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최근 남녀의 임금 차별을 정당화하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려 물의를 빚은 엔지니어를 해고하며 성차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하지만 미국 IT 기업을 대표하는 구글 내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실리콘밸리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며 '성차별' 논쟁에 불을 지폈다.

구글이 이번 문제를 '직원 해고'라는 방식으로 해결한 것도 논란 거리 중 하나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를 처벌하는 방법이 '해고'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 구글 "남녀 차별 정당" 글 올린 엔지니어 해고

IT 블로그 기즈모도는 6일(이하 현지시각) 구글 내 성차별 문제를 보도했다. 자신을 '선임 엔지니어'라고 칭한 익명의 구글 직원이 작성한 10쪽 분량의 문서가 성차별 문제 발생의 발단이 됐다.

'구글의 이상적인 생태계'라는 제목의 이 문서에는 남녀 간 임금 격차가 생물학적 차이에 의해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것이 구글 내외의 공분을 샀다.

’프라우드투비(#ProudToBe)’ 캠페인을 벌이는 구글 직원 모습. / 구글 홈페이지 갈무리
’프라우드투비(#ProudToBe)’ 캠페인을 벌이는 구글 직원 모습. / 구글 홈페이지 갈무리
해당 글의 작성자로 알려진 제임스 다모어 구글 엔지니어는 "남성은 여성보다 체계적인 사고에 능하므로 프로그래머나 엔지니어로 근무하기에 적절하다"며 "여성은 특정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보다 심미적이고 감성적인 것에 끌리기 때문에 과학기술 분야보다 사회적이고 예술적인 직업에 더 잘 맞는다"고 말했다.

다모어는 또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는 IT 기업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은 이유를 설명해준다"며 "여성은 신경질적이라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일에 종사하기 어렵고, 구글은 생물학적 차이를 무시한 채 여성 편만 드는 좌편향적인 기업이다"고 말했다.

다니엘 브라운 구글 다양성·통합·거버넌스 담당 부사장은 성차별 논란이 거세지자 "구글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선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7일 사내 직원에게 발송한 메일에서 "이 글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내 문화를 만들려는 구글의 가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피차이 CEO의 메일이 발송된 후 하루 뒤인 8일 구글은 다모어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 구글, 성차별 문제로 곤욕…"전・현직 구글 여성 직원은 집당 소송 준비"

미국 노동부는 1월 구글이 직원의 성별에 따라 임금을 차별 지급했다며 조사를 진행했다. 구글이 다모어를 재빠르게 해고한 것이 구글과 노동부 간 소송을 의식한 조치 아니냐고 평가한다.

4월 8일 미 샌프란시스코 법원에서 열린 구글 관련 사전 심리에서 자닛 위퍼 노동부 지역 국장은 "구글의 급여 체계를 조사하던 중 남녀 성별에 따른 보상에 차이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구글에 급여 관련 세부 정보를 요청했다.

구글이 1월 발표한 다양성 보고서 모습. 구글에 근무하는 직원 중 남성은 69%, 여성은 31%다. / 구글 홈페이지 갈무리
구글이 1월 발표한 다양성 보고서 모습. 구글에 근무하는 직원 중 남성은 69%, 여성은 31%다. / 구글 홈페이지 갈무리
구글은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이 없다는 입장이다.

구글은 당시 "매년 성별에 따른 임금 현황을 분석한 결과 종전 임금 격차가 나던 문제를 해소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노동부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하지만 구글이 1월 공개한 '2017 구글 다양성 보고서'를 보면, 구글 직원 중 남성과 여성은 각각 69%, 31%로 성비 차이가 있다. IT 기업에서 중요한 직군인 기술직 분야에서는 여성 비율이 20%에 불과하다. 3년 전에는 기술직 여성 비율이 17% 수준이었다.

구글은 2014년부터 사내 인종·성별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성 보고서'를 발간했고, 6월에는 인텔 출신 다니엘 브라운을 다양성·통합·거버넌스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다 60명 이상의 여성은 미국 노동부가 제기한 소송을 근거로 구글을 고소를 고려 중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9일 "전·현직 구글 여성 직원이 성별에 따른 임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집단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소송을 고려 중인 구글 직원은 "남성과 유사한 교육을 받고 경력이 있는 여성이 월급·보너스·스톡 옵션 등에서 차별 대우를 받았다"며 "승진 역시 남성 직원 위주로 이뤄졌으며, 경력이 쌓일수록 남녀에 따른 격차가 더 심하다"고 주장했다.

◆ NYT "비판했다고 '해고'처리는 문제...트럼프식 발상"

일각에서는 구글이 성차별 사태의 장본인을 '해고'한 것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지만, 구글이 생각이 다른 직원이라는 판단 하에 별도의 불이익을 주는 것은 지나친 조치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 "그동안 실리콘밸리는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데 자유로운 곳이었다"며 "구글이 제임스 다모어를 해고한 것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표명한 사람을 제거함으로써 다양성 자체를 무시한 사건이다"고 평가했다.

특히 NYT는 "IT 업계는 아직 남성·백인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결과 이민·다양성 등에 포용적인 문화로 변모했다"며 "하지만 2016년 치러진 대선 기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가 보여준 성차별적인 언어 사용과 이민 제한 조치, 기후 변화를 부인한 행동 등은 실리콘밸리를 넘어 미국 전역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NYT는 "대선 기간 피터 틸 페이팔 공동창업자 겸 페이스북 이사 등이 당시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를 지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며 "이후 이들이 공식 직함을 내려놓은 것은 다양성이 부족한 대표적인 예다"라고 말했다.

비판적인 견해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결국 반대 여론을 격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구글이 제임스 다모어를 해고하자 우익 뉴스 사이트를 중심으로 그를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줄리언 어산지 위키리크스 설립자는 트위터에서 "검열은 패자를 위한 것이다"며 "다모어를 고용하겠다"고 제안했다.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인지과학 전문가는 "구글이 이번에 취한 조치는 IT 산업계의 트럼프 지지를 강화하는 기폭제로 작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