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엔진'이라는 강력한 회전 동력을 발명해 산업혁명과 운송혁명을 일으킨 지 200년쯤이 지났다. 스팀 엔진의 발명은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와 선박의 개발로 이어져 대량수송을 이뤘다. 게다가 100년 전 가볍고 작은 자동차 엔진이 발명된 후 개인화된 수송과 이동이 가능해졌다. 이제 또 다른 운송 혁명이 급속히 다가온다. 인류가 발명한 가장 혁신적인 에너지인 전기를 활용한 전기차다.

전력, 통신, 전자기기 및 회로, 컴퓨터, 인터넷, 이동통신, 스마트폰, 모터, 발전기 등 거의 모든 문명의 이기는 사실상 전기 에너지, 전자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다.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전자기학의 원리를 발견해 전기, 전자, 정보 시대의 불을 밝힌 패러디도 전기가 이렇게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전기 에너지의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바로 저장이다. 최근 리튬이온 배터리 등 전기저장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힘입어 전기차가 급속히 보급되고 있지만 세계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 미만이다. 블룸버그는 전기차 원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리튬이온 배터리 가격이 지속 하락해 2030년까지 70% 이상 낮아진다고 전망했다. 20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전기차가 본격 보급되고, 2040년에 신차의 54%가 전기차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2030년에는 보조금을 받지 않더라도 전기차 가격이 엔진 방식의 자동차와 같은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재규어 랜드로버는 전기차 선두 주자인 테슬라와 GM을 추격하기 위해 2020년까지 모든 차종을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폭스바겐은 2025년까지 240억달러(26조8500억원)를 투자해 80종의 전기차를 만들 예정이다. 엔진 자동차 제조의 후발국인 중국은 우회 전략으로 전기차 제조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거대한 중국시장이 가장 큰 무기다. 2016년 전 세계에 출하된 87만3000대의 전기차 중 43%를 중국이 공급했다. 2015년 251%, 2016년 69%의 성장률을 보이는 등 급성장 중이다. 중국에 내연기관 자동차가 대량으로 보급되면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문제는 심각해진다. 중국이 전기차를 주력으로 보급하겠다니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는 2016년 154만대의 신차 중 전기차가 5914대뿐이다. 전기차 50만대가 이미 운행 중인 미국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충전인프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전기차를 사려고 해도 충전이 걱정돼 망설여진다. 현대기아차가 세계 5위권이라고 하지만 급변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온전한 전기차는 기존 엔진차량의 차체는 그대로 유지하고 파워트레인만 전기모터로 대체한 것이 아니다. 전기모터엔진은 기존 기계식 엔진과는 동적 특성이 다르다. 기계식 엔진은 최대 토크를 얻기 위해 시간이 걸리고 차체를 가속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기어변속이 필요하다. 값비싼 스포츠카가 시속 100 킬로미터까지 가속하는데 수초 밖에 걸리지 않는 것을 자랑하는 이유는 기계식 파워트레인으로 급가속을 내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기모터는 전류조절만으로 최대 토크를 순간적으로 얻을 수 있다. 무거운 기계식 엔진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차체가 그만큼 가벼워져 급가속이 가능하다. 전기차 부품 중에서 가장 무거운 배터리는 차체 하부에 배치해 상하 중량 비중을 4대 6 이하로 낮춰 안정성, 코너링 등 성능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완전히 신개념 차체 플랫폼으로도 설계 가능 하다. 실제 테슬라 모델시리즈, GM 볼트 등 전기차를 타보면 운전 성능이 아주 뛰어나 고급 스포츠카를 모는 느낌이라고 한다. 전기차만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기계식 엔진 자동차에 주력해온 자동차 제조기업은 전기차에 전력투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직 가격이 비싸고 전기차 시장 규모가 크지 않으며 충전인프라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내부에 있다. 전통적인 기계식 엔진에 충실한 엔지니어와 경영진의 고정관념과 마인드 셋을 바꾸는 것이 가장 어렵다. 과거 코닥과 소니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와 뛰어난 LCD TV를 개발해놓고도 필름기술, 아날로그 브라운관 TV 기술에 크게 성공했던 기술자와 경영진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몰락했다. 게임의 룰이 바뀔 경우 냉정하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자동차 제조 기업 내부에서 과감한 변신을 하기 힘들면 별도의 전기차 제조기업을 분사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자동차 부품, 리튬이온 배터리, 전장부품, 전자 및 반도체, 무선통신인프라, 풍부한 고급 엔지니어 등 전기차에 필요한 거의 모든 요소를 우리나라보다 완벽하게 갖춘 나라는 거의 없다. 전기차 제조산업은 자동차 제조 뿐 아니라 배터리와 각종 첨단 전장부품의 제조 산업을 크게 일으킬 수 있다. 전기차는 자율주행차, 스마트카, 커넥티드카로 가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바로 이웃한 중국에 막대한 규모의 전기차 시장이 열리고 있다.

정부는 전기차 충전인프라를 과감하게 확충하고 충전기 등을 표준화해야 한다. 관련 법규, 보조금도 보완해 새로운 기회를 잡아야 한다.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부터 전기차로 대체해야 한다. 전기차가 대량 보급되는 경우를 대비해 에너지 수급체계와 정책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대학과 협력해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관련 전문인력을 대폭 양성해야 한다.

GM 전기차 볼트의 재료비의 60%에 해당되는 전장부품을 공급하는 LG전자 VC사업부의 이우종 사장을 최근 만났다. 전기차의 핵심은 모터기술인데 제대로 연구, 교육하는 곳이 별로 없어 전문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각종 스마트 운전 보조장치, 자율주행차를 위한 소프트웨어 및 인공지능 전문인력, 소프트웨어 설계 및 개발 역량과 기계 제어 기술을 함께 갖춘 융합기술 전문인력을 시급히 양성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운송혁명, 신산업 육성,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 대량 수송과 개인화된 운전을 거쳐 스마트한 이동으로 진화하는 운송혁명을 주도해야 한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태억 교수는 KAIST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교수, 교육원장이며 대한산업공학회 회장입니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 신성장동력기획단 위원, KAIST 정보시스템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자동화, 정보기술 응용, 산업지능 분야 전문가이며, 일방전달방식강의에서 탈피하는 수업방식 혁신을 통한 교육혁신, 교육의 기회 균등 실현을 위한 온라인대중공개강좌(MOOC) 확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KAIST,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옛 미래창조과학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