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하얗게 꽃이 피는 이팝나무와 조팝나무는 밥을 연상해 붙인 서글픈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많은 풀꽃 이름에 '나물'이라는 이름 끝을 붙인 것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우리나라 꽃과 풀에 붙은 이름에는 먹는 것에 집착한 흔적이 역력하다. 근래까지 잦은 외침과 무능하고 부패한 위정으로 우리나라 서민의 삶은 '배부르고 등 따신' 것이 행복의 기준이 될 정도로 고단함과 배고픔이 일상이었다. 이런 지경에 꽃을 즐길 여유가 있었겠느냐만은 이제 먹고 살만한데도 우리나라 국민의 꽃 소비 규모는 밝히기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 연유를 따져보기 앞서 우리는 언제부터 꽃에 가치를 매겨 거래했는지 궁금하다.

◆ 꽃의 재배에 대한 기록

이전은 물론이고 조선 후기 실학자가 저술한 농서에 이르기까지 판매를 목적으로 한 꽃의 재배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군자나 민화에 그려진 꽃은 서화의 수준을 자평하거나 기복의 의미를 전하던 수단으로 그려진 것이라 거래를 목적으로 재배됐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꽃 가꾸기에 대한 훨씬 이전의 기록인 '양화소록(養花小錄)'에도 꽃을 사고 팔았다는 내용은 없다. 짐작컨대 조선 후기까지 꽃은 시장이 아니라 관공서나 먹고 살만했던 일부 부유층, 혹은 기방 등의 수요를 맞추기 위한 납품형식으로 거래됐을 것이라 판단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재배식물도감인 '한국식물도감 화훼류 I(리휘재)'조차 1964년에서야 처음 발행됐을 정도니 그 이전의 재배기록을 찾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농작물과 원예작물에 대한 연구는 1906년 일제에 의해 설치된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과 '원예모범장(園藝模範場)'에서 처음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서울 뚝섬에 설치된 원예모범장은 이후 권업모범장 뚝도지장(纛島支場)으로 편입되는데, 이 곳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원예작물에 대한 재배와 환경적응 연구기록은 당시 보고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15년 발행된 뚝도지장의 원예보고(園藝報告)에는 당시 시험재배가 이뤄진 국화, 나리, 아마릴리스 등 45종의 화훼류가 기록돼 있는데, 이는 요즘 기준으로도 적지 않은 수다. 그럼 이곳에서 적응 연구를 마친 꽃들은 어디로 보급된 것일까?

1915년 권업모범장 뚝도지장에서 발간한 ‘원예보고’ 제8호 표지(왼쪽)와 당시 재배연구가 이루어진 화훼류 목록.
1915년 권업모범장 뚝도지장에서 발간한 ‘원예보고’ 제8호 표지(왼쪽)와 당시 재배연구가 이루어진 화훼류 목록.
192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의 시장(朝鮮の市場)'에는 당시 경성에 설치된 공설시장 중 '화원정(花園町) 공설시장'에 대한 기록이 있다. 아쉽게도 상세한 거래 품목에 대한 내용은 찾을 수 없지만, 시장의 이름으로 유추해 볼 때 인근에 화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지도나 여러 기록을 통해 화원정은 현재 서울 성동경찰서가 위치한 곳으로 확인되는데, 이 곳은 뚝섬(뚝도)과 매우 가까운 곳이다. 아마도 뚝도지장에서 시험재배를 마친 꽃은 이 곳으로 우선 보급돼 재배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920년 4월 3일자 매일신보에 '왕십리역 앞 경성화원 안에 조선의 취미원예를 고취하고 조선풍토에 맞는 초화, 채소, 과수, 약초 재배법을 연구해 종묘를 보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조선원예협회(회장 松平直平, 부회장 한창수, 이사 한상룡 등)를 설치했다'는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왕십리역은 당시 경원선 개통 이전까지 뚝도정거장으로 불렸다는 기록으로 볼때 뚝도지장과 매우 인접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조선원예협회'에서 종묘사업을 하던 일본인이 수원에 소재했던 권업모범장 인근에 종묘와 농자재를 거래하는 '부국원(富國院)'을 설립하고 수익사업을 했는데 이 때 꽃과 종자도 거래했을 것으로 보인다.

◆ 그림과 사진 속 꽃 거래와 관련된 증거들

우리나라에서 그려진 그림이나 사진 중 꽃 거래에 대한 장면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1937년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 도록에 나오는 '조선풍속-봄날 꽃장수(春日花賣), 宇野佐太郞'가 아닐까 생각한다. 당시에 그려진 꽃을 확인해보면 무슨 꽃을 재배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 당시 개최된 전람회 도록을 뒤져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그림인데, 아마도 현재까지 확인된 최초의 꽃 거래에 대한 그림 기록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홍도나 신윤복이 그렸으면 좋았을 구도의 그림이 일본인에 의해 그려진 왜색화풍이라는 점은 아쉽다.

1937년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작 우노사타로(宇野佐太郞)의 ‘조선풍속-봄날 꽃장수’. 원작은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1937년 제16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작 우노사타로(宇野佐太郞)의 ‘조선풍속-봄날 꽃장수’. 원작은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 속에 쭈그려 앉은 꽃장수의 표정은 값을 흥정하고자하는 의지가 없고 무기력해 보인다. 살기 팍팍한 당시 꽃장수가 지게에 들러메고 나온 꽃에 가격이 매겨져 있을 리 만무하고, 당일 팔지 않으면 먹여 살려야하는 식솔이 걱정인 그는 고단할 뿐이다. 봄에 그려진 그림 속 지게 바소고리에 실은 꽃을 보니 과연 봄에 피는 국화과 꽃인 데이지(雛菊, 추국)와 알뿌리 꽃 아마릴리스는 물론 재배한 것으로 보이는 절화 종류도 눈에 띤다. 실제 이 그림이 그려지기 이전부터 '권업모범장 뚝도지장'에서 데이지를 시험 재배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뤄 짐작컨데, 우리나라에서 쉽게 기를 수 있는 이 꽃이 당시 재배를 위해 보급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1922년 시작된 조선미술전람회의 도록을 보면 당시 조선에서 그려진 다양한 꽃들이 정물화로 출품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 전람회에 출품된 꽃 그림은 주로 풍경화의 일부이거나 당시 우리나라 정원이나 화단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꽃과 화분에 심겨진 꽃을 그린 것이 많다.

1923년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정물화 ‘목련, 松岡正次’(왼쪽 위)과 ‘사이네리아, 淸島長次’(오른쪽 위), ‘봄볕과 새싹(부분), 大島格’(아래). 사이네리아는 속명 시네라리아(Cineraia)의 일본식 표현으로 보임.
1923년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정물화 ‘목련, 松岡正次’(왼쪽 위)과 ‘사이네리아, 淸島長次’(오른쪽 위), ‘봄볕과 새싹(부분), 大島格’(아래). 사이네리아는 속명 시네라리아(Cineraia)의 일본식 표현으로 보임.
1930년대 개최된 조선미전에 출품한 많은 꽃그림들에는 칼라(Calla)나 아마릴리스, 나리(백합), 튤립처럼 알뿌리 식물의 꽃뿐 아니라 카네이션이나 거베라같이 재배돼 판매했을 법한 꽃이 많이 등장한다. 화원에서 샀음직한 꽃다발이나 장식을 위한 소재도 많이 그려진 것으로 미뤄 상업적으로 꽃을 재배하고 판매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제11회 조선미전 출품작 ‘칼라(Calla),1932, 이인성’(왼쪽)와 제16회 조선미전에 출품된 ‘꽃(花), 1937년, 田村淸治郞’.
제11회 조선미전 출품작 ‘칼라(Calla),1932, 이인성’(왼쪽)와 제16회 조선미전에 출품된 ‘꽃(花), 1937년, 田村淸治郞’.
또한 일제 강점기 사진으로 제작돼 판매된 풍속사진 중에는 기생이나 한복차림 여인이 많이 등장하는데, 꽃바구니를 들고 있거나 화분을 배경으로 삼은 것이 많다. 스스로 길러 장식용으로 사용했을 수도 있으나, 어떤 형태로든 거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일제시대 조선의 풍속사진에 등장하는 기생과 한복차림의 여인들. 꽃바구니를 들고 있거나 분화를 배경으로 배치한 사진들이 많다.
일제시대 조선의 풍속사진에 등장하는 기생과 한복차림의 여인들. 꽃바구니를 들고 있거나 분화를 배경으로 배치한 사진들이 많다.
꽃의 상업적 거래와 관련된 증거들 대부분이 일제 강점기 기록이나 그림에서야 처음 확인된 것과 서민들의 삶과 어우러진 흔적이나 기록은 여전히 적다는 점이 아쉽다. 조선 후기 심사정의 '화접도(花蝶圖)'나 더 이전에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草蟲圖)' 속에 핀 꽃도 못지않게 아름답지만, 당시 서민들의 정서를 공유해 담지 못하고 있음도 안타깝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직후 한국전쟁을 격고, 먹고 사는 문제해결도 버거웠던 시기를 지나 민주화를 이루고 제법 쓰고 살만한 때도 됐는데 꽃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이 되지 못하고 있어 더 안타깝다.

꽃을 지니거나 전하는 것은 희망과 축하와 위로와 치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연일 이어지는 여중생들이 벌인 끔찍한 사건 보도는 온 국민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꽃을 일상에 들이면 많은 것들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듀셴(Duchenne)이 증명한 '꽃을 바라볼 때 생기는 미소와 그로 인한 효과'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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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원 박사는 건국대 식물학 박사로 네덜란드 와게닝겐UR 국제식물연구소 방문연구원과 북극다산과학기지 하계연구단 고등식물연구책임자로 역임한 바 있습니다. 건국대, 강원대, 강릉대 강사를 지내고 현재 농촌진흥청 화훼과장으로 한국원예학회, 한국식물생명공학회, 도시농업연구회 이사를 겸임하고 있습니다. 한국식물학회, 한국육종학회 정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