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역학이 자동차의 새로운 본질로 주목받고 있다. '잘 달리고(run), 잘 돌며(cornering), 잘 서는(stop)'이라는 자동차의 본질에 공기의 흐름을 얼마나 잘 타고 넘느냐에 대한 고민이 더해진 것.

업계에 따르면 자동차를 설명하는 여러 숫자 가운데에서도 요즘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는 공기저항계수(Cd)다. 정확한 표현은 '항력 계수(Drag Coefficient)로, 그동안 고성능차 대부분이 낮은 Cd 값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Cd 수치가 낮으면 성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따라서 신차 출시 때는 으레 이 숫자를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이보다 Cd가 각광 받게 된 이유는 '연료효율' 향상에 큰 기여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연료효율이 자동차 선택의 최우선 순위로 대두되면서, 연료효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방안이 강구돼 왔는데, 대표적으로 내연기관을 비롯한 동력계 개선이다. 그러나 내연기관는 지난 100여 년 간 끊임없이 개선해, 기술적 한계점에 점점 다가오는 상황이다.

공기역학실험 시뮬레이터. /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공기역학실험 시뮬레이터. /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일반적으로 Cd 값 0.01을 줄이면 차 무게 40㎏를 덜어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구형에 비해 0.02Cd를 낮춘 신차가 있다면 물리적인 무게를 줄이지 않아도 100㎏에 육박하는 중량 감소 효과를 볼 수 있다. 자동차가 가벼워지면 연료효율이 좋아진다는 건 과학적 상식으로, 때문에 현재 연료효율 높이기 성패의 50%는 공기역학에 달려있다는 게 학계 주류의 설명이다. Cd 값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메르세데스-벤츠 공기역학부서 테디 볼 박사는 "현재 자동차의 Cd 값은 이론상 0.10까지 낮출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상태는 물고기와 같은 극단적 형태일 때만 가능하다. 공기역학 디자인 분야에서 물고기는 아주 중요한 영감을 주는 대상이지만 트렁크가 필수인 자동차는 물고기의 꼬리처럼 디자인될 수 없다. 그래서 일반 자동차의 Cd 한계치는 0.20으로 보고 있다. 이 한계점은 음속 장벽(Sound Barrier)로 불린다.

실제 공기역학 성능시험. /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실제 공기역학 성능시험. /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공기역학은 자동차의 안락함에도 도움을 준다. 일반적으로 최근의 자동차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많은 방음재가 사용되고, 안전을 위해 견고한 차체 구조와 다수의 에어백을 장착하게 마련인데, 여기에는 중량 증가가 필연적으로 따라 붙는다. 장치를 덜어내 무게를 줄일 수는 없으므로 자동차 제조사들은 공기역학적인 해법을 찾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휠 아치는 공기저항 줄이기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휠 아치는 공기저항 줄이기에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자동차 공기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는 앞쪽 휠 아치다. 주행 중 휠 아치 안으로 공기가 들어오고, 이것에 의해 생성된 거대한 난기류가 바퀴의 측면으로 빠져나가면서 공기저항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또 A필러와 사이드미러의 공기역학도 중요한데, 탑승자가 자동차 안에서 체감하는 소음의 대부분이 여기서 생겨서다.

자동차의 뒷면도 중요한 부위다. 전체 공기 흐름을 마무리 짓는 곳이어서다. 자동차 꽁무니는 지붕을 타고 흐르는 공기와 측면을 훑어 지나오는 공기, 차체 아래를 통하는 공기가 가능한 동일 속도로 만나도록 설계한다. 이 중 하나라도 속도가 맞지 않으면 직선형 난기류가 만들어 지고, 공기저항이 증가하며, 효율은 떨어진다.

자동차 후면에서 모든 공기흐름은 동일한 속도에서 만나야 한다. /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자동차 후면에서 모든 공기흐름은 동일한 속도에서 만나야 한다. /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꽁무니를 싹둑 자른 것 같은 형태의 자동차가 등장한 일이 있었다. 공기 흐름을 매끄럽게 이루기 위해서 고안된 형태다. 하지만 많은 자동차 디자이너는 이 디자인에 대해 얼굴을 찌푸렸는데, 기능적으로는 완벽한 역할 수행을 하지만 미관상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기역학성능을 극단적으로 높이기 위해 도입된 것이어서 공기역학이 더 중요해 진다면 디자이너의 역할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자조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아무리 멋지고, 보기에 훌륭해도 공기역학성능이 떨어지면 양산 과정에서 디자인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테드 불 박사는 "자동차 개발은 디자인 과정의 극초기 단계에서 차의 비율을 정하고, 공기역학자와 디자인팀이 모두 함께 작업한다"며 "공기역학자와 디자이너의 미세한 조율 작업을 통해 보기에도 멋지고, 공기역학성능도 뛰어난 자동차가 완성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