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료비 혹은 연료 유지비가 저렴하다. 운행 중 들어갈 돈이 적다는 의미다. 그런데 친환경차는 비싸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핵심 기술 중 하나인 배터리 가격이 비싸서다. 가격이 높을수록 소비자는 구매를 꺼리게 된다. 유지비 절감액과 친환경차 구입가격의 폭이 벌어지면 비용 상쇄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친환경차를 탈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소비자가 친환경차를 사려는 건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한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주머니 사정이 주된 이유다.

당장 환경오염을 줄여야 하는 정부로서는 국민들이 비싼 친환경차를 구매할 수 있도록 '당근'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구매 보조금이다. 또 여러 세제 혜택으로 유지비를 더 줄여줘야 한다. 내연기관차가 쓰는 석유(휘발유, 경유, LPG 등)에 비해 자동차용 전기에 붙는 세금이 현저히 적은 배경이다. 차 가격이 비싸도 환경보호라는 대전제를 만족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소비자 유입을 위한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는 여기에 무한정의 세금을 투입하기 어렵다. 내연기관차 한 대가 판매되면 소비자가 차를 손에 넣기 이전(구입 시 내는 취등록세 등)부터 운행(자동차세, 유류세 등)하는 전과정에서 세금이 들어오지만, 친환경차는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 친환경차 한 대가 늘어나면 들어오는 세금보다 내어줘야 하는 세금이 더 많다.

특히 전기차의 경우 구매 보조금을 비롯해 다양한 혜택을 줘야하는데, 모두 세금이다. 취등록세 등은 기대할 수도 없다. 현재 배기량별로 책정하는 자동차세는 엔진이 없는 전기차에게는 연간 13만원을 부과하고 있다. 배기량 1600㏄ 내연기관차의 자동차세는 25만원 전후다.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 보급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도 소극적인 건 이런 상황 때문이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내년 전기차 보급 목표를 3만대에서 2만대로 줄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재 정부는 전기차 한 대당 1200만원 가량의 보조금을 주고 있으니 산술적으로 3600억원에서 2400억원으로 예산을 줄인 것이다. 실제로는 2600억원 정도를 책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가 주장했던 주행거리별 차등 보조금도 없던 일로 했다.

세금을 전기차 보급에 무작정 쓸 수 없는 정부 입장을 헤아려 보면 이번 결정은 최선은 아니어도 비난받을 이유가 별로 없다. 어쨌든 이전보다 후퇴없이 늘려가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전기차에게는 정부 보조금에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이 추가되는데, 보급대수를 늘릴 경우 지자체별 보급 할당량도 함께 높아지고, 이 경우 가뜩이나 취약한 지자체 살림살이에 부담이 가중된다. 전기차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몇나라도 최근 마냥 보조금을 줄 수 없어 규모를 축소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기재부가 전기차 보급 규모를 예상보다 줄인다고 하자 전기차를 생산하는 자동차 회사가 혼란에 빠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미 잡아 놓은 생산 계획을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기재부의 성급한 결정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것. 구체적인 대수를 언급하면서 정부 정책의 헛발질을 지적했다. 이 주장대로 업계는 정말 혼란에 빠졌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전기차를 비롯한 자동차 생산은 애초에 정해진 계획대로 이뤄진다. 이 계획은 한두달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수년간의 데이터와 경기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따라서 정부 정책이 바뀌더라도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또 자동차 회사의 생산 계획은 내수뿐 아니라 수출 물량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몇 대 줄인다고 해서 전체 생산 계획이 틀어질 정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결국 돈이다. 전기차를 개발하고 만드는 일, 보급하며 운행하는 모든 과정이 경제논리와 뗄래야 뗄 수 없다. 따라서 전기차 보급 정책은 현실성에 기반을 둬야하고, 늘 세수와 세출에 대한 균형을 맞춰야 한다. 업계 혼란이라는 여론 호도에 휘둘려서도 안되고, 환경보호라는 대의명분을 잊어서도 곤란하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정부 정책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