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억의 과학에세이] 초신성 폭발과 암호화폐

  • 이태억 KAIST 교육원장/대한산업공학회 회장
    입력 2018.01.07 14:27

    최근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상화폐)와 블록체인 열풍이 뜨겁다. 암호화폐 가격의 널뛰기 등락, 거래소 해킹, 정부 당국 규제, 암호화폐 선물 거래 시작 등 뉴스가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화폐제도는 인류의 최고 발명품 중 하나다. 인류는 개인 간 물품의 필요와 과부족이 다를 때 이를 서로 교환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이는 어찌 보면 동식물의 공생 관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물물교환이 확대되자 인류는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교환하는 것보다 제3의 객관적이고 간편한 물품을 매개로 간접 교환하는 게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하기 어렵고 크거나 특별한 돌에서 출발해 금, 은 등으로 발전하다가 결국 국가가 공인하는 공정하고 간편한 화폐를 이용하게 됐다.

    역사 이래로 각국은 화폐의 공정성, 희소성, 가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화폐제도를 지속해서 발전시켜왔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다. 화폐는 경제, 정치, 사회, 지정학적인 모든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고 이해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대단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현대 화폐제도를 비롯해 달러와 세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유대인 가문의 거대한 음모론에서 출발한 쑹훙빙의 '화폐 전쟁' 시리즈를 읽어보면 화폐제도에 대해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게 된다.

    화폐의 근본적인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쑹훙빙에 의하면 화폐의 본질은 신용창출이라고 한다. 화폐를 가지면 그 가치에 해당하는 어떤 물품이라도 언제 어디서나 교환할 수 있고 그 가치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약속의 주체는 대개 중앙정부나 화폐 발행 권한을 가진 중앙은행이다. 그러나 정부나 정권이 불안정해지거나 국고가 고갈되면 화폐발행을 남발해 화폐가치가 폭락하고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적이 많았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20세기 초 내전 기간 중 군비 조달을 위해 화폐 발행을 남발해 화폐 가치가 폭락하면서 민심이 돌아섰다. 반면, 중국공산당은 내전 기간 중 점령지역 경제활동을 위해 화폐를 발행해야 했으나 가치를 담보할 금 보유가 거의 없어 같은 가치의 베, 곡물 등을 지하 동굴에 보관하고 엄중하게 통제해 민심을 얻고 정권을 잡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물론 중국 작가의 관점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화폐의 본질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많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불변의 가치란 존재할까? 현재로서는 금이 불변 가치에 가장 근접해있다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연금술사가 평생을 바쳐도 금을 만들지 못했다. 금을 구하려고 신대륙을 뒤져도 금으로 된 도시 엘도라도를 찾지 못했다. 탐광 및 채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새로운 노다지 금맥을 찾기란 여전히 불가능하다. 매년 새로운 금이 2500~3000톤(t)씩 채굴되지만, 그 수요를 따라가기 힘들다. 인류가 지금까지 채굴한 금은 총 18만7200t이고 확인된 매장량은 5만7000t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금은 가치 보전성이 뛰어나다. 개인 및 공공부문이 38.2%의 금을 보유 중이다. 금은 아름답기까지 해 보석, 장신구 등을 만들 대 사용된다. 전체 중 47.6%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은 전도성, 내부식성, 유연성, 촉매 능력, 생체적합성이 뛰어나 반도체 칩 등 전자부품, 우주 항공 부품, 나노 재료, 치과 치료, 수술 기구, 약품 등에 사용되는 등 산업적 수요가 날로 증가한다. 2016년 세계 금 시장의 총수요 4327t의 구성을 보면 산업용 8.2%, 투자용 50.3%, 보석 및 장신구용 33.3%, 중앙은행 및 관련 기관 보유용 8.2%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1971년 닉슨 정부 때 금과 화폐를 교환하는 금태환을 중지한 이후 대부분 국가가 금태환을 중단했다. 그런데도 중앙은행 등은 상당량의 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계속 구매 중이다. 개인 및 금융 기관도 금을 가치보존 또는 투자대상으로 구매, 보유하고 있다. 이는 금의 가치 보전성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다. 인류는 6000년 전부터 금을 거래하고 가치 보존 수단으로 사용해온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금태환이 폐지됐음에도 세계 경제가 혼란스럽게 되면 금 가치는 폭등한다. 개인과 금융사뿐 아니라 중앙정부까지도 금을 확보하려 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금에 대한 욕심을 모두 해소할 정도로 막대한 규모의 금광이 새롭게 발견되지 않는 한 금의 화폐제도 후견인 역할은 계속될 것이다.

    금은 도대체 왜 이리도 귀한 것일까? 금, 백금, 우라늄과 같이 철보다 무거운 금속은 핵융합으로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초신성 폭발 후 초고밀도 중성자별 또는 블랙홀의 생성, 중성자별 간 충돌 등 초고밀도 폭발이나 충돌 시 발생하는 막대한 중성자를 핵이 흡수해야 만들어진다고 한다. 고대 연금술사뿐 아니라 초대형 가속기 등을 갖춘 현대 첨단과학도 그 귀한 금을 아직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서 고난도 암호를 풀어야 비트코인이 채굴되도록 한 것은 이러한 희소성을 보존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암호화폐는 정말 화폐로서의 가치와 기능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금과 같은 안정된 가치보전 수단이 될 수 있을까? 각국 정부는 화폐발행 권한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암호화폐가 화폐로서 기능해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를 대체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화폐 공급과 회수를 경제 운용의 중요한 수단으로 믿는 경제학자 집단이 있는 한 암호화폐가 화폐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최근 일부 정부 또는 중앙은행이 새로운 암호화폐를 만들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가치를 보증하는 화폐이며 형태만 암호화폐 방식을 갖는 것이므로 많은 개인이 채굴해 거래하는 최근의 암호화폐와는 본질에서 다르다. 각국 정부와 금융사는 과거 암호와 함께 중앙집중식 원장기록 기술을 사용해 전자현금, 전자지갑 등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암호화폐는 이와 달리 블록체인이라는 혁신적인 분산형 원장기록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중앙정부는 이 블록체인 기술과 최신 암호 기술을 빌려 전자현금 등을 다시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암호화폐는 고난도 암호를 풀어야 채굴되도록 만들었으나 가치 보존 수단으로는 완전하지 않다. 비트코인 이후 이더리움, 리플 등 새로운 암호화폐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것을 보면 암호화폐가 불변의 희소성을 유지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컴퓨터 연산 능력이 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현재의 암호 난이도로 희소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게 될 것이다. 특히 현재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는양자컴퓨터는 이러한 암호풀이에 적합해 암호화폐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기술로 새로운 차원의 암호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결국, 암호화폐는 다수의 사람이 참여해 만든 가상의 투자 수단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사실 돈 가진 사람은 세상 어떤 것에라도 투자를 한다. 오늘날 다양한 금융파생상품과 선물투자상품도 금융자산이나 자원의 미래가치의 변동성과 리스크로 엮어진 가상의 대상에 대해 투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날 파생상품의 시초는 네덜란드의 튤립 생산량과 가격의 변동성, 불확실성에 대해 투자를 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들은 경마, 스포츠, 도박 등 불확실성과 변동성에 대해서도 투기 또는 투자를 해왔다. 이것들은 하나의 투자상품으로서 거래가 되지 않고 결과에 따라 바로 가치가 결정돼 버리는 일과성일 뿐이다.

    얼마 전 금융위기는 교활한 금융전문가 집단이 주택 할부 금융상품의 리스크를 여러 단계에 걸쳐 모으고 쪼개 만든 파생상품이 폭락해 발생한 것이다. 이 파생상품은 기반이 되는 주택가격이 폭락하자 모래성과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다. 인간의 투자 또는 투기 본능은 이렇게 집요하고 교묘하다.

    인류는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있으면 돈을 걸고 투자하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오늘날 금융시장은 마치 이전 검투사의 목숨을 건 격투기를 스포츠화한 것처럼 리스크를 추구하고 즐기는 인간 본성을 교묘하게 이용해 제도권에 편입시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암호화폐도 이러한 본성이 첨단기술, 미스터리 같은 탄생신화, 매스 미디어에 의해 그럴듯하게 포장된 투자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변동성이 너무 심하고 해킹, 규제, 새로운 경쟁적 암호화폐 출현 등 다양한 리스크에 과도하게 노출돼 있어 적절하고 건전한 투자상품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암호화폐의 미래를 점치기는 쉽지 않다. 정부가 공인하는 대체 화폐가 될 것인가? 정부가 공인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거래수단 또는 투자상품으로 인정할 것인가? 금과 같은 가치보존 수단이 될 것인가? 금융상품 또는 투자상품으로 금융시장 제도권으로 들어올 것인가? 초신성 폭발과 같은 수준의 난이도를 갖는 암호를 만들고 이것으로 암호화폐를 만들면 정부의 공인을 얻지 못해도 많은 사람이 금과 같은 귀중한 가치를 인정하게 될 것인가? 쑹훙빙이 주장했듯 세계 화폐를 교묘히 조종하고 돈의 흐름에 대해 밝은 유대인이 암호화폐에 대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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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억 교수는 KAIST 산업 및 시스템 공학과 교수, 교육원장이며 대한산업공학회 회장입니다.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 신성장동력기획단 위원, KAIST 정보시스템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자동화, 정보기술 응용, 산업지능 분야 전문가이며, 일방전달방식강의에서 탈피하는 수업방식 혁신을 통한 교육혁신, 교육의 기회 균등 실현을 위한 온라인대중공개강좌(MOOC) 확산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KAIST,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옛 미래창조과학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습니다.