 각종 특허수수료의 인하 여력은 우리도 충분하다. 돈 뜯기지만 않으면 말이다.

    "심사관 증원을 통한, 특허품질의 제고"라는 말은 신임 성윤모 특허청장의 취임 일성이다. 그 출발은 잃어버린 예산권의 탈환에 있다. 부당한 명령만 일삼는 하트 여왕에 맞선 주인공 앨리스처럼 말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경동 위원은 전자신문 기자와 지식재산 전문 매체 IP노믹스의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는 국내 최대 특허정보서비스 업체인 ㈜윕스에서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IP정보검색사와 IP정보분석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특허청 특허행정 모니터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특허토커'와 'ICT코리아 30년, 감동의 순간', 'ICT시사상식 2015' 등이 있습니다. '특허시장의 마법사들'(가제) 출간도 준비중입니다. 미디어와 집필·강연 활동 등을 통한 대한민국 IP대중화 공헌을 인정받아, 올해 3월에는 세계적인 특허전문 저널인 영국 IAM이 선정한 '세계 IP전략가 300인'(IAM Strategy 300:The World's Leading IP Strategists 2017)에 꼽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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