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집단소송제' 도입 기름 부었지만…삼성에 불똥 튀나

입력 2018.01.06 00:05 | 수정 2018.01.08 07:00

삼성전자는 최근 '배터리게이트'에 휩싸인 애플의 추락에 마냥 웃을 수 없는 분위기다. 애플을 상대로 한 국내 소비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집단소송제' 도입 범위를 확대시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집단소송제는 판결의 효력이 소송 당사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전체에게 적용되는 제도다. 미국의 대표 당사자 소송이 대표적이고 우리나라는 2002년부터 증권분야에 제한적으로 집단소송제를 도입했다.

8일 삼성전자 한 고위 관계자는 "경쟁사(애플)의 상황과 별개로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국내 기업도 큰 부담이 안게 된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애플 로고. / 각사 제공
기업을 상대로 한 국내 소비자의 소송은 참여자만 보상을 받는 식이다. 애플과 같은 글로벌 기업의 국내 소비자 홀대를 방지하고 다수 소비자 대상 피해 구제가 이뤄지려면 집단소송제의 혜택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애플에 소송을 제기하는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이하 소비자주권)는 소비자가 실질적인 구제를 받으려면 집단소송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박순장 소비자주권 소비자감시팀장은 "수년 전부터 정부와 정치권에 집단소송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요구를 해왔지만 무산됐다"며 "애플 배터리게이트로 재조명 받는 집단소송제가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애플의 배터리 게이트 관련 소송을 준비 중인 법무법인 한누리의 조계창 변호사도 "이번 애플 배터리게이트로 집단소송제의 논의 영역이 소비재 분야로 확대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재계 1위이자 국내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는 이런 움직임을 달갑게 보기 어려운 입장이다. 애플을 겨눈 소비자의 총구가 집단소송제 도입을 통한 영점 조정돼 언젠가 삼성전자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16년 말 배터리 발화 문제로 판매 중단된 '갤럭시노트7'을 사용한 소비자 1800명은 삼성전자에 9억3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 삼성전자는 결과적으로 2017년 8월 승소해 한숨을 돌렸지만 집단소송제 도입을 가정하고 패소했을 경우, 피해자 모두에게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재계에서는 집단소송제 도입 시 '반(反)기업 정서'를 이용해 특정 기업을 타깃으로 삼는 소위 '기획 소송'이 쏟아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미국은 최종 판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 소송의 80~90%가 화해로 조정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변호사만 이득을 본다는 얘기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미국이 도입한 집단소송제는 부작용이 많고 남용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 때문에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며 "공동소송제도나 선정당사자제도 등 현행 제도상으로 가능한 부분도 있는데 충분한 검토 없이 집단소송제가 도입된다면 기업 입장에서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집단소송제 도입 관련 법안은 17대 국회에서 6건, 18대 국회 4건, 19대 국회서 17건이 발의됐다. 대부분 논의조차 해보지 못한 채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도 11건의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국회·정부가 재계의 강력한 반발로 소극적인 태도만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애플 배터리 게이트에 앞서 릴리안 생리대 환불 사건·살충제 달걀 파동·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등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이슈가 잇달아 발생해 집단소송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에 집단소송제를 포함시킨 것도 이런 맥락이다.

법무부도 2017년 10월 연 정책위원회에서 '법무행정 쇄신방향'을 발표했다. 2018년 상반기 집단소송제 관련법을 마련해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다. 법무부 산하 집단소송제도 개선위원회는 2017년까지 태스크포스(TF) 논의를 완료하고 법안 마련 작업에 돌입했다. 공정위도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법집행개선 TF 논의를 마무리하고 이달중 집단소송제 도입에 관한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경제단체 한 관계자는 "집단소송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면 소송 단계를 2단계로 진행해 남소 우려가 없는 일본식 집단소송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집단소송제는 미국식 집단소송제와는 다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소송의 단계를 2단계로 진행해 1단계 절차에선 소비자단체가 원고가 돼 기업의 금전지급의무의 확인을 구하고 2단계에선 금전지급의무 확인판결을 전제로 개별 소비자들의 채권을 확정한다.

만일 소비자단체가 1단계에서 패소한 경우에는 그 패소 판결의 효력이 소비자에게 미치지 않으며 소비자단체가 1단계에서 승소했을 때만 개별 소비자의 가입신청을 통해 판결의 효력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