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오늘인 2015년 11월 9일, 첫화면 담백하기로 유명한 구글이 뜬금없이 메인화면에 동영상 하나를 떡하니 걸어 놨다. 영화배우 헤디 라머(Hedy Lamarr)의 탄생 101주년을 기념해 구글이 특별 제작한 헌정작(Tribute)이었다. 구글은 왜 이 한물간 여배우에게 극진한 존경과 예우를 표한 걸까.

헤디 라머 탄생 101주년을 맞아 특별 제작된 동영상이 걸린 구글 메인 페이지. / 구글 홈페이지 갈무리
헤디 라머 탄생 101주년을 맞아 특별 제작된 동영상이 걸린 구글 메인 페이지. / 구글 홈페이지 갈무리
라머는 오스트리아 출신 여배우다. 국내에서는 1949년작 '삼손과 델릴라'의 여주인공으로 얼굴을 알렸다. 이 고운 여배우가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휴대폰 코드다중분할방식(CDMA) 기술을 비롯해 와이파이·블루투스 등을 최초로 고안해 낸 천재 발명가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나치를 혐오했던 라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으로 망명한다. 무기중개상인 남편 덕에 레이다·미사일·어뢰 등에 대한 기초 지식을 어깨너머로 익힌 라머는 특유의 눈썰미와 천재적인 머리로 '대역 확산'이라는 통신기술 개념을 처음 발명했다.

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는 헤디 라머(오른쪽). / IMDB 제공" xtype="photo">라머는 주파수 도약 방식을 활용한 기술로 1942년 특허까지 등록했지만, 당시 제조 기술력으로는 이 특허기술을 당장 제품화할 수 없었다. 라머는 특허권을 미군에 무상 기증했지만 이후로도 아무런 경제적 이득을 얻지 못했지만, 자신이 발명한 주파수 기술이 미 해군의 어뢰에 적용돼 그토록 싫어했던 나치 독일의 함정을 무찌르는 데 사용됐다는 것을 알고 흡족해했다.

상용화되지 못하던 라머의 특허 기술은 1950년대부터 재조명을 받았다. 트랜지스터 발명으로 전자시대의 막이 열리며 라머의 기술이 휴대전화 등 무선통신 기기에 쓰이는 CDMA로 진화·발전했다.

지금의 와이파이·블루투스는 그녀의 발명 없이 탄생하지 못했을 기술이다. 구글이 라머에게 최고의 예를 갖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라머가 없었다면 지금의 구글도 없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헤디 라머가 취득한 특허등록 도면. 이 기술은 특허권이 소멸한 뒤에야 CDMA 등으로 본격 상용화되면서 빛을 보게 됐다. / 미 특허청 제공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헤디 라머가 취득한 특허등록 도면. 이 기술은 특허권이 소멸한 뒤에야 CDMA 등으로 본격 상용화되면서 빛을 보게 됐다. / 미 특허청 제공
라머는 특허를 취득한 지 55년만인 1997년 미 전자프론티어 재단(EFF)으로부터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당시 플로리다 자택에서 철저한 은둔 생활을 하던 라머는 아들을 보내 대리 수상을 했다. 그녀는 조용한 말년을 보내면서도 쓰레기 주머니가 달린 갑티슈를 발명하는 등 죽는 날까지 특허 등록의 끈을 놓지 않았다.

◆ 헤디 라머에 버금가는 한국의 여배우 '하상남'

헤디 라머와 비견될 수 있는 여배우 출신 발명가가 한국에도 있다. 하상남(91) 전 한국여성발명협회 초대회장이다. 1927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하 전 회장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자유만세'로 은막에 데뷔했다. 한국전쟁 직후 1950년대에는 '하연남'이라는 예명으로 '처녀별', '노들강변' 등 10편쯤의 영화에 출연했다.

1950년대 ‘하연남’이라는 예명으로 영화 ‘처녀별’에 출연한 하상남 초대 한국여성발명협회장(가운데). /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50년대 ‘하연남’이라는 예명으로 영화 ‘처녀별’에 출연한 하상남 초대 한국여성발명협회장(가운데). /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하 전 회장이 특허와 발명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대한민국 최초 빙속 국가대표 출신 남편 고 이효창 씨와 결혼한 1966년쯤부터다.

하 전 회장은 한국전 피난 중 박격포탄에 오른쪽 손목을 심하게 다쳤다. 이를 비관해 자살시도까지 했지만, 남편 지인이 가져다준 광물질 '셀레늄' 분말을 먹고 손 상태가 호전되는 것을 경험한 후 남편과 함께 셀레늄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셀레늄의 항암·항노화 성질을 발견한 독일 클라우스 슈바르츠 박사의 논문을 접한 것도 이때다.

하 전 회장은 해방 전 경성여의전 의대를 다녔다. 갑작스런 광복으로 어수선한 상황 때문에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지만, 경기산파학교를 나와 면허를 취득해 산파 일도 하고 나중에는 약국도 차렸다.

이런 경험을 살려 하 전 회장은 1984년 '이온수용 세리사이트 격막 제조방법'으로 특허등록(제15990호)을 받았다. 셀레늄 등 희귀 미네랄 광물질로 만든 노화방지 화장비누 '세리온'을 비롯, 세리온 파우더와 세리온 화장품 등 신물질 발명으로 그동안 받은 특허만 30건쯤에 달한다.

하 전 회장은 1991년 자신의 특허 제품을 들고 스위스 제네바 국제발명품전시회에 나가 은상을 받았다. 또 독일국제발명품전시회(IENA)에서는 대상의 영예에 올랐다. 2002년에도 IENA 대상을 재수상하며 세계적인 발명가 반열에 올랐다.

하 전회장은 첫 IENA 수상을 계기로 1993년 귀국 후 한국여성발명가협회를 설립하고 초대 회장직을 맡아 협회의 초석을 다졌다. 이때 하 전 회장이 뿌려놓은 씨로 협회는 매년 한국에서 세계여성발명경진대회와 여성발명품박람회를 개최하는 회원 수 700명쯤의 전문 단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희자 루펜리 대표를 비롯해 김순진 놀부보쌈 대표, 김순자 한성식품 회장 등이 협회 출신 여성 발명자·경영인이다.

하상남 초대 한국여성발명협회장(왼쪽)이 2016년 열린 ‘대한민국 세계여성발명대회 시상식’에 참석해 조은경 전임 여성발명협회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한국여성발명협회 제공
하상남 초대 한국여성발명협회장(왼쪽)이 2016년 열린 ‘대한민국 세계여성발명대회 시상식’에 참석해 조은경 전임 여성발명협회장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한국여성발명협회 제공
구순(90세)을 맞은 하 전 회장은 각종 발명·특허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며 현역 못잖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6년 남편과 사별하고 몇 차례 사업 부도와 사기 피해 등으로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 전 회장은 지금도 자신의 셀레늄생명공학연구소에서 후속 연구와 특허 취득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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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동 위원은 전자신문 기자와 지식재산 전문 매체 IP노믹스의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는 국내 최대 특허정보서비스 업체인 ㈜윕스에서 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입니다. IP정보검색사와 IP정보분석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특허청 특허행정 모니터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특허토커'와 'ICT코리아 30년, 감동의 순간', 'ICT시사상식 2015' 등이 있습니다. '특허시장의 마법사들'(가제) 출간도 준비중입니다. 미디어와 집필·강연 활동 등을 통한 대한민국 IP대중화 공헌을 인정받아, 올해 3월에는 세계적인 특허전문 저널인 영국 IAM이 선정한 '세계 IP전략가 300인'(IAM Strategy 300:The World's Leading IP Strategists 2017)에 꼽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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