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고급브랜드 제네시스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판매량이 신통치 않은 것. 브랜드 전략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11일 현대차 실적자료에 따르면 제네시스의 올해 누적판매량(11월 현재)은 5만1096대로, 지난해 같은기간 기록한 6만983대와 비교해 16.2% 하락했다. 현대차는 올해 그랜저의 맹활약(12만3000대)으로 63만5578대를 기록(전년대비 8.4%증), 최근 5년새 가장 높은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결과적으로는 제네시스가 발목을 잡은 모양새다.

제네시스 EQ900. / 현대차 제공
제네시스 EQ900. / 현대차 제공
원인은 플래그십인 EQ900과 주력세단 G80이 부진했던 탓이다. 특히 EQ900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48.4% 하락(2만2276대→1만1491대), 반토막이 났다. 같은기간 EQ900보다 비싸면서도 수입차라는 특성을 가진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BMW 7시리즈의 판매량은 9000대 쯤에 이른다. 국산차와 수입차의 시장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EQ900은 국산 플래그십으로서의 위용을 올해 전혀 보여주지 못한 셈이다.

딱히 돌파구도 없다. 보통 3년 단위로 계약하는 법인 판매가 많은 이 차급을 고려해 최다판매를 기록한 2016년 출고분의 교체는 최소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상품성 개선 모델을 통해 판매량을 일시적으로 늘리는 방안 외에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2018년형 제네시스 G80. / 현대차 제공
2018년형 제네시스 G80. / 현대차 제공
G80의 판매하락도 나쁜신호를 내고 있다. 원래 제네시스 제품명으로 판매하던 G80은 브랜드 출범과 함께 G80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브랜드를 이끌 준대형 세단으로 육성됐지만 결과는 지난해보다 5.3% 떨어졌다. 그랜저가 많이 판매될수록 G80의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다.

그랜저는 전륜구동, G80은 후륜구동이어서 제품특성은 전혀 다르지만 두 차 모두 '고급차'로 인식되는 환경이 걸림돌이다. 따라서 인지도가 낮은 G80의 아쉬운 성적은 당연해 보인다는 게 업계 평가다. 물론 내년 초 2.2리터 디젤 엔진을 장착한 G80 디젤을 출시한다고 하지만 어디까지 판매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네시스 전용 플랫폼을 품고 태어난 G70은 11월 1591대를 판매, 올해 월평균으로 세운 1250대를 가뿐히 넘겼다. 판매 첫달 958대를 더해도 G70의 목표는 무난하게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판매량을 지금보다 더 늘려야만 브랜드 자존심을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G70의 갈길도 멀다.

결국 제네시스가 한국 고급브랜드의 대명사로 불리기 위해선 높고, 안정적인 판매량은 필수조건이 아닐 수 없다. 지금과 같이 몇 차종이 부진하다고 해서 실적이 요동치는 한 브랜드 성장은 보장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특히 시장성장세가 가파른 SUV의 투입은 시급한 과제다. 제네시스는 브랜드 최초의 SUV인 GV80(가칭)을 내년 말쯤 혹은 2019년초 내놓을 예정이다. 이어서 다양한 크기의 SUV를 갖출 방침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브랜드의 실적 부침이 끊임없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국산차 업계 관계자는 "대중 브랜드인 현대차와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투트랙 전략으로 판매량과 고급화 등을 동시에 꾀했지만 올해 그랜저를 앞세운 현대차가 내수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것과 대비될 정도로 제네시스는 농사를 잘 짓지 못했다"며 "G70이 가세했어도 현재 성장 중인 SUV 제품군 없이 세단으로 시장에 대응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2018년말 또는 2019년초에 내놓겠다는 SUV 없이 내년 제네시스의 성적은 당분간 크게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