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통화 버블 논란이 거세다. 가상통화 버블과 유사하다고 알려진, 유럽 근대 3대 버블 중 하나인 '네덜란드 튤립 버블'의 원인·경과·양상을 두차례 칼럼으로 알아보려 한다.

이전 칼럼에서 네덜란드로 투자금이 모인 역사적 배경, 그리고 튤립을 위시한 투자 심리 변화를 살펴봤다. 자산가뿐 아니라 서민까지 튤립 매매에 뛰어들며 시장이 변질되는 과정도 되짚어봤다.

튤립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증권거래소 주식 투자자들이 대거 튤립 시장에 몰려들었고 튤립 뿌리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았다. 1633년 '황제튤립' 가격은 5500플로린에 달했는데, 당시 암스테르담 시내 평범한 집 한채 값이 1200 플로린이었다. 꽃이 만개할 때까지 모양과 색깔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튤립 투기의 우연성을 극대화했다. 게다가 튤립 뿌리는 상대적으로 쉽게 재배할 수 있었고, 거래를 막을 길드가 존재하지 않았다.

일확천금에 눈이 먼 당시 서민은 뒤늦게 튤립 시장에 뛰어들었다. 튤립 재배 붐이 더 격렬해지며 미래의 튤립에 투자하는 '선물 시장'이 발달한다. 1636년 '타베르나'라는 선술집에서 선물이 등장했고, 이들 파생상품을 통해 투자자들은 적은 돈으로 많은 튤립을 거래했다. 거래 대부분은 어음이었는데, 만기는 튤립 뿌리를 캐는 이듬해 봄이었다. 투기열풍이 끝나갈 무렵, 실제 아무도 본 적이 없는 튤립 뿌리가 주인을 계속해서 바꾸며 실체 없는 거래가 돼버렸다.

투기적 성향을 가진 투자자들은 계약 만기 시 튤립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현물을 인도할 수 없었고, 현금이 없었기 때문에 결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다다랐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튤립의 적정 가격이 얼마인지 밝히려는 시도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한탕을 노리고 튤립을 전매하는 데 집중했다. 1636년 겨울 한달 사이에만 튤립 가격이 2600% 오르자, 사람들은 집과 땅을 팔아 튤립 알뿌리를 샀다. 이 때에도 거래 대부분은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튤립 거래 중심지 하를렘에 '튤립을 살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다음날 튤립 거래가 한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동안 막대한 신용으로 튤립을 구매해둔 업자들은 조금이라도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더 낮은 가격에 튤립을 내놓았고, 1637년 2월 한달동안 튤립 가격은 1/100 이하로 떨어졌다. 매매는 이뤄지지 않았고 부도가 줄지어 발생했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튤립 매매가격의 3.5%만 지급, 모든 채권과 채무를 정리하는 조치를 취해 사태를 진정시켰다.

튤립 버블과 현재 가상통화 시장을 비교하기 위해서 튤립버블의 특성을 짚어본다.

1. 거시경제적 특징
1-1) 개개인의 역량이 아닌 거시적인 현상에 의해 유동성이 증가
1-2) 이로 인해 개개인의 부 증대
1-3) 그에 따른 개인의 가치창출 능력에 대한 자신감 상승

2. 자산의 특징
2-1)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투기성 자산의 등장
2-2)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매개체로의 수요 존재
2-3) 자산의 가치가 상승하자 투기 목적의 수요가 기존의 수요를 잠식
2-4) 생산이 용이함
2-5) 자산의 성질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투기적 성향 극대화

3. 제도적 특징
3-1) 규제 없음
3-2) 파생상품시장 존재

등이다.

현재 가상통화 시장은 튤립 버블에서 드러난 거시경제적 특징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한다. 가상통화 시장에 자산이 몰리는 이유는 '호황에 따른 부의 증대로 인한 유동성 공급'이 아니다. 그보다는 '고수익 자산의 부재에 따른 유동성의 스퀴즈'일 가능성이 높다.

자산의 특징 면에서 가상통화는 2-1, 2-3, 2-4 는 충족하지만 2-2와 2-5는 만족하지 못한다. 즉, 가상통화는 투기성 자산이고 이 투기적 수요가 기존 화폐 수요를 잠식한다. 누구나 채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상통화는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매개체가 아니고, 가상통화 성질에 대한 불확실성은 없다. 모두가 똑같은 비트코인 또는 이더리움을 구매할 수 있어서다.

가상통화는 튤립 버블의 제도적 특성을 모두 충족한다. 현재 가상통화를 이용한 파생상품이 장외로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리해 보면, 경제적 관점에서 현재 '가상통화의 가치 상승을 튤립 버블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튤립 버블은 경제적 성장, 거기에 세계 최초 증권시장을 매개로 국외 자본까지 끌어들였다. 가상통화는 지속되는 불경기 속에서 고수익 자산을 찾아 투자금이 몰린 형국이다. 따라서 튤립 버블이 가상통화보다 더 큰 버블을 형성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자산의 특징을 놓고 보면, 튤립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매개체로(최소한 버블 초창기에는) 그 가치를 유지했다. 현재 가상통화를 정말 화폐로 생각하고 구매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만큼, 가상통화가 튤립보다 더 큰 버블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튤립은 상품 자체의 불확실성(어떤 색의 꽃이 필 지)까지 더해졌으니, 상품 자체의 불확실성이 없는 가상통화 보다 더 투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튤립버블과 현재 가상통화 현상을 간단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사회적 맥락이 너무 다르고 그 시사점을 끌어내기도 어렵다. 단, 자산의 특성을 고려해 보면 '가상통화가 튤립보다 덜 위험할 것이라 볼 수 없다'는 시사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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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 경영대 재무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비트코인 거래소 코인피아 자문위원이기도 합니다. 학계에 오기 전 대학자산운용펀드, 투자은행, 중앙은행 등에 근무하며 금융 실무경력을 쌓았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박사를 마치고 자본시장연구원과 시드니공과대(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영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주 연구분야는 자산운용, 위험관리, 대체투자 및 전자화폐로, 시드니공과대학 재직시절 비트코인 등 디지털화폐와 화폐경제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현재 SWIFT Institute 에서 연구지원을 받아 전자화폐가 진정한 화폐의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연구 중입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화폐가 대체투자 자산이 될지, 자산운용 측면에서 어느 정도 효용을 가질지도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