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된다. 세미나·학술대회·기술개발 사업·신상품·서비스·신간 서적 등 거의 모든 자리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따라붙는다. 매스컴에서 자주 보도되니 정치인도 말하기 시작했다. 대단한 유행어가 됐다. 당연히 비판적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인이 말하기 시작하면 식자층에서 반감을 갖는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의 실체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기술 혁신이 가속되고 빠르게 사업화·산업화가 이뤄지면 유행어가 급증하기 마련이다. 특히 기술 혁신의 속도가 빠른 정보기술 산업에서는 수많은 유행어가 명멸했다. 가트너 그룹은 매년 신기술 유행어의 탄생에서 성장을 거쳐 쇠퇴하는 과정은 '하이퍼 사이클' 그래프로 발표되곤 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대개 몇 년의 수명을 거친 후 퇴장한다. 혁신의 속도가 빠른 정보기술 분야의 숙명이다. 4차 산업혁명도 이러한 일시적 유행어일까? 기술 혁신가, 산업계 리더, 사업가, 정치가의 수사(레토릭)일 뿐일까?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창한 클라우드 슈밥 교수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유전공학기술 등 신기술의 융합적 혁신 때문에 물리적·디지털·생물학적 영역의 경계가 무너지고 산업구조, 사회경제체제 등의 변혁 속도, 범위, 시스템 임팩트가 획기적으로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계비용 제로 사회>의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은 허핑턴포스트의 최근 기사에서 디지털 기술에 의해 산업구조, 사회경제체제, 생활방식, 정치체제 등을 변혁해온 3차 산업혁명, 즉 디지털 변혁이 아직 진행 중이라고 주장했다. 리프킨은 슈밥 교수가 제시한 기술 혁신에 의한 변혁에는 동감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정황으로 제시된 여러 사실은 디지털 변혁에 의한 3차 산업혁명의 연장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혹자는 4차 산업혁명은 우리나라와 독일 등 유럽 일부에서만 떠들 뿐이고 미국에서는 무슨 말인지조차 모르며 디지털 변혁이라는 말이 더 널리 사용된다고 주장한다.

영국 인디펜던트지 최근 기사에서는 경제학 모델을 인용해 일인당 혁신 속도는 1873년 정점에 도달한 후 계속 감속하고 있으며, 기술 혁신은 이미 경제적 한계의 85%에 도달해 2038년이 되면 95%에 이르러 한계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라고 제시된 빅데이터, 로봇, 3D 프린팅 등 기술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사용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기술 혁신 속도가 지수적으로 가속돼 큰 변혁을 만들 것이라는 주장도 반박되고 있다. 기술 발전과 사회 변혁의 역사에서 그러한 지수적 가속은 통상적이었다는 게 반박의 요지다. 심지어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애초에 없었다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다. 일각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과거에 수차례 남발됐다고 주장한다. 1948년 원자력이 개발됐을 때, 1955년 트랜지스터라디오 등 전자공학기술이 발전했을 때, 1970년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개발돼 활용되기 시작할 때, 1984년 정보화 시대가 도래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이미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고 한다. 3차 산업혁명이 막 시작됐을 때 이미 4차 산업혁명을 꿈꿨다는 것이다. 선구자나 선동가들 때문인지, 또는 인류가 항상 혁명과 혁신을 갈망하기 때문인지 이유는 알 수 없다.

대부분의 유행어는 오래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기 때문이다. 유행어는 진실을 감추는 미사여구일 뿐이라거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리샴의 법칙처럼 좋은 아이디어를 몰아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유행어는 사람들에게 한배를 타고 있는 듯 착각하게 할 비즈니스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마케팅 목적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유행어가 생겨나 많은 사람에게 회자할 때는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다.

4차 산업혁명론에 반론과 비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기술 혁신과 사회경제 변혁이 또 다른 혁명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명의 문제일 뿐이다. 혁신과 변혁은 분명히 일어나는 중이고 지금까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경위야 어찌 됐든 많은 사람이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을 기울여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기술 혁신에 의한 비즈니스, 산업, 사회경제 혁신과 변혁의 큰 흐름에 동승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이 아닐까?

방관하고 비판만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당연히 4차 산업혁명에 과몰입하는 위험과 함정은 경계해야 할 것이나, 이 역시 객관적이고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참여할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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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억 교수는 KAIST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교수, 교육원장이며 대한산업공학회 회장입니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 신성장동력기획단 위원, KAIST 정보시스템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자동화, 정보기술 응용, 산업지능 분야 전문가이며, 일방전달방식강의에서 탈피하는 수업방식 혁신을 통한 교육혁신, 교육의 기회 균등 실현을 위한 온라인대중공개강좌(MOOC) 확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KAIST,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옛 미래창조과학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