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바, 소리 줄여줘."

아리아, 지니, 시리, 빅스비 등 우리 주변에 인공지능 비서를 부르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몸만 없을 뿐, 인공지능은 어느새 우리 삶 속에서 비서 노릇을 하고 있다. 과연 미래에도 인공지능이 비서로만 남아 있을까? 기술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인공지능이 도우미 역할에만 만족하지는 않을 듯하다. 조만간 단순업무를 도와주는 비서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대신하는 비서실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군복무와 납세 의무도 사라지는 시대가 다가온다

현재 인공지능은 'OO까지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 뭐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수준에 머문다. 머지 않아 개인비서 앱은 나의 일정과 위치를 확인하고 내게 '서두르세요'라고 재촉할 것이다. 동시에 상대방에게 '15분쯤 늦겠습니다. 죄송해요.'라고 문자도 보낼 것이다. 주말이 되면 비서실장은 영화 세 편을 예약하고 주인에게 무얼 볼 지 물어볼 것이다. 주인이 영화 한 편을 고르면 나머지 두 편은 취소한다. 추가 비용은 없다. 이제 비서실장은 영화를 함께 볼 친구들을 찾기 위해 다른 비서실장에게 연락한다. 친구의 비서실장이 답을 해오면 두 사람은 비서실장이 예약한 영화관으로 향한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검색한 비서실장은 주인의 취향과 최근의 연애상황을 파악한다. 그 다음 미혼남녀가 많은 소셜모임에 프로필을 소개하고 깜짝 소개팅도 주선한다. 어쩌면 우리는 몇 년 내에 페이스북의 소개로 사귀기 시작했다는 연애담을 듣게 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군인로봇이 군복무를 대신하면서 단계적으로 군복무가 단축된다. 필요한 군인의 수가 줄면서 징병제 대신 모병제를 실시하고 청년들은 구직 차원에서 군복무를 희망한다. 산업현장에서 로봇의 역할이 늘면서 인간의 근무시간은 대폭 줄고 주 3일 근무제가 일반화된다. 직장이 없는 사람들은 국가가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받으며 살아간다.

◆ 책임이 사라지면 권리도 사라진다

인공지능과 로봇 덕분에 군대에 가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 꿈같은 날은 언제 올까? 그런데 그 꿈이 해피엔딩이 될지 악몽으로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근대국가의 징병제는 프랑스 혁명과 연관이 깊다. 프랑스가 공화정을 시작하자 주변 국가들은 위기를 느끼고 연합군을 구성해 프랑스를 공격했다. 프랑스 공화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강제징병을 실시했다. 건장한 청년들은 군인으로 복무했고, 여성, 노인, 어린이 등은 지원활동에 투입됐다. 왕이 고용한 용병으로 구성된 연합군과 자신의 나라를 지키려는 국민병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결국 프랑스 공화정부가 승리하면서 유럽이 변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마치자, 상이군인과 유가족은 국가에게 복지를 요구했다. 군복무도 하고 세금도 내는 국민들은 참정권 확대를 요구했다. 국방, 납세의 의무와 참정권, 복지의 맞교환이 시작됐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이런 맞교환이 유지될지 생각해보자. 인공지능 로봇이 국방을 책임지고 로봇세도 내면 인간의 참정권과 복지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군인과 납세자로서 시민의 가치가 줄면 시민사회가 붕괴할 수 있다. 급기야 사람대신 인공지능에게 국가운영을 맡기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다. 최대의 성과를 얻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일이라면 인공지능이 잘 해낼 것이다.

컴퓨터 알고리즘에게 조직운영의 의사결정을 맡겨서 성공한 사례는 이미 존재한다. 1997년, 메이저 리그의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이 된 빌리 빈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금융 데이터 분석가를 초빙해서 저예산으로도 좋은 선수들 찾아내는 방법을 구한 것이다. 그들은 타율이나 홈런이 아닌 출루율 중심의 분석을 통해 저평가된 우수인재를 발굴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그 결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2000년부터 4년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2002년에는 20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게 된다.

야구팀과 국가운영은 규모나 복잡성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많은 변수를 반영하고 보다 장기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일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쯤 되면 인공지능의 확산이 취업난을 가중하는 수준 이상의 변화도 만들 것이라는 예상을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사회 각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도입을 재촉할수록 시민사회는 근간부터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 지금 준비하면 미래의 실수를 막을 수 있다

이러한 걱정에 대해 한동대학교 손화철 교수는 현실적인 해법을 제안한다. 손 교수는 기술의 발전을 통제 불가능한 날씨처럼 받아들이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 발전은 막을 수 없는 일이니 그 이후에 어찌 대응할지 고민해보자는 식으로 말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기술은 인간 의식의 산물이다. 따라서 우리가 의식하고 노력하면 기술의 발전 방향과 속도를 결정할 수 있다. 그는 '세상의 권력관계를 재조정하는 것보다는 인공지능이 그 권력관계 내에서 악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쉽다'고 조언한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IT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한 사람들이 나서서 기술발전의 방향을 점검하고 보완방법을 찾자고 제안하고 있다. 인간을 대신해 일하는 로봇에게 세금을 물리자는 제안을 하고 나선 이도 바로 그 중 한 명인 빌 게이츠이다.

기술의 통제가 가능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방법은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핵융합 기술은 국제적으로 제어·조정되고 있다. 물론 당최 말은 듣지 않는 정권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자동차 배기가스에 대한 걱정이 커지면서 엄격한 환경기준이 등장했다. 자동차 업체들이 수소차, 전기차 개발에 집중하는 것은 그들이 선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기술은 그 자체로는 윤리적인 중립에 해당한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이 가미되면 기술은 최악의 무기도 되고 인류의 자살 시나리오도 된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은 인류 문명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인공지능처럼 기대도 크면서 환영받지 못하는 기술도 없다. 그만큼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소수의 기술 독점으로 인해 정치적 불평등, 경제적 불균형이 심화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치가들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유권자의 목소리를 듣되, 인위적인 여론조작을 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들은 인간을 배제하는 알고리즘을 도입할 때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윤을 어떻게 사회로 환원할지 고민해야 한다. 정치가와 기업들의 자발적 행동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시민들이 각성하고 이들을 견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자녀들은 인공지능과 소수 엘리트 계층의 지시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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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성 홈스쿨대디는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컨설팅과 강의를 업으로 삼고 있으며 기업인들에게 4차산업혁명의 의미와 대응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세 아들을 홈스쿨링으로 키우는 5년차 홈스쿨 가장이며 홈스쿨링 커뮤니티에서 3년째 과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경영지해' '우리는 그들을 신화라 부른다' '에듀솔빙' 등 3권의 경영 도서와 자녀양육 도서 '아들아, 내가 맡긴 아이는 잘 키우고 있느냐?'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