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을 다변화하며 글로벌 고객 잡기에 나섰다. 애플·퀄컴 등 굵직한 고객의 차세대 제품 수주를 대만 TSMC에 뺏기면서 생긴 공백을 중고급형 스마트폰 제조사 등에서 만회하겠다는 계획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가 10나노 2세대 핀펫(FinFET) 공정으로 개발한 ‘엑시노스9’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가 10나노 2세대 핀펫(FinFET) 공정으로 개발한 ‘엑시노스9’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 삼성전자 제공
11일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첨단 공정 로드맵에 11나노(㎚, 10억분의 1m) 신규 공정(11LPP, Low Power Plus)를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11㎚는 이미 검증된 14㎚에서 파생된 공정이다. 삼성전자는 11㎚ 공정 추가로 플래그십 스마트폰용 10㎚ 프로세서 시장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중고급형 스마트폰용 프로세서 시장까지 포섭하겠다는 전략을 내걸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애플·퀄컴 등 스마트폰용 프로세서 시장의 큰 손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하지만 애플이 차기 신제품용 프로세서 위탁생산을 위해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와 손을 잡았고, 뒤이어 퀄컴도 차세대 7㎚ 프로세서 생산을 삼성전자 대신 TSMC에 맡겼다. 미디어텍도 최신 7㎚ 프로세서를 TSMC에 주문했다. TSMC가 10㎚를 거쳐가는 공정으로 보고 7㎚ 공정 개발에 집중한 반면, 삼성전자는 10㎚가 장수 공정이 될 것으로 보고 10㎚에 집중하는 사이 격차가 벌어진 탓이다.

삼성전자는 뒤늦게 8㎚ 공정을 추가하며 10㎚에서 7㎚ 공정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놨다. 이러한 전략은 TSMC가 14㎚ 공정에서 삼성전자에 뒤처지며 16㎚ 공정을 도입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삼성전자가 최초로 14㎚ 공정을 개발해 애플과 퀄컴 수주를 따내자 위기감을 느낀 TSMC는 부랴부랴 16㎚ 공정을 내세웠다. 7㎚ 공정에서는 삼성전자와 TSMC의 입장이 바뀐 셈이다.

7㎚부터는 극자외선노광(EUV) 장비를 도입해 미세공정의 한계를 극복한다. 8㎚는 EUV 장비 도입 전 기존 10㎚ 공정에서 쓰는 노광 장비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경쟁력 있는 미세공정이다. 그만큼 초기 공정 개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삼성전자의 7㎚ 공정 기반 제품 양산은 2018년 하반기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그 전까지 8㎚ 공정으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삼성전자의 11㎚ 공정 추가 또한 14㎚의 연장선상에서 아직은 10㎚가 부담스러운 중화권 등 스마트폰 제조사를 염두에 둔 행보다. 대형 고객을 위한 7㎚ 공정 기반 제품 양산 체계가 마련되기 전까지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해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5월 파운드리 사업부 출범 후 미국에서 개최한 첫 파운드리 포럼에서 2017년 하반기 7㎚ 공정 도입 후 2019년 5~6㎚, 2020년 4㎚에 이르는 공정 로드맵을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2014년부터 7㎚ 공정 개발을 위해 EUV를 적용한 웨이퍼가 20만장에 이를 정도로 충분히 경험을 쌓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파운드리 공정 양산 완성도를 나타내는 척도인 SRAM(256Mb)의 수율도 80%를 확보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관건은 리스크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7㎚ 공정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전까지 8㎚와 11㎚ 공정으로 애플과 퀄컴 리스크를 줄여줄 고객사를 얼마나 많이 확보할 수 있을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